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카터 (James 1924~ )는 미국의 39대 대통령이다.
미 대통령으로서의 업적보다는 인권운동가와 로비스트로
저 잘 알려진 인물로 이에 대한 공로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24년 가난한 땅콩재배 농부로 태어나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는
헤군사관 학교에 입학 졸업 후 장교생활에서도 그리 출중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부친이 별세하자 땅콩농장을 이어받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신앙심으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던 젊은이가 미래 대통령이 되리라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던 중 닉슨의 사임으로 워싱턴 정가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카터는 출마를 선언하고 당당히 대통령으로 선출 된다.
그의 좌우명은 "최선을 다하자"였는데 이에 따른 일화가 있다.
그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소위로 임관했었을 때의 일이다.
임관식 후 부임하는 식장에서 사령관은 그의 경례를 받고도 회전의자를
벽쪽으로 향해 돌려 앉은 채 물었다.
"카터 소위, 귀관은 사관학교 시절에 몇등이나 했는가?'
당황한 카터는 대답했다.
"750명 가운데 57등을 했습니다."
그러자 "귀관은 어찌하여 최선을 다하지 못했는가? 어찌하여 57등 밖에
못했는가 말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카터는 그 후로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 해군 소위로서 그 후 주지사
시절을 거쳐 대통령이 된 후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그의 대통령 시절에 백악관 직원들이 그를 싫어 했었는데 이유는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늦은 시간까지 백악관의 불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퇴근 시간이면 칼 같이 업무를 마감 하던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늦게까지
밀린 업무를 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성실함이 반드시 성공적인 삶과는 연결되지는 않았다. 그의 대통령 재직
기간은 고난과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다지 내세울것 없는 선량한 땅콩농부의
삶이 백악관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에너지 위기가 다가왔고 이를 극복하려는 카터의 노력은 철저히 실패 하였다.
미 대통령을 통털어 재선에 실패한 두 명의 대통령중 한 명이 될 정도로 그의
인기는 땅 바닥에곤두박질 쳤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카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임기 후의 그의 생활은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보다
더 그를 돋보이게 했으며 세계의 만인으로부터 존경받는 인권 운동가이자
봉사 활동가로 재 조명 되기 시작했다.
그이 고백에 "하나님이 나를 미 대통령으로 당선 시킨것은 대통령직을 마친
후에 시키시고 싶은일이 있어서 그러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중재 하는데
기여했으며 특히 해비타트(habitat ;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여 세계적
으로 이 사업을 알렸다 .
84년 뉴욕에서 열린 해비타트 노동 수련 캠프를 인솔 하면서 전직 대통령이
노동자들과 함께 숙식하며 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과 언론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건축기금 모금과 자원봉사 모집, 건축자재 기탁 받는 일들이 훨씬
더 수월해 졌으며 더 많은 무주택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해비타트에 참여해 일주일간 집 짓기에 참여한 후 그는 말했다.
"희생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해왔고 목수일도 늘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며 동시에 남을 도울 수
있는것은 참 기쁜 일입니다."
건축 현장에서도 카터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섭씨 401도가 넘는 폭염속에서도
다른 사람보다 하루일찍 도착해 현장을 둘러 보았으며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현장 책임자와 함께 짓고 있는 집의 진행 사항을 점검했다.
일주일 내내 75세의 노구를 이끌고 벽돌을 쌓고 창문을 달고 페인트를 칠하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지미카터는 스스로를 '자원 봉사자' 라는 칭호 이외의 수식어를
원치 않았다.
일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땀흘리고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는 그는 바로
'예수중심의 삶'을 실천하는그리스도인일 뿐이었다.
그는 지금도 미국의 침례교인 마라나타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그 직분을 대통령이었던 시절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비 영리 단체인 카터센터를 건립해 국내의 정치적 이슈와 관련한 갈등해소,
민주주의 확립과 인권신장, 질병과 고통 퇴치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진실로 그에게 미국의 대통령이란 더 큰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준비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