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88만원 세대에게 보내는 편지

이형근 |2008.05.31 20:57
조회 345 |추천 7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 여섯에 서울 소재의 대학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복학생입니다. 원래 이런 글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제가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는 일이 생길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게 되네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나서, 단 한번도 삶의 어려움이나 어찌할 수 없는 좌절..가난..배고픔..이런건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재벌 2세처럼 풍족하고 여유있게 산 것은 아니지만, 나름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교육 메카 강남구 대치동에서 20년을 넘게 살았고, 남들 부러워하는 고등학교까지의 학벌, 그리고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대학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네, 이건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부모님이 열심히 노력해주셔서 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도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하단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치동이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희 집은 부모님 맞벌이에 아버지는 주말에도 파트타임 일을 나가셔서 이곳 생활을 유지해왔습니다. 부모님의 뼈와 살을 베어먹으며 저희 남매가 이렇게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얼마나 힘든 사람들이 많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은지를 모르는 채 스물 여섯이라는 나이까지 먹게 되었지요.


 


하지만 결국 나이가 들면서 현실이 제게 다가오더군요. 공군에 입대하여 한창 "미군기지이전 반대운동"시위가 거세던 때에, 오산 미군기지 안의 한국군 부대로 편성되어 그곳에서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드나들때 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주말마다 몰려오는 시위대를 저는 K2소총을 손에 쥔 채 펜스 너머로 바라봐야 했으니까요. 제가 밟고 있던 그 땅이 켈리포니아주 소속의 오산기지라는 사실이 제가 맞이했던 첫번째 현실이었습니다.


 


아, 딱히 반미감정을 가지자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저도 우리나라의 현실상 미국이 없으면 무척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속국이다, 어쨌다 해도, 당장 미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진다면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가 휘청거리게 될 것이 뻔하니까요. 그건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국"이 아닌 바로 우리, "88만원 세대"에 관해서 입니다. 이것은 저 스스로의 반성문이자, 저와 같은 88만원 세대들을 향한 편지입니다. 긴 글이라 외면치 마시고 꼭 한번 읽어봐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주말인데도 다음 주에 있을 발표수업때문에 조원들이 아침부터 모여 회의를 하고, 발표문을 만들고 있었지요. 그러다 점심을 다 같이 먹게 되었는데, 마침 식당 TV에서 촛불시위에 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조원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난 정말이지 저기 나간 사람들 이해가 안가! 너네들도 학교 다니면서 학점 관리하기만으로도 빡세지 않냐? 저기 나가봤자 맨날 한다는 소리가 이명박 탄핵해라, 뭐 이따위 소리들인데, 저딴거나 할 시간에 공부 한 자를 더 하지. 지금 당장 먹고살기가 빡센데 저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우리나라는 미국 없으면 사회, 경제 뭐 하나 남김없이 다 망하는거야, 우리나라는!!"


 


심한 언어는 빼고, 그나마 논리적으로 들렸던 말들만 추려보았습니다. 그의 곁에 있던 또 다른 조원도 그의 말을 거들며 뉴스속에 나오는 사람들을 향한 냉소를 짓더군요.


 


예.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과연 그가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과연 그는 그 말을 뱉기 전에 그 사회적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고, 또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봤을까.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에게 저 사람들을 욕할 권리가 있을까..하고 말입니다.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상업,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양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신앙이 망국을 부르는 7가지의 악이다."라고 말입니다.


 


망국을 부르는 일곱가지의 악.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 위치한 원칙없는 정치. 왜 정치에 원칙이 없어졌을까요?


 


바로


 


무관심 때문입니다.


 


생각이 다른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욕하기 전에 제발 한번쯤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은 모두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리고 제가 취직을 위해, 우리 자신의 이득을 위해 노력할 때에도 그들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취직 후 번 돈을 안전하게 지키고, 그것을 향유할 목숨의 위협으로부터 모두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그들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을, 그들은 우리의 외면에도 아랑곳 않고 목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예. 저도 오늘 촛불집회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했습니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은 예비군복을 입고 선두에 서고 싶지만, 현실이 두려워 이렇게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에게 너무나 미안합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러, 만약 그들이 정말로 장관 고시 철폐를 받아내고,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까지도 이루어낸다면, 전 그들에게 들 낯이 없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욕하고 비난했던 소위 "무임승차자"가 제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 여러분.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마냥 욕하지 마시고, 그냥 메이져 언론에 이끌려 "쟤들은 다 빨갱이 배후에 놀아나는 녀석들이야."란 식으로 매도하지 마시고.. 제발, 우리나라의 정치에, 역사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리고 투표해주십시오. 10대보다 못한 20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십시오. 욕을 하는것도 좋습니다. 최소한, 근거있는 욕을 해주십시오. 자신의 노력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은 후에, 자신의 머리로 판단하고 욕해주십시오. 저도 많이 모자르지만, 앞으로 노력해보고자 합니다. 저와 같은 세대에 있는 20대 여러분. 제발 도와주십시오. 저는,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이, 프랑스의 68세대와 같은 이름으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아니, 적어도 부조리에 침묵하고 순응하던 세대라는 오명을 가지지 않는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만나게 될 우리의 자손들에게, 부디 부끄럽지 않은 세대로 남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제발....  

추천수7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