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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 #109

강재진 |2008.06.08 13:57
조회 78 |추천 1


 

 

영화에서 그런 장면이 종종 나온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헤어졌는데,

남자는 육교 위로 지나가고 여자는 육교 밑으로 지나가고,

남자는 정문 쪽으로 지나가고 여자는 같은 건물의 후문 쪽으로 지나가고.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그래서 관객인 우린 볼 수 있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은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를 발견하지 못한 채

엇갈리며 지나가 버리게 되는 장면들.

 

남자가 버스를 타고 앞쪽에서 네 번째 손잡이를 붙잡고 있다가 내렸을 때

다음 다음 정거장에서 사랑했던 여자가 바로 그 버스에 타게 되는 것.

그리고 그녀가 잠시 망설이다가 앞쪽에서 네 번째 손잡이를 살포시 붙잡게 되는 것.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며 왠지 지나간 옛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것.

 

영화 속에서 보던 거지만 영화만 그럴까?

우리들도 그렇게 서로 알지 못한 채 몇 번씩 엇갈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그 삶과 자주 갔던 단골집들도 정리하게 된다.

추억이 쌓여있는 장소.

괜히 거기 가서 마음 심란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생활 반경이라는 게 있다.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가던 서점.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가던 산책길.

 

그녀와 헤어졌다고 해서

피한다는 게 더 이상하고 불편한 나의 생활 반경들.

그리고 그녀와 내가 어쩔 수 없이 겹치는 교집합, 공통 부분들.

그런 곳을 지날 때면 혹시 저만큼 있지 않을까? 살짝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정말 영화처럼 방금 전에 그녀가 이곳을 다녀간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만약.. 만약에 내가 정말 그녀를 발견한다면,

하지만 그녀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저만치쯤에서 지나가고 있다면,

나는 달려가서 아는 체를 하게 될까?

어쩔 수 없이 서로 맞부딪힌 상황이 아니라 나 혼자 발견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나는 달려가서 아는 체를 하게 될까?

 

아니, 그러진 않을 거 같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전활 걸어와서

며칠 전에 내가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 걸 봤다 얘기했다.

왜 아는 체 안했냐고 했더니 운전 중이었다고

너무 멀어서 부르지 못하고 그냥 갔다고

그래도 우연히 지나가는 나를 만나서 반가웠다고 얘길했다.

 

그래, 그런 거다.

 

세상은 생각 밖으로 너무 좁고 우연은 수시로 일어난다.

그러니 난 좀 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어야겠다.

아는 체하러 달려올 일 없지만 그녀가 어디선가, 어디선가 날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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