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다 핀 꽃 두 송이
학교를 파하고 친구 생일잔치에 가던 길이었단다.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취해 흥청대던 지난 6월 13일, 열 네 살 동갑내기 미선이와 효순이는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 갓길을 걷고 있었다. 여느 10대들과 다름없이 그들도 아마 붉은 악마 이야기며 축구 스타 이야기로 수다꽃을 피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몸 위로 미군의 집채만한 장갑차(궤도차량)가 덮쳐왔다. 마주 오던 다른 차량과 교차통행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리하게 전진하던 장갑차는 갓길을 넘어 풀숲에까지 뚜렷하게 바퀴자국을 남기며 그들을 치어 죽였다. 이렇게 미선이와 효순이는 미쳐 피할 틈도 없이 허망하게 스러져간 것이다. 뼈가 바스러지고, 핏줄이 터지고, 살점이 짓뭉개진 그들의 처참한 몸뚱아리는 그 황망하고 참담했던 순간을 증언해준다.
단순한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책임은 장갑차 소리를 듣지 못한 소녀들에게 있지, ‘이 나라를 지켜주느라’ 애쓰고 훈련하는 미군 쪽에 있지 않다고, 미군이 없으면 당장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겠냐고, 도리어 미군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미국과 북한이 붙으면 미국을 응원하는 우리의 심리 밑바닥에는 ‘기브 미 초콜릿’으로 함축되는 미국에 대한 무의식적 선망이 깔려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것만은 아니다 싶다. 미군 주둔의 효용성이나 복잡한 한미관계, 혹은 최근에 불거지기 시작한 반미감정 등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의 두 딸, 미선이와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아니, 이 땅에서 일어난 주한미군 관련 사건․사고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결방식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지난 99년부터 2001년까지 주한미군 관련 사건․사고는 총 1천246건인데, 그 중에서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한 경우는 69건으로 5.5%에 불과하다고 한다. 특정영토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해당국가가 범죄인을 처벌하는 것은 국제법상 고유한 국가권한임이 자명한데도, 그러한 기본적인 주권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기막힌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미군 헌병들은 사고를 낸 미군 피의자들을 영내로 데리고 들어가서 감감무소식이다. 한국 경찰은 그 피의자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공무와 관련이 없는 미군 범죄는 한국 정부에 재판권이 있고, 공무수행 중에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재판권을 이양 받아올 수 있다’는 상식적인 해결방식은 개정된 소파(SOFA) 규정에만 얌전히 있지, 막상 현실에서는 전혀 발동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결국 한국을 독립된 주권국가로 보지 않고 아래로 깔아보는 미국정부의 고자세에, 그리고 미국을 동등한 협약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위로 올려보는 한국정부의 저자세가 문제다.
일본의 경우, 미군이 주둔해있는 오키나와섬에서 어린 소녀가 미군에 의해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전 주민이 들고일어나 항의를 했고, 이로써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까지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사건의 진상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오죽하면, 주한미군의 전차는 기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피와 땀으로 굴러간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올까?
우리는 92년 윤금이 사건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자매들이 더 이상 주한미군의 카니발적 횡포에 제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번 주간은 고 신효순․심미선양을 위한 전국민 추모기간이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피어보지도 못한 채 강제로 꺾여버린 그들의 넋을위로하고이런수난의역사가되풀이되지 않도록 애곡하며 기도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구 미 정 (기독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