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아침 7시40분께 경찰은 종로구 안국빌딩 앞 삼거리에서 모여 있던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기 시작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은 시위대와 떨어져 있던 100여m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4~5열로 대형을 이뤄 시위대를 덮쳤다. 분말 소화기를 뿌리며 달려드는 갑작스런 경찰의 급습에 당황한 시위대는 계속 뒤로 밀려나며 흩어졌다.
경찰은 시위대에서 떨어져 나온 시민들을 보이는 대로 연행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경찰에게 끌려가던 한 20대 시민은 “대통령과 대화하고 싶다”며 울부짖기도 했다. 시위대 앞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앞장섰던 예비군복 차림의 시민 두 명도 경찰에 의해 봉고차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위대는 경찰에 밀려 종로 낙원상가와 운현궁 주변 골목 등으로 흩어졌다. 많은 시민은 다시 시청앞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에 앞서 시위대 1만여 명은 청와대로 통하는 주요 진입로에 모여 있다가 진압을 시작한 경찰에 밀려 정부종합청사-경복궁 샛길, 안국동까지 후퇴한 뒤, 새벽 6시께부터 안국삼거리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했다.
6시55분께 종로경찰서 정보과장이 나와 청계광장으로 이동하면 길을 열어 주겠다고 밝혔으나, 시위대는 이를 거부했다. 7시20분께 경찰은 협상을 할 테니 대표자를 뽑아달라고 방송하자, 시위대 선두에 있던 30여 명 시민은 논의를 벌였다. 자리를 지키며 연좌시위를 계속하는 방안, 2차선 도로만 점거하고 차량을 통행시키는 방안 등을 논의했으나 역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시위대는 결국 몇 분 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펴놓고 “우리 모두가 대표다”라고 외쳤고, 몇 분 뒤 경찰의 진압이 시작됐다.
경찰 방패 사이에 팔이 끼어 크게 다친 변형석(29·종로 56가동)는 “요즘 시대에 이런 무자비한 폭력을 봐야 한다니 슬프다”며 “마음이 너무 무겁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인현(31·인천 연수동)씨는 “평화적인 시위를 물대포와 방패로 마구 진압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우리가 그동안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민들은 경찰이 후퇴하는 시위대를 인도에서 연행하고, 위협하는 등 과잉 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종각 앞 인도에서 청계광장으로 향하던 시민들을 경찰이 막았고,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서성진(34·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씨가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이마를 맞아 부어 올랐다. 경찰은 3명의 시민을 연행했다. 경찰은 또 풍림여고 3거리 쪽에서도 인도에 있던 예비군 등 시민 4명을 연행했다. 전체 연행자는 230명 이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영순(40·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씨는 “인도에 서 있는 사람까지 잡아가는 것은 과잉진압이고 명백히 불법”이라고 항의했다.
오전 8시30분. 경찰이 시위대를 계속 추격해 시위대는 대열을 형성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청계광장을 지나 서울광장으로 다시 모였다. 어제 촛불 문화제를 시작한 지 꼬박 13간만이다. 시민들은 서울광장 주변에 모여 부상자를 치료하는 등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을 보고 다시 서울광장으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서로 김밥과 간식을 나눠 먹고 있다. 서울시청 앞 무대에서는 시민들이 경찰의 폭력 진압을 항의하는 규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들의 구호는 “이명박 퇴진”으로 정리되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시위가 물대포까지 동원된 폭력진압으로 격화되면서 이명박 정부는 출범 100일만에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