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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1. 설교입니다.

이중무 |2008.06.17 00:22
조회 42 |추천 0

사랑이 없으면 …… (고전 13:1-3)

 

    오늘날 세상에는 사회 문제, 정치 문제, 가정 문제, 그리고 종교 ․ 도덕 문제, 전쟁과 재난과 기근과 질병 등 너무도 문제가 많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에는 공통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끝없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해결을 보았는가 하면 또 다른 문제가 시작이 됩니다. 문제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다하다 지치면 굳이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느니 차라리 그냥 안고 살아가는 것이 낫겠다는 마음까지 생깁니다.

   둘째는 『불확실성』입니다. 문제 자체를 놓고 우리는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봅니다마는 확실하게 파악하지는 못합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해결을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못합니다. 전혀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방향감각을 잃었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이 세대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막연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문제의 원인도 모르고 대책도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의 근본은 바로 『사랑의 문제』입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 3 :1-2).

오늘날 사랑이 이기주의적인 사랑, 물질적인 사랑, 자본주의적이며 유물주의적인 사랑, 쾌락적이고 향락주의적인 사랑으로 병들어가고 있음을 봅니다. 사도 바울의 예언이 지금 우리 시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의 타락이 왔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24:12-13).

“끝까지 견디는 자”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아무리 불법이 성해도 끝까지 사랑이 식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사랑의 힘으로 존재합니다. 화초를 가꾸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지만 사랑을 주지 않으면 화초는 자랄 수 없습니다. 곧 죽어버립니다.

     어떤 곳에 나무 12 그루를 심어 놓고 거기에 예수님의 열두 제자 이름을 붙였답니다. 그런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 등의 11 그루는 모두 잘 자라는데 똑같이 거름을 주고 물을 주는데 가룟 유다 나무는 죽어버리더랍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이 욕을 하고 미워하니까 그 나무가 말라버리더라는 것입니다. 화초도 사랑을 받아야 잘 자랍니다. 

 

     공산주의 나라에는 집단농장 제도가 있는데 이것이 잘되지 않아서 늘 식량 문제가 컸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구(舊)소련에서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대개 정치범들로 구성된 소련 인구의 1%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가장 나쁜 땅을 사유지로 분배해 주었습니다. 그 척박한 땅에서 자유롭게 농사를 지어먹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매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 1%의 농민들의 생산량이 소련의 전체 농업 생산량의 27%를 차지한 것입니다. 감자는 전체 생산량의 62%, 우유와 소고기는 34%, 달걀은 47%로, 종합해서 전 생산물의 27%가 그 1%의 농민들 손으로 생산되었던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애착)이 있으면 풍성한 수확이 있다는 결과.

 

   어디 농사뿐이겠습니까? 모든 일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근본 문제는 『사랑』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사람 되게 하는 것이요, 성도로 성도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관해서 말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1절). 아무 것도 아닙니다(2절). 내게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3절).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병든 사람이 아니고,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무식한 사람이 아니고, 권력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Nothing).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랑을 제거해 버리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1.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1절)

 

(1) 이교도는 아무 유익을 줄 수 없다.

 

   여기에 두 가지 악기가 나옵니다. 구리와 꽹과리입니다. 이것들은 옛날 이교도들이 이방신전에서 주로 사용하던 악기들이었습니다. 잠자는 신들을 깨우거나, 악령을 쫓아내기 위해서 구리를 두드리고 꽹과리를 울리면서 소리 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괴성을 발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서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 이교도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방언을 하며, 하늘에서 쓰는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교도의 모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신(邪神)우상을 섬기는 사이비 종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니라 죽음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사악의 종교입니다. 이런 종교는 타인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2) 입에 발린 말로만으로는 유익을 줄 수 없다.

 

   기도할 때 너나없이 방언을 하고, 누구에게 무슨 충고나 말씀을 전할 때는 얼마나 잘하는지 마치 천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사랑이 전혀 없었습니다. 실천이 없었습니다. 행함이 없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5-16)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7-18)

 

   우리가 말을 잘하는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의 말속에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줄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변이 부족하고, 표현력이 없고, 어눌하다 할지라도,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말,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하면 다른 사람에게 격려와 위로,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2.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2절).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언의 은사에는 뒤따라오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입니다. 비밀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지식은 이미 알려진 것입니다. 남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내가 알고, 남에게 없는 지식을 소유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수반되면 놀라운 기적을 가능케 합니다. 산을 옮길만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치 못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자기는 대단하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모든”이라는 단어를 몇 번 사용했습니까? “모든 비밀”, “모든 지식”, “모든 믿음” 3번이나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그 결과가 무엇으로 바뀌어져 버립니까?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nothing).” 이것이 사랑의 중요성입니다. “모든”에는 사랑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나이다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something』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nothing』 의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예언하는 능이 없을지라도, 모든 비밀, 모든 지식을 알지는 못할지라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도 없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가장 큰 계명, 가장 큰 은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존재, 값어치 있는 존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사랑이 없으면 내게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구제와 헌신의 은사입니다. 세상에 자기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써서 구제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은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헌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은사 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큰 구제와 헌신을 할지라도 그 당사자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구제나 순교가 사랑이 없이도 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명예나 부를 과시하기 위해서, 혹은 자기의 선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구제나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①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마 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구제함.

“외식하는 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②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행 5:1-11)

바나바에 대한 시기심으로 땅을 팔아 일부를 감추고 구제에 동참함.

사랑이 아닌 불순한 동기. 결국 죽임을 당함.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읽은 본문을 통해서 사랑의 중요성을 세 가지로 일깨워주었습니다. 첫째로, 사랑이 없으면 남에게 주는 것이 없습니다(The loveless person gives nothing). 둘째로, 나 자신도 아무것도 아닙니다(The loveless person is nothing). 셋째로, 나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The loveless person gains nothing).

 

   여러분,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올 것 같습니까?

불과 9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사랑은 말과 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삶을 통해서,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실천이 있어야 되고 사랑에는 열매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Life - Love = 0』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바치고, 아무리 큰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지도 못하고, 나도 얻는 것이 없고, 또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값어치 없는 삶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Mercy Good Faith’

오래 전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입양하기를 원하지 않는 아이가 있습니까?” “네, 있어요. 10살짜리 여자아인데 매우 흉한 꼽추입니다. 단지 이름만은 좋아서 ‘Mercy Good Faith’(훌륭한 믿음의 자비)입니다.” 그러자 찾아온 분은 즐겁게 말하기를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그 사람은 그 아이와 함께 떠났습니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고아원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그곳 원장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보질 못했었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하고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에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Mercy Good Faith’ 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 줄 사랑을 가지고 있었기에 ‘Mercy Good Faith’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100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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