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진실의 순간

박민진 |2008.06.01 23:41
조회 199 |추천 0

 

 

 

 

 

 

황석영 -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

 

순간.


 ‘진실의 순간‘이란게 있다. 마케팅 용어로는 MOT(Moment Of True)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누군가를 한 순간 좋아하게 되는 그 순간. 혹은 그 누군가를 지독히도 미워하게 되는 순간. 또 완전히 잊게 되는 그 순간 말이다. 그것은 이해심의 결여도 아니고, 짧은 생각에서 나오는 충동적인 행동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설명하기에는 퍽이나 어려운 부산물이다.


 이 진실의 순간은 문학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문장의 선택 혹은 한 단어의 선택이 글의 느낌과 심지어 가치판단의 잣대가 된다. 이런 것들이 어디 문학 뿐일까. 곡의 가사 한 구절. 사진의 구도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황석영의 짧은 단편 <북망, 멀고도 고적한 곳>은 글에서 그 ‘순간’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몸소 느끼게 해준다.


 한 남자는 아버지의 이장을 위해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아버지의 고향을 찾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슬픔보다는 장례의 고된 절차에 심신이 지쳐버린 남자는 이장이라는 번거로운 일을 꼭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 것임에 분명하다. 그는 발걸음이 무겁고, 자신의 초라한 행색이 서글프다.

 

 그의 아버지는 일 때문에 까막골에 오게 되었다. 고향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와 한번 살아보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대신에 낯선 까막골에 급히 묻히고 말았다. 타지였고, 아버지에게는 북쪽 사람이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시대의 아버지의 심정을 어찌 모르이오. 아비의 시신을 이장하여 어머니와 함께 북망이 바라보이는 곳에 모시기 위해 그가 온 것이다.


 아버지의 묘지를 파내는 순간 남자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떤다. 자신에게 피와 뼈를 준 아버지이지만, 죽은 시신을 파내는데 어찌 덤덤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순간 남자에게는 서러운 감정이 엄습해온다. 눈물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찡한 맘도 아니다. 시신을 감싸는 명주가 눈앞에 이르자 그 감정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굵은 뼈와 잔해들을 옮기며 그는 생각한다. 지나간 힘든 시절과 이 습하고 답답한 곳에 아버지를 너무 오랫동안 모셔둔 자신에 대한 책망.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를 서럽게 만든 것이다. 의도하지 않게 목에서 힘겨운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그 마음이 어떤지.


 이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다. 이 순간 그의 감정은 지나간 시절 아비에게 가졌던 원망과 어머니와의 힘들었던 시절이 눈 녹듯 고운 빛으로 새겨짐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부가 설명이나, 감정의 표현 없이도 순간 그가 몸을 떨며 지어보였던 표정까지도 내 마음속에는 깊이 전해져 온다. 북망을 향한 두 분의 행복을 빌며 그는 편한 맘으로 사그러히 그곳을 떠난다.

 

 지나간 시절에 한반도가 겪었던 그 탁한 공기를 마시며 역사를 용서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북망길을 축복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이장하는 의식을 통해서 한국인이 가지는 '효'에 대한 자긍심까지 애써 다른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다고 적절히 그 뜨거운 정서를 표현하며 가슴을 뜨겁게 한다.

 자네 아나? 한(恨)이란 건 ..... 색깔이 있다면 똑 저 모양일 걸세. 청천 하늘을 배경으로 지나가는 맞은편 능선의 중동이가 사태로 비스듬히 잘려 있었다. 한입 베어문 홍도(紅桃)처럼 단애의 속빛은 더욱 강렬했다.

 

 순간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하다.

 북망의 멀고도 고적한 빛깔은

 그 순간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작가는 모든걸 잘 알고 있는 듯 나를 주무른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