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합은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았지만 불안해한다.
엘리야 예언자는 아합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
아합과 그 후손들이 심판받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겁에 질린 아합은 하느님의 자비를 청한다(제1독서).
이웃 사랑의 완성은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경지다.
보통 사람은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없다.
함께 지내는 가족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과 먼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늘 부딪히는 사람을 제쳐 두고
먼 곳의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일이다(복음).
제1독서~~~~~~~~~~~~~º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21,17-29
[나봇이 죽은 뒤에] 17 주님의 말씀이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내렸다.
18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임금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는 지금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에 내려가 있다.
19 그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살인을 하고 땅마저 차지하려느냐?’
그에게 또 이렇게 전하여라.
‘주님이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20 아합 임금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 내 원수! 또 나를 찾아왔소?”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이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21 ‘나 이제 너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나는 네 후손들을 쓸어버리고, 아합에게 딸린 사내는
자유인이든 종이든 이스라엘에서 잘라 버리겠다.
22 나는 너의 집안을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의 집안처럼,
그리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안처럼 만들겠다.
너는 나의 분노를 돋우고 이스라엘을 죄짓게 하였다.’
23 주님께서는 이제벨을 두고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이제벨을 뜯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4 ‘아합에게 딸린 사람으로서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가 쪼아 먹을 것이다.’”
25 아합처럼 아내 이제벨의 충동질에 넘어가 자신을 팔면서까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자는 일찍이 없었다.
26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인들이 한 그대로 우상들을 따르며 참으로 역겨운 짓을 저질렀다.
27 아합은 이 말을 듣자, 제 옷을 찢고
맨몸에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자루옷을 입은 채 자리에 누웠고, 풀이 죽은 채 돌아다녔다.
28 그때에 티스베 사람 엘리야에게 주님의 말씀이 내렸다.
29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º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º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미운 짓을 한 사람을 밉게 보지 말라는 말입니까?
미움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경험합니다.
남이 볼 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본인에게는
‘마음의 문을 닫을 만큼’ 큰 상처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조건 용서해야 하는 것인지요?
미움은 한순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미움이라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원인과 시간이 있습니다.
세월 속에서 미움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용서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만큼이 아니라면 ‘그 반만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순간에 용서하려 듭니다.
마음먹으면 용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용서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라도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받아 주십니다.
그러니 용서가 힘들 때에는 주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며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착한 사람만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모두를 자녀로 생각하십니다.
그러니 용서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용서하는 이에게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주어지기에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