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을 폭행하는 폭력 시위대.
이게 촛불문화제를 문제시 하는 이슈인 것 같다.
어디까지나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 이런말은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저건 잘못된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근데 이 문제가 전경과 시위대의 문제인가?
이걸 축소해서 보면 그저 전경은 '불쌍한' 시위대는' 집에서 쉬다가 선동된' 이라는 말로 수식할 수 있을 것이다.
전경에게 스트레스 해소하러 자신의 소중한 개인 시간을 쪼개가며, 새벽까지 거기서 버티는 사람은 없다.
거기서 버티는 이유는 우리가 직접하지 못하니 간접적으로 하라고 뽑아놓은 자들이, 간접적으로 우리가 직접 하려던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촛불을 든 것이다. 그리고 그 간접적으로 하라고 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도 아니고, 잘 하라고
요구했다. 여러번의 거짓말을 감수하면서 까지 말이다.
근데 번번히 저 전경들에 의해 그것이 실패했다.
바로 앞에는 전경이 있고, 그 뒤에는 우리가 말을 전해야 할 사람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앞 전경은 길을 막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또 전경차가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를 뜯고 불을 지르고, 전경을 때린다.
이에 뒤는 편하다. 몇 번의 거짓말만 하면 되니 말이다.
앞에는 전경이 막아주고, 뒤에서 자신들은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한다.
3개의 신문 역시 앞의 상황만 보도하고, 뒤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저 저 거짓만을 보도한다.
그리고 이 앞의 상황에서 이들은 대한의 아들이네, 여러분의 자식이네 하면서 피로에 지친, 부상당한 사진을 보인다.
광우병대책위에서 공개토론을 제안했을 때도 저들은 뒤에만 있었다.
협상이 협의로 끝난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저 뒤에만 있었다.
그러면서 항상 전경은 앞에 있었다. 시위대와 접점을 이루면서 말이다.
난 이제 여러차례 말한 것과 같이 폭력 시위에 찬성한다.
촛불문화제에 반대하는 여론이 60%를 넘었다는 저 뉴시스의 기사에 찬성하는 40%에 희망을 건다.
명박이가 30%가량으로 당선된 저 여론조사를 떠올리며 말이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저 폭력은 분명 불법이다.
그러나 저 폭력은 전경들과 때리고 싸우는 폭력으로 축소되어선 안된다.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기도등의 폭력으로 확대되어서도 안된다.
이건 단지 간접적으로 잘 하지 못하는 저들을 직접적으로 나서 끌어내리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첫번째 전경과의 폭력은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두번째 전복이니 뭐니 운운하는데, 이미 내 머리 속에 이 나라는 저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원래로 돌려 놓는데 힘을 보태는 것 밖에 없다.
이런 내 생각에 사람들은 주변사람들은 반대한다.
그러나 난 그들의 반대에 강하게 한마디 하고 싶다.
넌 무엇을 했느냐고 말이다.
촛불문화제에 찬성해서 그곳에 나갔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그렇다는 말이 나오면 난 그와 대화할 수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에 지지한다고 하면 넌 반대집회에 한번이라도 나가봤느냐고 묻고 싶다. 그래서 한번이라도 그렇다는 말이 나오면
난 그와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즉 집에서 복거일 처럼 가만히 있었다면, 그냥 뒤집히는 꼴도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라고 말하고 싶다.
전경이 불쌍한가? 사진으로는 아프리카의 난민도 불쌍하고 북한 난민도 불쌍하다.
그들을 진정 생각하며 전경에게 초코파이와 물을 주는 것도 광화문의 사람들이요, 그들을 때리는 것도 광화문에 있는 사람들이다.
뭣도 모르면서 집에서 자판 혹은 리모콘이나 두드리며 단편적으로 알면서, 그것을 지켜만 보는 사람들은 그저 앞으로도 지켜만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