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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 #177

강재진 |2008.06.17 14:47
조회 111 |추천 2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책을 읽고 있다.

 

- 재밌니?

 

내가 그렇게 물어보면 그녀는 한참만에야,

 

- 응.

 

쳐다보지도 않는다.

넌 나보다 더 재밌는게 생겼구나.

나 역시 그래. 아주 많지. 나도 봐야할 게 많고 할 일도 많아. 나도 많아.

그녀가 책에서 눈을 떼고 나를 한번쯤 바라보게 하려고 나는 이런저런 말들을 생각해낸다.

 

- 파마 좀 하지 그래?

 

내 말에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아무 대답도 않는다.

 

- 심심한데 우리 싸울까? 어?

 

역시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 있잖아. 너 아직 나 사랑하니?

 

그래도 이번 질문은 효과가 있었다.

날 쳐다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즉각적으로 대답을 했으니까.

 

- 시끄럽거든.

 

그런 얘길 들었던 적이 있어.

한 3,40년을 같이 산 부분데

어느날 여자가 외출했다가 전철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대.

그때 전철 안에서 저만치 낯익은 중년 남자가 보였는데 가만보니까 자기 남편이었던거야.

그렇게 우연히 만나면 굉장히 반갑잖아. 하지만 굉장히 반갑지만 여잔 아는첼 안한거야.

왜? 귀찮아서.

 

사람들 있는데서 부르기도 뭐하고, 부르면 괜히 남의 시선만 글고,

남편이 서 있는 곳까지 꾸역꾸역 사람들 헤치고 걸어가기도 뭐하고,

어차피 집에 가면 볼건데 뭐, 이런 기분이었던거지.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굉장히 좋은 사이래.

 

난 잘 이해가 안되지만.

그 얘기 우리 엄마한테 해줬더니 '왜 이해가 안돼?' 그러시더라.

그런거 있나봐. 사랑하는 사람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면

너무 편안해서 이런거 저런거 다 생략하게 되는 거.

아, 근데 웃긴 건 여자가 전철 내려가지구 지하도 나오니까

비가 오고 있었는데 거기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더라는거야.

그니까 남편도 전철안에서 이미 아내를 본거지. 그래서 둘은 같이 우산 쓰고 집에 갔대.

 

난 왜 이 얘기가 그렇게 아릅답지?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책을 읽고 있다.

가끔 내가 다른 일에 열중하다 보면 그녀가 옆에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나 흘깃 한번 쳐다보고 그녀가 옆에 있으면 나는 안도하곤 한다.

사랑이란 말도 더 이상 하질 않고,

예전처럼 눈물이 쏙 빠지게 싸우지도 않아서

이건 아마도 우리의 권태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서로 너무 뻔해져서 할말도 없어져버린 사이.

하지만 어디 설레는 사랑만이 사랑일까?

너무 뻔해진 이 사랑이 더 고마운 거라고.

 

 

 

사랑을 말하다

 

 

추천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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