역사 속의 인물들 중에서 단 한 명만 살려낼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살려내고 싶으십니까?
오늘 네이버를 켰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진이 저 질문과 함께 배너로 엮여 있었다.
역시나 노숙자같은 외모를 가진 이 노인네는 나를 보면서 저렇게 묻고 있었다.
무슨 심오한 대답을 기대한 것일까?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말해보라는 것일까?
내가 하고 싶었던 아주 굉장히 심오한 대답은 이미 다른사람이 해버렸다.
그래서 그냥, 내 주위에서 일어났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련다.
-
어렸을적, 적어도 나의 기억력세포들이 활발하게 움직인 시점으로부터 시작해보자면,
첫 죽음의 기억은 새엄마의 오빠, 즉 나에게는 외삼촌이 되시는 분이었다.
그 당시, 약 20년전에 고인께서 빛이 2천만원정도가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압박감으로 인해서 방안을 잠궈놓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셨다.
' 도데체 무슨일이지? ' 영문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갑자기 맛있는 음식들이 내앞에 많이 차려지는걸 보고, 그냥 먹기만 했다.
명절도 아니고, 제삿날도 아닌데(본인의 집은 큰집이라서 한달에 한번 제사가 있었다. 새엄마는 힘드셨을테지,)
갑자기 친척들이 모이더니, 울기도 하고, 하염없이 담배만 피기도 하고, 얼굴도장만 찍고 가기도 하고,
뭐 내딴에는 무엇인가 안좋은 일 이라는것만 가늠 할 뿐이었다.
-
두번째의 기억은, 막내작은아버지께서 (아버지는 6형제셨고, 장남이셨다.)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탄지 20년이 지났고, 생사를 확인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지 3학년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내가 그 나이때까지 살면서, 뒤돌아선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거리는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난 그날, 어른들이 시켜서 "남자는배 여자는 항구" 를 연신부르기만 했다.
(그냥 아무거나 해보라고 했는데 이걸 했나보다.)
-
그뒤 10대무렵, 집에서 가출인지 독립인지 모르겠지만 홀로서기를 할때 쯤,
우리네 나이때에서는 오토바이가 유행하고 있었다.
몹시도 다행인것이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 계열에 끼기에는 심성이 너무 착했다.
그리고 아무생각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여자나 꼬시고 어린나이에 술담배에 쩔어있는것을 보니,
좀 한심스럽기도 하였다.
난 어렸을때 과자를 먹는 아이들도 한심해 보였다.
하긴 과자를 신나게 먹을 나이에 난 사회밥을 신나게 먹었으니,
여튼,
그당시에 아르바이트하던 신문사에서 심부름을 시켰는데,
나한테 시킨건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형에게 심부름을 시켰었다.
난 그냥 따라갔던게지.
뒷좌석에 타고서, 비싼것도 아니고 잘 나가는것도 아닌 CT100 이라고 부르는,
중국집 배달원과, 신문사 배달원, 시장통에서 배달하는 모든분들이 애용하던 "국민오로바이" 였다.
심부름을 마치고, 시장사거리를 지나던 때가 정확히 말하면, 토요일 밤 7시였다.
갑자기 둔탁한 무엇인가가 오토바이 앞바퀴에 부딛혔고, 할머니가 길바닥에 주저 앉았다.
고인에게는 죄송하지만, 과정생략하고.. 그냥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졸지에 운전하던 형은 과실치사라는 죄명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할머니가 횡단보도와 육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단횡단을 하셨고,
술이 몹시도 (돌아가시기전에 맥주+막걸리+소주를 섞어 드셨다고 말하시며 당당히 오바이트를 하셨었다)
취하신 상태였기에..이런저런것을 감안하여, 합의를 보면 쉽게 풀려난다고 하였다.
어찌어찌하여 합의를 보고 풀려났었고,
그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고 있을 때, 할머님의 장례식이 진행되어,
당연히 가게 되었다.
내 가족도 아닌 타인의 장례식에 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느낄수 있었다.
어렸을적 외삼촌이 돌아가셨을때, 왜 우리 친가쪽 식구들은 장례식에 와서 어찌할바를 몰랐었는지를,
-
이 무렵 또다른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였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상당히 힘겨워 보였고,
마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오토바이에 몸을 싣는 친구가 있었다.
늘 볼때마다 안타까웠지만 나에게는 그 친구의 삶은 개선해줄 능력이나 용기따위는 없었다.
새벽 4시,
그 친구는 성남에 위치한 종합시장 앞 대로변에서 30미터를 날았다.
그리고는 지긋지긋하다던, 왜 본인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던, 그렇게 어울리지 않다고 말하던,
이 세상과는 안녕을 해버렸다.
이 두 사건을 통해서, 난 더이상 오토바이에 몸을 싣지 않게 되었다.
-
19살,
내 인생의 최대의 전환점이 찾아온 시기다.
서울 둔촌동 어느 골방에 쳐박혀서 인생을 한탄하며,
몇년간의 노력이 지금 내뿜어 버린 담배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때
오랜만에 큰형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술더떠 이미 한달하고도 2주나 지났다고 한다.
난 도데체 무엇을 하는 인간인가?
고인이 되시기전에 나에게 그 어떤 분이었던간에.
이건 정말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리끝부터 발끝에 있는 발톱까지 전해져왔다.
내가 무엇을 해드릴새도 없이 그렇게 한순간에 떠나버리신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베게를 부여잡고, 이불을 입에 물고서, 하염없이 울었다.
몇일을 울고.. 또 울고,
눈물이 사라져볼때까지 울어본 사람만 아는 느낌을 그때 처음 받아봤다.
그뒤로 내가 감성적으로 변하고, 눈물이 많아진듯 하다.
아버지 산소의 위치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물어보지 않아도 어딘지는 뻔이 알기는 하지만.
내나이가 28이 되도록,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일주일에 클럽은 두세번씩 가면서,
아버지 산소는 10년이 되도록 한번도 가질 않았다.
난 욕먹어야 된다.
평생 이렇게 욕먹으면서 살아야 된다.
죄책감에 사무친채로, 불효자인체로 살아야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이제와서 주기적으로 산소를 찾아가며,
효자인척 해봐야, 그건 척일 뿐이지, 실제로 되는것은 아니지 않나.
대신 기약은 있다.
언젠가가 아니라 언제가 있다.
내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고 나만 알 수 있는 그 언제가 오게되면,
그때는 비로서 효자는 안되더라도, 효자인 척은 할 수 있는 그때가 오게 되면,
그때 하려고 한다.
-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을 마감한다는것은 무엇일까?
이승이 있다면 당연 반대개념인 저승도 있고, 환생도 있을까?
작년 7월쯤,
죽음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다.
내가 아닌 수많은 방황하는 영혼을 가진이들은 공통적으로 고민을 해봤을것이다.
해답은?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이 인생을 알차게 살아가보자, 이다.
그리고 말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봤지만,
자살에 대해서는 고민해본적이 없다. 난.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요_
- 술취하면 생각히 흐트러지기 마련이며, 술취하면 추억에 잠기기도 마련이다.
이따구로 핑계대며, 앞뒤 안맞는 글을 정리하며, 난 침대로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