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있음.
15년 동안 아내를 빼앗긴 채 살아온 남자가 아내의 얼굴을 잊고, 복수와 관계없이 엉뚱한 사람들만 골라서 죽인다. 그 남자는 아내를 빼앗아 간 터핀 판사에게 극도의 분노를 느끼고 있지만 터핀 판사의 집은커녕 터핀 판사의 일터에도 관심이 없다. 그는 그저 시종일관 위압적으로 들어선 공장 굴뚝만을 응시할 뿐이다. 이쯤 되니, 그는 정말 복수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는 런던에 도착한 벤자민 바커의 시선을 빠르게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벤자민 바커의 시선에는 공장에서 뿜어내는 연기가 가득 찬 잿빛 하늘과 시궁창 같이 너저분한 거리, 벌레 같은 삶을 영위하는 빈민들과 창녀들 뿐, 화사했던 옛 런던의 모습은 없다. 그리고 시선이 끝내 닿는 곳은 공장의 검은 연기가 뒤덮은 하늘을 배경으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다.
파이 가게는 얼마 후, 재료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파이를 만들어 파는 것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철저하게 자동화된다. 벤자민 바커가 2층 이발소에서 사람을 죽이면 곧장 지하실로 떨어지고, 지하실에 쌓인 시체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분쇄기 안으로 들어가 잘게 부수어진다. 고르게 다져진 시체는 밀가루에 반죽되고 구워져서 누군가의 입 속으로 들어간다. 이러한 일련의 자동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써 러빗 부인의 파이 가게는 하나의 작은 공장처럼 묘사된다.
엽기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작은 공장은 영화의 전체적인 배경을 구성하는 공장의 이미지와 내내 오버랩 된다. 이발소를 찾는 사람들과 파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계급을 감안했을 때, 빈민을 죽여 자본가들이 먹는 이미지는 고스란히 공장에서의 노동자 착취와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벤자민 바커는 착취 이미지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심판자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즉, 벤자민 바커가 심판하는 대상은 터핀 판사 일당이 아니라 (산업혁명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어 살육과 착취가 가볍게 이루어지는 사회다. 이러한 시선을 통해 의 관심은 복수보다는 모순 사회를 전시하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벤자민 바커의 아내, 루시는 피렐리가 데려온 부랑아 토비와 더불어 영화 속의 최하층 계급을 구성한다. 벤자민 바커는 루시를 죽이고 러빗 부인을 죽이고 끝내 토비에게 죽임을 당한다. 토비가 벤자민 바커를 죽이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한 때 벤자민 바커와 함께 유사가족을 이루었던 러빗 부인에 대한 복수로, 함축적으로는 계급적 차원의 복수 내지는 착취에 대한 자력 구원 정도로 읽힐 수 있다.
작은 공장(파이 가게)에서의 착취 파티는 가게가 문을 닫게 되면서 끝이 난다. 이로써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리라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다. 악마의 성처럼 을씨년스러운 공장은 앞으로도 검은 연기를 계속 뿜어내리라는 것도, 런던 거리에서 몸 팔고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시궁창의 벌레 같은 삶을 연명해 나가거나 혹은 누군가에게 착취당하다가 쉬이 버려지리라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토비는 제가 왔던 빈민굴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파티의 끝에 이르러,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직감한다. 남은 것은 오직 피로 환원된 허무다.
는 팀 버튼의 다른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절망적이다. 사회적 모순 극복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대신 공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라 후폭풍처럼 몰려오는 허무를 그대로 방치하기 때문이다. 피아를 막론하고 살해하고 살해당하는 의 결말은, 사랑으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팀 버튼의 전작 의 결말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팀 버튼의 시선이 얼마나 염세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