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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64년 서독방문 후기 "근면과 부흥을 보고"(三編)

장용복 |2008.06.19 20:32
조회 88 |추천 0

 

  한반도운하 첫 삽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박정희 대통령 64년 서독방문 후기 "근면과 부흥을 보고"(三編)
(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동아일보에 직접 연재한 서독방문 후기)
1964. 12. 25   
  
三編 
이제 독일 경제 일면을 보고 느낀  점을 간단히 추려보고자 한다 .  여기서 일면이라고 한 것은 짧고 바쁜 여정이었으므로 세세히 보지 못했고 또 세밀히 보았다 해도 그 일부 일지모르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제력은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거니와 2차 대전에서 폐허가 된 잿더미 위에서 그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인내로써 전쟁이 끝난 10년 후 즉 1950년 벌써 전쟁  전의 전성시대인 1935년대의 독일경제를 달성했던 것이다.

 

물론 전체 규모로 봐서는 미국이나 소련에 비해 아직 미흡하다 하겠으나 분단된 반쪽국토에 60억불이란 외화를 보유하고  60여개국에 원조를 제공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 그들의 상품은 세계각지에서 가장 양질의 상품이요 신용있는 상품으로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오늘의 독일경제와 내일의 전망을 가히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데막제철공장시찰 1964. 12. 10

 

나는 이번 방문 중 독일에서 유명한 몇 개회사를 방문했다. 디마크 회사, 시멘스,  AEG 등 3개 회사를 방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시멘스 회사는 1백 50년의 역사와 25만명이나 되는  종업원을 가졌고 AEG회사는 2백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하며 이들 회사는  2차대전에서 완전 파괴된 것을 다시  완전복구하였다고 한다. 특히 시멘스회사분사는 서백림시내에 자리잡고 있고, 베를린 시를 복구하는데  그이 솔선해서 협력했다는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 조국이 있어야 회사가  있고 민족이 있어야 회사도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기업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생각했다.
 
시멘스 회사를 방문했을 때 사장으로부터 손으로 돌리는 자그마한 전화기모형을 하나 기념품으로 받았다. 물어본 즉 1백 50년 전 이 회사가 처음  창설될 때 제작한 전화기의 묘형이라고 한다. 문득 나는 64년에서 1백 50년을 소급한 1814년대를 생각해 봤다.

 

바로  불란서의 나폴레옹이 구주를 석권하던 시대였다. 그 시절에 그들 조상은  벌써 산업혁명을 하고 근대화를 위해서 이런 공장을 세우고 각종  기계를 제작하고 산업의 근대화에 구주각국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그 때 무엇을 했는가. 이조말엽 순조왕시대 양반들의 싸움은 가증되고 조정에는 외척의 행패가 극기하고, 관리들은 양민의 수탈에 혈안이  되고 관기가 극도로 땅에 덜어지니 각지에서는 민란이 일어나되 1811년에는 공경내란이 일어나서 어지럽기 한이 없었으니 과연 오늘날 우리가 구라파 제국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은가.
 
또 1백 50년이나 뒤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고 1백 50년이라는 이 낙후된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는 그들의 몇 배의 노력을 다해야 하겠거늘 과연 우리 국민들이 그러한 각오와 노력을 하고 있는가? 독일의  부흥이 결코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명심하고 우리 모든 국민들이 일대각성을 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새삼 촉구하고자 한다.

 

 

▲박정희 대통령 베를린공대 시찰 1964. 12. 11

 

이들 회사를 방문하고 또 하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은 이들 회사는 어느 회사고 회사내에 직업교육을 하는 학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AEG회사에서 그 교육상황을 보면 15세부터 17/18세까지의 우리 나라의 초급, 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3년간의 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완전한 숙련공을 양성하기 위한 실업교육으로서 학과보다는 실습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 기름이 묻은  작업복을 입고 시함을 깎는 일, 산소용접, 절단기로써 철물을 깎는 일 등 공장에서 직공들이 일하는 것과 꼭 같은  실습이다.
 
그들이 작업하는 책상 위에는 모두 작업일지를 비치하고 있고 하루 작업을 마치면 작업을 한 설계도와 작업내용을 기록하고 하단에는 교관의  평점과 확인서명이 있고 또 그  옆에는 가정에 돌아가서 부형들이 확인했다는 서명란이 있다.

  

그야말로 깨끗이 알뜰하게 기록이 되어 있다. 3년간 수료를 하면 숙련공으로 합격증을 받고 국가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서 직업을 얻어 일할 수 있다한다.

 

이 회사가 2차대전 후 양성한 인원만 해도 1백 30만병이라고 하니 전국 각 회사에서  이같이 양성된 기술공이 얼마나 많겠는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독일국민은 전부 일인 일기를 가진 숙련공이라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그들의 공업이 발달하고 산업이 부흥한 원인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방향을 다시  검토해야 하겠다는 것을 새삼 통감하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도 독일정부의 기술원조에 의해서 인천 인하공대 내에 직업학교가 하나 있어 독일 기술자들이 와서 이와 꼭 같은 교육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 이러한 학교가 많이 생기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그들의 농촌 역시 도시에 부럽지 않게 알뜰하게 꾸려져 나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전 인구의 6%~9%가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하니 고도로 공업이 발달된 그 나라의 이면을 엿볼 수가 있다. 경작지, 목장, 임야가 확연히 구별되어 있고. 한치의 땅도 늘리지 않고 알뜰히 가꾸고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식량은 완전 자금자족이 되며, 채소, 육류 등 부식물은 일부 수입한다고 한다. 좁은 땅에 5천 7백만이란 인구를 가지고도 식량의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토지의 이영도를 최고로 올리고 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토지도 우리가 잘 활용하면 아직도 얼마든지 이용도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특히 독일의 농촌은 중소공업과 농촌과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게 하여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하겠다.

 

농촌과 공업이 상호의존해서 병행하여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모방할 좋은 점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독일농촌의 어디를 가나 삼림이 울창하고 그들 국민들이 나무를 수호하는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가장 부럽게 느낀 점의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1964. 12.

 

박  정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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