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녹두대(펌)
정현호
|2008.06.28 04:05
조회 130 |추천 0
녹두대가 행동조직으로 최선봉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며칠 전 만난 어느 후배는 술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로 군대보다 더 했다고 표현했다. 나중에 군대에 들어갔더니 녹대(녹두대의 별칭)보다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편했다나. 남들도 알만한 힘든 곳에서 군생활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녹대가 입만 살은 조직이 아닌 실천과 행동의 조직으로 떠오르는데는 한 가지 핵심이 있었다. 나름대로 평가하자면 그건 규율이었다. 추운 겨울 철규(이철규 열사)형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병원 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신문을 덮고 자면서도 원칙을 지켰다. 자신이 근무조일 때는 병원 순찰을 철저하게 하고 휴식조일 때만 잠을 잤다. 그런 생활을 몇 달동안 했다. 가투에 투입되는 것도 오다를 받는 조만 움직였다. 가투에서 싸울 때도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 타격조 일 때와 대열 보호조 일 때 일이 달랐다.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없다. 강철 같은 규율을 강조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력은 때로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여의도 시위, 현대 골리앗 투쟁에도 독대가 투입됐다. 이들의 행동은 다른 조직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무장한 행동조직이지만 대중들 앞에서 보여 준 절제와 규율은 대단했다. 전투조직으로서 강건함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혼연일체와도 같은 조직력 그 자체였다. 몇 백 대오가 되도 투쟁에서는 하나처럼 움직였다. 그래서 전경들도, 백골단도 그런 녹대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전대협 집회나 서대협 집회에서 보여 준 녹대의 활약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기이했다. 직격탄이 날아와도 달아나지 않고 대열도 깨지지 않고 오히려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무장조직이었다. 그래서 사복경찰이나 백골단도 이들의 행동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시 이런 녹대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아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녹대의 그 저력 뒤에는 철저한 규율과 실천으로 무장한 힘이 있었다. 녹대가 창설됐을 때 건준위(민주총학생회건설준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백영권은 강제징집 영장이 나온 상태였다. 하지만 영권이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헌병대와 경찰은 그를 잡으려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태연하게 시내를 돌아다녔다. 바로 녹대가 그를 보좌했기 때문이다. 일반인처럼 다니지만 단봉(쇠파이프)을 팔에 끼고 다니는 녹대 대원만 해도 무려 50여명이었다. 영권이가 커피숍에 들어가면 그들이 입구와 곳곳에서 그를 보좌했다. 날고 긴다는 사복조 경찰 200여명이 있어도 녹대 50명을 잡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떡 버티고 있으니 누구도 그를 검거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87년 대선을 앞둔 터라 그런 모습은 시민들의 눈에도 자주 띄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을 막아내는 것을 지켜 본 시민들은 어떠했겠는가. 녹대가 있는 곳에선 시민들의 환호도 뒤따랐다. 음식과 음료수를 내오고 때로는 담배값이라며 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녹대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낳았고 찬사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서울쪽 대학가에서는 극찬의 대상이었다. 그런 녹대의 추억과 기억이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젊은 날에 우리가 주장하고 내세웠던 것은 무엇일까. 음모적이고 권력지향적인 것과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살면서 그 때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당당하게 살았던 그 때의 삶으로부터 지금의 삶을 영향받는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교훈은 같다. 규율이 없는 조직은 조직력이나 단결된 힘이 없다. 원칙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선택 앞에 늘 놓여 있다. 가치롭고 당당하게 살 것이냐 아니면 권력이나 자본이면 모든 걸 저버리고 노예처럼 살 것이냐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