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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사랑에게 [15]

정민희 |2008.05.30 21:19
조회 79 |추천 4


 

 

가위바위보를 하던 여자。

 

기쁘고 즐겁기만 했던 날들..

생일.. 축제.. 이런 날들이 이렇게 한심하게 비참할 수도 있다는 걸,

예전에 몰랐어요.

그 사람이 없는 지금에야 그걸 알겠습니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어요.

과 동기들의 축하파티도, 가족들의 저녁 식사도 거절하고,

그냥 거기에.. 혼자 갔습니다.

그 애와 자주 가던 인도풍의 바..

테이블 대신 도톰한 돗자리 같은 게 깔려 있고,

좌석마다 하늘거리는 하얀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서

소꿉장난을 하듯 재밌어 하던 곳...

마치 어린 시절, 마당에 우산을 활짝 펴 놓고

그 안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장소,

거기를 발견하고는 그 애랑 내가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몰라요..

 

그 애와 헤어진 후, 한 번도 갈 수 없었는데,

어제는 용기를 내서 눈 딱 감고 가봤습니다.

어쩌면 그 애가 친구들과 어울려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도 가지 못했었는데.. 어제는 그냥 갔어요.

마주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아니, 니가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말할까?

아니, 혹시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만 물어볼까?

정말 수많은 생각을 하고 갔는데.. 그 애는 없었습니다.

 

어제는 내 생일이고 오늘부터는 학교 축제예요.

작년 축제 때는 그 애와 유치한 커플 게임에도 참가하고,

보드 게임도 하고, 주점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그랬었는데..

오늘은 멍하니 잔디밭에 앉아...

작년 축제만 가득 떠올리다가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상하게 해가 지면 그 애가 더 많이 생각나요.

육교 앞에 있는 제과점에서 베이글을 좀 사가야겠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거든요.

한 남자가 생일 케이크를 사고 있어요.

아마 여자 친구의 생일인가봐요.

초코시럽으로 아이러브유를 써달라고 주문하고 있네요.

베이글이 담긴 봉투를 안고 터벅터벅 육교르 건너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난간에 기대어 서서 조각처럼 서 있습니다.

울고 있는 것 같아서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 봤더니..

저 밑에 재수 학원 앞에 우르르 서 있는 학생들만 보이네요.

어쩌면 저 여자도 작년 이 맘 때를 떠올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가위바위보를 하며 이 육교 계단을 오르던 어떤 한 남자를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도 그랬었거든요.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이 육교를 건널때마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사랑이 사랑에게 말합니다.

가위바위보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게 사랑이라고,

이제 그만 떠난 사랑을 건너라고...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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