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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에서의 죽음의 이해

최재철 |2008.05.22 14:04
조회 708 |추천 1


힌두교 (Hinduism)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힌두교: 힌두인의 생활방식과 종교 (Judaism, Hellenism)를 말함. 인간에게 죽음은 필연적이다. 죽음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박탈하며 아무도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 가져갈 수 없다. “죽음은 바로 종교의 존재 근거이며, 죽음이 없으면 종교는 그 타당성을 상실할 것이다.” 라즈니쉬, 죽음의 예술, 영원으로 가는 피리소리. 까따 우빠니샤드에서 죽음에 직면 그 정체를 밝히고, 그것을 정복하여 불사를 획득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어떤 종교에서 보다도 죽음의 관습은 힌두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관습은 명백한 종교적인 전제에서 이끌어낸 것이다. 모든 존재는 무한한 재생(samsara (삼사라): 다시 태어남: 환생: rebirths)을 하게 운명지어져 있으며, 한 개인의 총체적인 도덕적인 결과를 적은 문서 (Karman)가 각 개인의 삶의 기간을 결정하고, 각각의 환생의 특정한 형태를 결정한다. 도덕적인 요소들은 세밀하게 계량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이 세상에서 뿌려진 씨들은 다음세상에서 수확된다. 이러한 끔찍한 환생을 피하는 길은 최종적인 해방 (moksa)을 받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은 힌두교신자가 바랄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이다. 이러한 최종적인 해방은 거룩한 자들만이 얻을 수 있거나, 아마도 Varanasi에서 죽은 자들이거나, 갠지스강에 그들의 재를 뿌린 자들이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응보(삯)는 피할 수 없는 환생(reincarnation)이다. [시청각시간: 여기서 죽음과 환행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자! ] A. 힌두교에서의 독특한 질문: [나찌께다가 죽음의 신 Yama에게 질문함.] (1) 사후 하늘나라에서의 행복한 삶의 지속이후의 환생 (2) 죽음으로 영원히 벗어나는 불사의 길 B. 은퇴하려는 철인 야나왈까와 그의 부인의 대화 (1) 부(Wealth)를 가지고는 얻지 못한다. 1) 힌두교의 특징: (1) 변화무쌍하고 어둠과 죽음, 고통이 있는 세계를 윤회(samsar)라고 부른다. [윤회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 세상을 또한 윤회라고 불렀다는 말이다.] (2) 윤회를 지배하는 인과법칙은 까르마 (Karma)다. (3) 무지(無知)가 있는 한 욕망(Kama)와 윤회법칙(Karma)가 있으며 이는 생사의 윤회가 계속된다. [그 말은 무지가 없으면 윤회가 중단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4) 윤회의 속박에서 벗어나 불사의 브라만을 실현하는 것이 해탈(Moksa)다. (5) 불사, 광명, 행복의 궁극적인 무조건적 존재의 차원을 브라만(Brahmann), 아뜨만(Atman), 열반(Nirvana) (6) 해탈을 이루는 방법이 수련과 요가 (Yoga)다. 무지(無知) 지(知) 윤회 (현상적 차원) -> 브라흐만 (궁극적 실재) =속박(생사) 수련/요가 =해탈(不死) (7) 힌두교에는 교조, 성전 (canon), 교리, 교단조직이 없다. 힌두교의 내용은 다양한다. 원시적 애니미즘, 주술, 다신교, 일신교, 신비주의적 일원론, 고도로 발달된 형이상학의 체계. 따라서 3천년을 흐르는 동안 축적해 온 종교적, 신비적 체험과 그 표현의 총체다.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며 특징은 관용성과 통합성이다. [최재덕-힌두교는 인도인의 종교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들은 포교에 열심을 내는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수행방법인 요가를 온 세상에 전파하는데는 열심이다.] 주요문헌으로는 (1) 베다의 절정이라 불리는 ‘우빠니샤드’, (2) 힌두교의 바이불이라 불리는 ‘바가와드기-따’. (3) 우빠니샤드를 해석하고 체계화하려는 베단-따 철학. 1) 관계되는 문헌 여기서부터 브리태니커를 인용함 : 힌두교 주요문헌 A. 리그베다 (Rigveda): (1) B.C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데 묶은 (Collected) 찬양집으로 아주 일찍 알려진 책이다. (2) 여기에는 “창조의 노래”라는 것과 “죽음은 거기 없었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에는 “영혼불멸도 또한 없었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세계는 완전한 공(Void)며 “숨쉬지 않지만, 본래부터 숨쉬는 한 가지”만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의 "나는 스스로 있는자"라는 말씀을 연상시킨다, 자존자] B. 우파니샤드 (Upanishads) [베다의 절정] (1) BC 6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적인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인도-아리안 문헌으로 말하기, 듣기, 지적능력과 같은 개인의 다양한 기능을 강조하는 하나의 통합적 원리에 대한 탐구를 기록했다. (2) 살아있는 존재의 본질적인 특성 (attribute)은 숨쉬는 능력 (An)이라고 하였다. 이들의 숨(Prona)은 너무나 절대적으로 중요(vital)해서 숨이 멎는 순간 몸과 몸의 기능은 죽어 정지하게 된다고 하였다. 영혼(atman)이라는 단어는 An에서 파생된 것으로 호흡의 개념을 개인 자신이나 개인의 영혼의 핵심에 두고 있다. 2) 힌두교에서의 영혼개념 (1) 죽음과 관련된 힌두교 관습을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적인 것은 힌두교의 영혼개념이다. Jawahala Nehru가 쓴 The Discovery of India에서 그는 힌두교를 하나의 신앙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모호한(vague), 형체가 분명치 않은 (amorphous), 다양한 측면 있는 (many-sided),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2) 힌두교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것들을 모순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매우 추상적인 철학적 사고와 신령에 대한 믿음을 하나로 묶는 어떤 공톡적인 사고가 있으며, 비폭력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희생제사에서의 피뿌림, Tantric 예배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성적인 국면과 같은 서로 반대되는 사상을 연결하는 사고체계가 있다는 점이다. (3) 이러한 모든 것들은 죽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우주적인 의식(consciousness)를 형성하려는 시도들로 볼 수 있다. 매우 지적으로 경도된 힌두교신자에게 있어, 영원하고, 무한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브라만의 원리만이 참이며, 우주적의식을 갖게되는 것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우주와 하나가 되게 한다. 인간개인의 영혼 (atman)은 단순히 이러한 우주적 운행원칙에 있어 한 먼지와 같으며, 하나의 질그릇에 갇힌 공기와 끝없이 광활한 우주의 공기와의 관계와 같으며, 하나의 조그만 특별한 물결과 대양 전체의 그것과의 관계와 같다. 3) 힌두교에서의 죽음이해 사후상황에 대한 견해 (인간의 입장에서 이뤄지는 해석이다!) (1) 완전소멸: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적다. [이유: 자기애/ 형이상학적 존재 인정] (2) 영원한 축복이나 저주: 너무 무자비하거나 너무 불공평하다. (3) 윤회 (Samsara): 힌두교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함. 힌두교의 특장이다. 우파니샤드에서 구체화되었다. a. 태어남과 죽음의 순환적 반복을 의미한다 (reincarnation, rebirth). 기본적인 전제: 육체가 변화되어도 변치않는 그 무엇이 있다. “산 사람은 곡식과 같이 익어서, 곡식과 같이 다시 태어납니다.” “사람이 헌 옷을 벗어버리고 다른 새 옷을 입듯이, 육신의 소유주도 낡은 몸들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몸들로 옮겨간다. 왜냐하면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고, 죽은 것은 반드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피할 수 없을 일을 위해 그대는 슬퍼해서는 안된다.” (B.G. II. 22).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으로부터 독립하여 홀로 빛나는 순수의식이며, 감관, 마나스(의: 意) 마나스는 보통 의식을 의미하므로 의(意)라는 한자로 번역되는데, 이럴 경우에는 제6식인 '의식'과 혼동되므로 그 원어의 발음을 사용하여 말나식이라는 번역어로 제6식과 구분한다. 그런데 마나스는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man)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인도에서는 인간을 뜻하는 '마누쉬야'라는 말의 어원도 마나스와 동일하며, 이 말은 마나스 또는 '마나'라는 말에서 변천된 것이라고도 한다. 마나는 자만이나 교만을 의미한다. 인도의 시크교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혼을 '만' (man)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만'은 순수한 자아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다. 시크교의 성전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만은 마음이고, 심정이며, 혼이다. 그것은 사람이 생각하고 결정하고 느끼게 하는 기능이고, 모든 선악의 원천이며, 육신에서 반드시 해방되어 신의 존재 속으로 합일해야 하는 속성이다." [http://home.dongguk.edu/user/india/ss/yusic/yusik06.htm]. , 지성등 미세한 신이 이 빛을 반조하여 개체의식을 일으킨다. 아뜨만의 반사 매체인 미세신이 갖는 관계의 양태에 따라서 개체는 (1) 깨어 있는 상태 (각성위) (2) 꿈꾸는 수면상태 (몽면위): 즐거워하기도 괴로워하기도 한다. (3) 깊은 숙면상태 (숙면위): 외계를 경험 못함(몰아경) 깊은 만족감. (4) 죽음의 상태 (사위) 즉 이 세상(각성위)와 저 세상(사후) 중간에서 수면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수면상태에서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왔다 갔다 한다. [이것이 죽음의 체험인 것으로 보인다.] 즉 영혼은 깨어있는 상태와 죽은 상태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1) 각성위: 깨어있는 상태는 오관에 미세신이 반사되어 그들을 통해 외부세계와 접촉이 이루어지는 상태. (2) 수면상태: 감관의 기능력이 마나스로 후퇴함으로써 신체가 외계를 경험할 수 없은 상태. 우리의 의식은 아무런 욕망도 꿈도 개체 의식도 없는 몰아경에 든다. 깊은 만족감을 경험하게 된다. (3) 숙면상태: 해탈은 아니다. (4) 죽음의 상태 (사위):미세신이 육신으로 벗어나는 현상이다. 마치 나무열매가 줄기에 벗어나는 것 같은 분리의 현상이다. -임종: 호흡곤란을 느끼며, 미세신이 육신을 빠져난간다. [다른 종교에서도 죽음을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는 것으로 설명한다. “숨을 내 쉰다”] -신체를 떠난 영혼은 풀벌레가 풀잎을 바꾸듯, 원래 몸을 버린 후 다른 몸으로 접근한다. [마치 부활의 몸이 따로 있듯이] 이때 미세신에 수반된 전생의 선악의 행위와 욕망에 따라 새로운 몸이 결정된다. 윤회(輪回)와 업(業)의 관계: -“우리의 행위 같이 되어진다. 선행자는 좋게, 악행자는 나쁘게 된다. 덕스런 행위에 의해 덕스럽게 되고, 악행에 의해 나쁘게 된다.” -영혼이 곧바로 태어날 수도 있고, 전생의 선악의 행위에 따라 다른세계에서 응보를 받고 다시 태어난다는 설도 있다. [오화이도설] -오화이도설(五火二道說): -하늘도 지옥도 원치 않는자는 곧 바로 재생한다. 화장후 영혼이 신에게 올라가 하늘, 대기, 땅, 남자, 여자라는 제단의 불에 차례로 봉헌된뒤 소마-->비-->음식-->정액--> 태아로 바뀌어 마침내 어린아이로 태어난다. -지상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도, 하늘나라에서 선조들과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바라지도 않는 개아들은 신들의 길을 따라 범계(Brahmaloka)에 이른다. 즉 영혼이 돌아오지 안는 범계로 간다. [낯-->달이 차는 15일--> 해가 북쪽으로 지나는 6개월--> 신들의 세계-->태양-->번개-->그 다음에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범계로 간다. [최재덕의 질문: 그것이 죽은 자의 마음대로 되느냐 하는 것이다. 업에 의한 것이라면 사자의 뜻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죽은자의 희망대로 된다면 환생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된다. 모순이 아닌가?] -여기서 윤회의 원인에 대해 욕망, 무지를 들 수 있다. 3) 불사의 길 (해탈) -사람들은 현세에서는 부귀, 건강과 장수, 자손의 번영,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윈했고 내세에서는 하늘나라에 가서 신들과 같이 환락을 누리기를 기도했다. [최재덕: 이것은 힌두교 초기시대의 모습을 설명한 것으로 보이며,이승과 저승의 좋은 것만을 누리려는 마음이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윤회관이 확립된 우빠니샤드시기에 이르러서는 생산의 순환으로 이루어진 그 현존 자체로부터의 해탈 (moksa)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즉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힌두교는 인간의 다양한 성향과 요구를 수용하고 그들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인생의 목적을 쾌락(kama), 재물(artha), 의무 (dharma), 해탈 (moksa)의 네가지로 꼽았다. 물론 해탈이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최: 여전히 좋은 것만 누리려는 인간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 “파리건 모기건, 풀이건, 나무건 모든 것이 죽는다. 영웅도 왕들도 모두 부귀영화를 버리고 이 세계에서도 저곳으로 가버렸다. ...큰 바다도 말라버리고, 높은 산도 무너지며, 땅도 꺼지며, 붙박이 벽도 이동한다. 이런 무상한 세계에서 욕망을 즐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욕망에 시달리는 자들은 반복해서 이 세상으로 돌아오니, 그러므로 부디 나를 구원해 달라. 이 윤회의 세계에서 나는 마치 물이 말라버린 우물속의 개구리와 같다.” -힌두교는 인생의 고통과 한계를 직시하게 하는 점에서 염세적이나 절망과 비판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게 하고 자유와 지복과 불사의 열반(브라만)에 이르게 가르친다. -힌두교는 인간의 본바탕은 태어나고, 고통받고, 죽고, 감각하고, 욕망하는 신체와 마음의 복합체가 아니라 영원, 불사의 브라흐만 또한 아뜨만임을 강조한다. 최재덕: 즉 인간의 본바탕은 호흡또는 영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우주의 호흡과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아트만은 죽지 않는 영혼이다. 그것은 눍고 죽지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존재의 근거다. [최: 마치 유교에서 인간본질을 기(氣)에서 찾은 것과 비슷하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인식되지 않고 어떤 것과 동일시될 수 없는 그 무엇(Tat)이다. -만물이 그로부터 나와 마침내 그곳으로 귀입되는 우주의 제1원이며, 모든 것에 내재하면서도 모든 것을 초월한 전부이자 하나인 존재이다. -이 아뜨만에 이르기위해서는 윤회의 원인인 무지(무지)와 욕망을 억제하고 없애야 한다. -자기의 본성이 바로 무한하고 전 우주를 포옹하며, 전부이자 하나인 브라흐만임을 아는 자는 더 이상 무상하고, 부분적이며, 비실재인 현상적 사물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되면 출가자가 된다. 후손에도 관심없으며 아뜨만의 세계를 달성하는데 집중한다. 걸인처럼 삶을 영위하게 된다. -욕망하지 않고, 욕망이 없으며,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자, 그이 욕망이 충족되었고, 아뜨만이 그의 욕망인, 그는 브라만에게로 간다. -그러나 불사로 인도하는 세속적 욕망을 포기하거나 억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지는 탐욕을 낳고, 탐욕은 없을 낳으며, 그 결과 우리는 더욱 오염되고 악순환은 지속된다. 이 오염된 마음을 순화시켜 불사에 이르는 방법이 요가(yoga)이다. 이중 힌두교 신자들에게 가장 인기있고 대중적인 것이 밬띄요가이다. 모든 행위와 마음과 몸을 절대자 혹은 신에게 봉헌함으로써 그 은헤의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특히 죽음의 순간에 신에게 전념하면 죽음과 동시에 신과 하나가 된다고 한다. [최재덕: 힌두교가 행위의 종교지만 여기서는 갑자기 신, 아트만의 은혜에 의존한다는 것이 특이하다. 불교에서도 아미타보살의 은혜에 의존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임종시 나를 생각하면서 육체를 떠나가는 자는 나에게 이를 것이니 여기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다.” “그러므로 모든 때에 있어서 나를 기억하고 싸우라. 마음과 지성이 나에게 고정되어 그대는 틀림없이 바로 나에게로 올 것이다.” “...옴 이라는 한 음절의 브라흐만을 발음하면서 나를 명상하여서 육신을 버리고 떠나가는 자는 지고의 목표에 다다른다.” [일본의 오음진리교는 이점을 차용했다] 힌두교신자가 죽음이 다가옴을 느끼면, 그들은 옴(Om)이라고 하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읊는다. (여기서 Om은 브라만을 의미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의식에서 광범위하게 쓰인다). 만일 이 단어가 마지막 말이라면, 이것은 곧장 Moksa상태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곳을 찾아야 한다. 온 우주의 태고적 활동이 흘러나온 그 원초적 정신에 나는 귀의하노라.” 5. 힌두교의 죽음이해에 대한 논평: 최재덕 1) 힌두교의 신(3?)들과 아트만과의 관계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죽음의 과정은 신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설명되기 때문이다. [시청각포인트: 힌두교이 신 사진 ] 1) 힌두교도 영혼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힌두교는 삶을 생사의 윤회에서 불사와 해탈의 기회로 본다. 여기서 불사는 시간적, 현상적 나(ego)의 자발적인 죽음을 통해 초시간적인 절대적인 나(Self)로 태어나는 것이며 새로운 존재의 지평에 서는 것이다. 참다운 나가 되는 것이다. 2) 이러한 참다운 나를 실현한 자는 시간의 흐름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영원한 지금 (Eternal Now)에 산다. 이것을 살아서 경험하는 해탈 생해탈(生解脫)이라고 하여 죽은후의 해탈과 구분한다.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3) 새로운 몸을 입는 것 (환생)이 반복된다고 한다. 참고로 기독교도 부활의 몸을 입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일회적으로 이루어지고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 썩을 몸/ 썩지않을 몸으로 구분한다. 4) 불교에서 바라는 열반, 해탈의 경지를 이미 추구한다. 무상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힌두교에서 나온 것이 사실이다. 이 두 종교가 추구하는 바가 매우 비슷하다. 부처도 그런 경지를 추구하는 힌두교인이었다가 나름대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6. 힌두교에서의 죽음관습 힌두교신자들은 인간에게는 120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20세기에도 평균수명이 30년인 나라에는 이상한 것이다. 이들은 죽음이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초기 베다 신이 연관된 신화적인 믿음은 귀를 지배하는 신이 눈, 신, 마음의 신처럼 일찍 떠나가게 된다고 생각한다. 죽는 존재가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남기고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침대에서 바닥에 깔린 베드로 옮기고 그들의 머리를 깍는다. 방바닥에서 천장까지의 공간은 지구와 하늘사이에 있는 고통받는 세계를 상징하며, 거기서 죽어가는 사람은 마치 악령처럼 그곳으로 돌아올수도 있다. 바닥에 있은 공간은 갠지스강의 물과 소똥, 보리, 참기름씨와 같은 다양한 성분으로 거룩하게 된다. 힌두교신자는 침대에서 죽으면 안되며 바닥에서 죽어야 한다. 그들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게 됨에 따라 그들은 바닥으로 옮겨진다. 가족중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적절한 순간을 결정하도록 돕는다. 갠지스강과 야무나강(allahabad)에서 가져온 물을 죽어가는 사람의 입에 흘려넣으며 tulsi(Ocimum sanctum) 식물의 잎을 거기에 놓는다. 이마는 하얀 진흙 (gopi candana)으로 칠하며, 남편보다 먼저 죽는 여인은 행복하다고 여겨 그녀의 얼굴과 특히 이마를 빨갛게 칠할 수 있다. [가부장적 사고!] 만일 죽었는지가 의심스러우면 깨끗한 버터 한 조각(ghee)을 이마에 올려놓으면 녹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여기는데, 이는 흥미롭지만 잘못된 관습일 수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 저체온증(hypothermia)을 죽음으로 착각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자의 몸은 연령을 나타내는 다양한 색깔의 깨끗한 천으로 감싸게 된다. 죽은 자의 가정에서는 친척들이 주검주위를 시계방향으로 걸으면서 돌아가며 그들은 반대쪽에 있는 장례용 장작주위를 돌게 된다. 사자는 불의 신 아그니신에게 제물로 주어진다고 여긴다. 베다에 따르며 이도아리안족은 매장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힌두교와 불교에서 화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이것은 정화(purification)의 행위로 다양하게 해석되며, 부패해가는 주검에서 영혼을 해방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 이는 또한 인구가 대단히 많은 나라에서 생태학적으로 유익을 가져오는 공중위생적으로 좋은 방법이며, 어떤 특별한 생명체도 잠시 동안만 존재하는(transitory)인 특성을 가졌을 뿐임을 상징하며, 영원한 익명성의 상태로 끝나야 한다는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 죽은자의 집에서서 채화된 불은 검은 질그릇에 담아 화장장소로 옮겨지는데, 죽은자의 정면에서 곧 실시되며 그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오랜 세월동안 여성은 행렬을 따라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브라만의 부인들은 장작더미 주위까지 갈 수 있었다. 화장지에서는 집안의 맏아들이나 맏손자가 횃불을 받아 죽은 남자의 머리나 죽은 여자의 발 부분의 장작불을 붙인다. 시체가 타는 동안 영혼은 머릿쪽으로 피하려한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강렬한 불꽃이 두개골을 파열시켜 영혼을 자유롭게 하면, 이것이 금방 일어나지 않으면 해골을 망치 같은 것으로 부수게 된다. 어떤 전통에서는 영혼은 코, 눈, 입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다. 또다른 전통에서는 영혼이 두개골의 앞 정문(fontane)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이부분은 정상적으로는 유년기에 막히게 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만일 죽은 자가 요가나 강력한 명상을 실시한 사람이며 이 부분이 다시 열려서 영혼이 자유롭게 빠져나가게 된다고 믿었다. 인도의 어쩐 지역에서는 매우 사악한 자의 영혼은 창자의 일부분인 직장을 통해 빠져나간다고 보았고 그런 경우 끝없는 정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2살아래 어린아이는 화장하지 않고 매장했다. 죽을 때 그들은 땅에 내려놓지 않고 어머니의 팔에 앉겨 죽을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특별한 장레식은 없으며, 이러한 끔찍한 죽음을 죽는 아이는 전생에서 끔찍한 karman을 저질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유아사망률은 아이의 사악함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8,400,000번 환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우 높은 계급인 Nagaras의 경우, 임신한 여인이 죽으면 화장하는동안, 자궁을 들어내어 태웠다. 금욕주의자들도 매장되었는데 소금으로 둘러 쌓은상태에서 신체를 바로 세워서 매장했다. 문둥병자나 천연두환자는 누운상태에서 매장했다. 천연두는 제거되었으며, 나병환자는 일반적으로 화장되었다. 만일 힌두교신자가 모슬림이나 기독교인이 되어 계급을 깨어버리면 친척들은 그러한 부정(defilement)을 저질렀기 때문에 목욕을 하며, 그 사람의 이름은 다시는 언급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개념은 붐명히 죽음에 관한 행위에 영향을 미쳤다. 5) 영혼의 운명 죽음과 환생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Hinduism부분에서 언급한 바 있다. ----. 죽음직후에 영혼은 주검과 함께 천으로 쌓여지는 것이 아니라, 증발할 수 있는 엄지손가락크기 정도의 구조물에 의해 쌓여진다. (linga sarira). 이것은 죽음의 신인 두 사람의 Yama가 하며 예비적인 신원조사를 위해 그들의 대장에게 가져간다. 이후 영혼은 죽은자가 사는 지역으로 보내지며, 거기서 문지방사이를 맴돌게 된다. 화장은 영혼이 돌아오기 전까지 완료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시 시신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다. 10일안에 가까운 친척들은 죽음으로 인해 생긴 여러 더러워진 것들(mritaka sutaka)을 깨끗케 한다. 한 사람의 사제과 상주는 첫 번째 의식인 존경의 의식(sraddha: ritual of respect)을 집전한다. 이것은 죽은자의 분열된 영혼(preta)주위에 있는 물리적인 신체의 보다 견고한 재구성을 위한 것이다. 강가는 일부지역을 정한다음 거기에 땅을 파고, 비수누(Vishnu)신을 불러낸다. 설탕, 꿀, 우유, 커드, ghee, 참깨 씨가 혼합된 보리가루로 만든 10개의 덩어리를 땅에 뭍는다. 첫 번째 덩어리를 묻고 사제는 (상주가 반복한다). “이 덩어리가 머리가 되기를”이라고 말하고, 두 번째 덩어리를 묻으며 “이 덩어리가 목과 어깨가 되기를” 세 번째 덩어리는 “심장과 가슴을 창조하도록”등으로 말한다. 열 번째 요구는 소화기능을 창조해서 새로운 신체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만족시키도록 간구한다. 만일 이 의식이 잘못행해지면 재앙이 따른다. 비수누신에게 새로운 몸이 Yama의 권세아래로 들어가게 도와달라고 한다. 보리덩어리는 구덩이에서 꺼내 강으로 던진다. 나아가 sradaddhas의식이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는데, 신분에 따라 시간이 다르다. 이 의식중을 통해 영혼을 고대의 영이나 pitri라고 불리는 영으로 만든다. 이러한 의식이 끝나면, 죽은자의 영혼은 일년정도 걸리는 야마의 왕국으로의 위험한 여행을 한다. 가족들은 공식적으로 정화되는데, 남자들은 머리를 면도하고 여자들은 머리를 씻는다. 죽은자가 생겼을 때 친구들이 치운 가정의 수호신은 집으로 다시 가져올 수 있다. 브라만에게 축제를 베풀며, 이때 이웃과 거지들도 어울린다. 지역의 소에게도 새풀을 준다. 한시름 놓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존경의 의식이 행해지지 않았다면 분열된 영혼은 속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을 괴롭히는 악한 영이 된다. 죽은자에게 최악의 상황은 분열된 영혼이 죄를 용서받기를 바라면 수도하는 속죄자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자살한 자들도 이와 같은 운명이 된다). 중세에 유럽에서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런 속죄받지 못한자들의 공포는 아들이 의식을 치루지 않은 경건한 힌두교신자의 그것과 비슷하다. 한편 견고한 봉투에 쌓여 여행을 떠나는 영혼은 황소의 뒤를 따라 야마의 왕국과의 경계선에 있는 끔찍한 피와 오물의 강을 건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혼은 존경의식을 통해서 힘을 얻게 되는데, 그 기간동안 지상에 있는 지인들이 신발, 우산, 의복, 재화를 공급하게 된다. 지인들은 이것을 사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 브라만에게 바친다. 이러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칭척들은 모든 재봉질을 중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고대의 영혼 (pitri)의 혀를 잘라 호흡과 마심을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년간의 여행 끝에 야마의 심판의 자라에 도달하며 [기독교에서는 즉시] 거기서 엄격히 제한된 기간동안 천국(svrga)이나 지옥(narka)에 머무르는 상벌에 따라 판결을 받게된다. 이기간이 끝나면 영혼은 다른 몸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 형태는 그 개인의 Karman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식물일수도 있고, 바퀴벌레일수도 있고, 창자의 기생충이 될 수도, 쥐가 될 수도, 인간이 될 수도 있다. 하나의 임대자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자이나교도와는 달리 힌두교는 이 영혼이 거기에 하나의 독자적인 주인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Varansi 따라서 무한히 계속되는 환생의 전망은 실망 4. 힌두교에서의 윤회설 (The cycle of rebirth) (1) 힌두교의 죽음관습은 지역에서의 관습과 함께, 대중적인 신앙과 대중적인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다. 지방마다 또는 종파마다 다를 수 있다. 종교적인 교리에 대한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힌두교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거룩한 율법의 책인 the Dharma-sastra of Manu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책의 저자 Manu는 홍수에서도 살아남은 요소들 (유대교와 기독교의 노아와 메소포타이아에서 우타타피스팀)와 율법을 부여하는 (성경의 모세와 함무라비법전)을 결합시켰다고 한다. 수세기동안 판을 거듭함에 따라 점점 커진 책은 남자 브라만 제사장직의 계속적인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인간에게 무엇이 적합한가와 관련한 처방인 놀랄정도로 자세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다. 여성도 가끔 언급하고 있다.
추천수1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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