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3얼 17일
당신의 편지는 이미 한 달 전에 씌어진 것인데 이제야 답장을 받으시게 된 것은 저의 잘못만도 아닙니다. 그 편지는 파리로 갔다가 다시 제가 항시 있던 주소로 가는 등 저의 뒤를 따라다닌 셈입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이제서야 겨우 그 편지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즐거이 저의 과거생활에서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저의 작품을 읽으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써야 할까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야만 할지도 모르며 여행에 대해 말씀드려야 할지도 모르고 여러 도시에서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애기해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댁도 물론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제가 되풀이되는 초초감과 나의 운명적인 권태감에서 단순한 여행으로서뿐만 아니라 그 나라들의 현재와 과거를 생생하게 느끼면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여러 곳으로부터 제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를 말입니다.
저는 8세 때부터 이탈리아를 알고 있었고, 또 그 나아를 좋아했습니다. 그 나라는 다양함과 온갖 형태가 가득찬 나라였습니다. 말하자면 제게 았어서의 우화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러시아였습니다. 러시아는 1899년과 1900년에 있었던 여행에서 제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세계, 전대미문의 넓이를 가진 섹계를 열어주었을 뿐더러 그 나라가 가진 인간적인 소여성小與性은 저로하여금 타인과의 사이에서 형제애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했습니다.외아들인 관계로 양친에게 받은 영향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참된 교류는 맛보지 못햇습니다. 당신도 아마 책에서 읽으셨겠지만, 러시아는 저의 체험과 감수성의 기본 요소가 되었습니다. 1902년 이후로 파리가 저의 창착의지의 기초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파리에서는 위대한 로댕의 영향 밑에서, 화가나 조각가처럼 자연을 앞에 두고 자연을 이해하며 자연을 모방하면서 창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로댕은 저로하여금 서정적인 표피와 값싼 감정에서 빠져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 엄격한 훈련과정에서 얻었던 최최의 체험이 이란는 시였습니다. 그리하여 1902년 이후로 저의 거주지는 파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 가지 못햇던 것은 아닙니다. 틈틈이 여러 달씩 이탈리아와 스칸디나비아(덴마크와 스웨덴)에 체류했으며 프랑스의 속령인 알제리와 튀니지와 이집트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은 역시 러시아와 파리의 여행입니다. 스페인도 그렇습니다. 톨레도를 지나서 1912년 겨울을 스페인에서 지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체험이 실제적으로 최초로 묶어진 것이 며 가장 어렵다는 입니다. 비가는 1912년에 시작되었으나 전쟁 떄문에 오랫동안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 짧은 편지에서 더 이상의 것은 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이 편지가 비록 간단하기는 하지만 당신의 흥미를 어느 정도는 만족시켰으리라고 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