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 리스트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The Bucket List, 2007)
감독 : 롭 라이너
내가 행복하게 죽을 수 없는 이유... 뿡이닷!
늘 그렇듯이... 한동안 캐발랄모드로 지낸다 싶더니만 어제 오후부터 불현듯 울증이 밀려들었다. 어제오늘은 죙일 컴퓨터 앞에서 씨름해야 하는 날. 아무래도 안 되겠다. 뭔가 펌프질이 필요하다.
일요일과 월요일 작업 도중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영화보기에 맛을 들였으니 영화로 펌프질을 해야겠다. 울증이 닥쳐오는 날은 머리 써야 하는 영화나 심각한 사색을 요하는 영화나 너무 힘든 영화는 피해야 한다. 그래서 골랐다.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만, 두 헐리우드 노장배우의 로드무비 다.
카터(모건 프리먼)와 에드워드(잭 니콜슨)은 한 종합병원 암병동의 병실에서 처음 만난다. 둘 다 암세포가 전이될 대로 전이된 상태. 몇 개월이나 살 수 있을까? 시한부선고를 받은 막장인생이다.
늘 진지한 모범생 모드로 일관하는 카터가 노란 종이 쪼가리에 무언가 끄적인다. 무언가 했더니만 '버킷 리스트'란다. 학창시절 카터의 철학선생님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들을 써보라면서 그걸 '버킷 리스트'라 불렀단다. 카터의 버킷 리스트를 본 에드워드.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고 있다는 두려움에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이거 참 잘됐다 싶다. 에드워드는 카터에게 함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해보자고 제안한다. 어차피 얼마 안 남은 인생인데 해보고 싶은 건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냐는 거지.
몇 개월 전 진지모드 모범생 비처럼 언니와 나눈 대화 한 토막.
언니 : 얼마 후에 죽는다고 선고를 받으면 무슨 생각이 제일 먼저 날까?
나 : 태어나서 안 해본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은데 이거 아까워서 어쩌나. 죽기 전에 다 해봐야지.
언니 :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다 못하고 죽어서 안타까운 생각은 안 드니?
나 : 그런 생각이 왜 들어요? ㅡㅡ;; 우선 번지점프부터 하러 갈래요. 꺄아~
영화를 보는 내내 에드워드에게 깊이 공감했다. 진지모드 카터의 버킷리스트는 모르는 사람 도와주기, 장엄한 경관 바라보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 모범생스러운 반면 괴팍모드 에드워드는 스쿠버다이빙, 제일 예쁜 아가씨랑 키스하기 등 쾌락중심적이다. 믿음 자체가 별로 없는 것도 냉소적인 것도 너무 닮았다. 에드워드가 하고 싶다고 꼽은 리스트들은 모두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두 남자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에드워드에 대한 강한 동질감으로 영화에 깊이 매료되는 듯 싶었다. 바뜨 그러나... 젠장... 그 다음이 문제였다.
나의 리스트들은 사실 하고 싶으나 시간과 돈 때문에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치 치토스처럼 '언젠간 하고 말 테야' 하고 의욕이 나게 하는 청량음료 같은 것이랄까? 그러나 갑부 에드워드와 갑부를 친구로 둔 카터의 리스트는 곧장 현실이 된다. 전용 제트기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휘휘 돌아다니며 리스트를 지워나간다.
두 노인네가 볼품없는 메모지에 리스트를 작성할 때만 해도 삶을 대하는 상극의 두 사람 모습에 나 자신을 비춰보기도 하고 내가 죽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진지하게 그려보기도 했다. 그들의 리스트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스트가 현실이 되는 순간 영화는 여행사 홍보 영상으로 둔갑해버린다. 뭐냐? 삶의 이유와는 그다지 연관 없어 보이는 유명짜한 세계의 관광지를 줄줄이 늘어놓는 꼴이란. 화면이 멋있긴 하다만 멋있는 화면 보려면 차라리 세렝게티 다큐같은 자연다큐멘터리를 보겠구먼. 쳇...
한참 관광영상 보여주다가 헐리우드 감동스토리의 전형을 그대로 밟으며 눈물 찔끔나는 엔딩으로 급마무리해버리는 안타까운 이 영화는, 내게 전용제트기 정도는 있어줘야, 그도 안 되면 운 좋게 그런 친구라도 사귀어두어야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지는 듯했다. 뿡!
그래도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 두 늙은남자가 멋있긴 하더라.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