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나는 지금까지 시위라는 것에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시위가 별로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아니라도 여러 사람들이 나오니까 하는 생각때문이 강했다. 그러나 과제 때문에 처음 참가하게된 시위에서 내가 느낀 것은 다름이었다. 이 다름이란 신문이나 경험담을 보는 것과 다름으로 사실여부의 다름이 아니라 시위에 대한 느낌의 다름이었다.
첫 번째로 느낀 것은 공포 였다.
이순신 장군 동상앞을 막아선 컨테이너 박스의 위압감과 옆으로 돌아갔을 때 빈틈없이 길을 막아선 전경버스, 그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한 전경과 눈을 마주쳤고, 바로 시선을 피해 놀람과 공포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런 느낌은 다른 전경들을 볼때도 계속되었고 용기를 내어 인사를 헸음에도 무시당했을 때 더 고조되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저들을 무서워 할 이유가 없었고 저들도 나를 무시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모두 이 나라를생각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왜 서로를 불편해 해야 하는지. 내가 저들을 무서워 하는 것에 미안함이 느껴졌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즐거움이었다.
시위대들은 마이크에 대고 자유 발언을 하고 한쪽에서는 풍물패가 흥을 돋우고 다른쪽에서는 율동패의 율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소 생각하던 시위의 모습인 싸우고 진격하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축제에 온 기분이었고 그런 흥겨움 속에 민중들은 하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반대하는 정부의 요인들은 이 하나됨을 거부하고 있었고 이 즐거움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즐거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세 번째로 느낀 감정은 광기였다.
1시20분쯤 컨테이너 앞으로 인권연석회의에서 준비한 스티로폼으로 연단을 쌓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스티로폼을 손에 손을 통해 옮겨왔고 자유 발언을 할 연단이 완성되어 갔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연단을 쌓지 말고 계단을 쌓아 컨테이너를 넘자고 선동하고 그 선동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스티로폼으로 계단을 쌓기 시작했고 연단을 쌓던 사람들과 계단을 쌓는 사람들 간에 충돌이 있었다. 연단이 완성된 이후에 뒤쪽에서는 연단을 만든것에 대해 규탄하고 진행되고 있는 자유 발언을 방해하는 양상이 일어났고, 양측은 서로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을 벌이기까지 했다. 심지에 취객들까지 싸움에 가세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그 본질마저 희미해지는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놀람이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속에서 다른 군중들은 예비군 시위대들과 함께 그 상황을 진정시키고자 했고 그 시위 자체를 분열시킬 듯 싶었던 갈등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었고 다시 시위대는 하나로 뭉쳤다. 도저히 수습되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상황이 순식간에 해결되어 버리는 것을 보고 시위대의 자정능력에 놀라움을 느꼈다.
긴 듯 짧았던 최대 규모의 촛불 시위는 동이 터오면서 정리 국면에 돌입했고 계속 도로를 점거하던 극렬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후 시위는 마무리 되었다. 12시간 가량의 긴 시위를 되돌아보니 뭔가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으나 자신과 다른 의견을 공격하던 새벽의 모습이 떠올라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집에 들어오면서 내내 생각했다.
시위대의 방법은 완전히 옳을까? 아니라면 옳은 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 길을 인정하려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