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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or Pantaleon Piazzolla 그를 말하다.

양일환 |2008.07.13 12:56
조회 105 |추천 2

대통령이 바뀌어도 탱고는 변하지 않는다.

 

"탱고는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짜 탱고는 이미 오래전, 1955년 정도에 사라졌지요. 그 이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은 탱고의 옷을 입었고, 탱고를 추듯이 걸었지요. 그들에게서 탱고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록이나 펑크의 냄새가 더 많이 풍기지요. 요즘 탱고는 옛날 탱고의 향수에 젖은 지리한 흉내에 지나지 않습니다."

 

Piazzolla의 인생은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풍의 슬픈 탱고.

 

"내 기분이 슬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놀기 좋아하고, 좋은 포도주와 맛있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살아있다는 것을 사랑합니다. 내 음악이 슬픈 이유는 탱고라는 음악 자체가 슬프기 때문입니다. 탱고는 슬프고 드라마틱하며 때로는 감각적이고, 종교적인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반도네온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종교 의식에서 반주를 하기 위해 쓰인 악기지요. 탱고가 슬프고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비관적이었던 것을 바로 가사였죠."

 

아주 어렸을 때 그는 뉴욕에서 살았는데 그 때부터 반도네온을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13세의 나이로 카를로스 가르델을 반주했다. 17세가 되자 가족들과 함께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회계사 자격증을 따려고 시도해 봤지만 실패했고, 결국에는 음악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는 음악에 푹 빠져 있었고, 음악을 인생의 모든 것이라 믿었다.

 

"음악은 여자 이상이지요. 여자와는 결혼을 한 다음 이혼 할 수 있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한 번 결합을 하고 나면 평생동안, 영원히 사랑하고, 땅에 묻힐 때에도 같이 묻힙니다."

 

젊은 시절 그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여러 캬바레에서 반도네온을 켜며 작곡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그는 대담하게도 자신이 작곡한 곡을 하나 들고 마침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집을 방문했다 한다.

 

"루빈스타인은 나에게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긴 했는데 오케스트라 부분이 빠졌군.'이라고 했죠. 나는 루빈스타인에게 직접 연주해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그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그 연주를 들으니 내가 정말 엉뚱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그는 피아노를 치면서 나를 보더니 갑자기 물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니?'라고. '굉장히 좋아합니다. 마에스트로'라고 대답하자, '그렇다면 왜 공부를 하지 않니?' 하더군요."

 

루빈스타인이 직접 자신의 친구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에게 전화를 해 음악을 배우고 싶어하는 훌륭한 젊은이가 있다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8시에 Piazzolla는 자신의 첫 작곡선생을 만났다.

 

"애인의 집에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히나스테라는 오케스트라의 신비함을 가르쳐 주었고, 그의 악보들을 보여주었고, 스트라빈시키의 곡들을 분석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그의 집에서 '봄의 제전'의 세계에 들어섰고, 그 곡을 다 외워버렸지요."

 

 

6년 동안 레슨은 계속되었다. Piazzolla는 미친 사람처럼 작곡하기 시작했다.

 

"탱고는 제쳐두고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실내악곡, 소나타같은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일초마다 백만의 음표들을 토해냈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 식으로 10년 동안 계속해서 작곡했습니다. 53년에 히나스테라가 아르헨티나 작곡 경연대회가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처음에 대단한 사람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나가지 않겠다 했어요. 그러나 결구 신포니에타라는 곡을 보냈습니다. 초연이 되자 비평가들은 올해 최고의 곡으로 선정하고 상을 주는 북새를 떨더군요. 자동적으로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 가서 나디아 블랑제 밑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에 가자 한 프랑스 여인의 그의 정체를 바꾸어 놓고 그가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 진정 무엇인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 작곡해 놓은 엄청난 수의 소나타와 교향곡들을 겨드랑이 밑에 끼고 나디아에게 갔지요. 그녀는 나의 괴물같은 악보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 둘은 내 작품을 분석했습니다. 심판의 시간이 왔지요. '그런데 이 부분은 스트라빈스키같고, 이부분은 바르토크, 또 여기는 라벨같은데... 는 없어. 알겠니?'라고 간단히 평하더군요. 다음에는 사생활에 대해 물었습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연주했고, 또 무엇은 연주하지 않았고, 어디 살다 왔고, 결혼은 했는지, 동거를 하고 있는디... 마치 FBI같았다니까요. 나는 탱고 음악을 했었다고 말하는 게 너무 창피스러웠습니다. 결국 '저는 카바레에서 일을 했었어요.'라고 암시했죠. 그래도 나디아의 심문은 계속 됐어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고 했지. 그럼 뭘 연주했어?' 나는 반도네온을 연주한다고는 죽어도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에 얘기를 하면 반도네온과 나를 창밖으로 던져버릴 것만 같았거든요. 그녀가 하도 집요해 결국 모든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그러데 나디아는 뜻밖에도 탱고를 연주해 보라더군요. 내가 몇 소절을 연주하자, 그녀는 두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내 손을 잡고 이렇게 손을 질렀죠. '아휴, 이 멍청이! 진작 얘기하지! 바로 이게 Piazzolla야!' 10년 동안 작곡한 악보들이 단 몇 초 동안에 버려진 거죠."

 

나디아 블랑제는 그를 18개월 동안 공부시켰다.

 

"그 18개월은 마치 18년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4성 대위법만 지겹게 했죠. '이걸 배운 다음에는 4중주를 작곡할 거야. 지금은 제대로 배워야해.' 라더군요. 다음에 그녀는 나를 진정한 Piazzolla로 만들었습니다. 내 탱고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죠. 나는 쓰레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캬바레에서 연주하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거기에 나의 스타일이 있었던 거죠. 창피스럽게 여겼던 탱고에 대해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와 레코딩한 음반들을 그녀에게 보냈죠. 나디아는 '네 곡들을 이미 라디오를 통해 많이 들었다. 네가 나의 제자인게 자랑스Piazzolla럽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주었죠."

 

아직도 탱고가 창피하냐는 질문에 이런 대답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탱고를 소음을 많이 내는 이상한 짓이라 보는데 그건 아니에요. 좀 깊이 봐야합니다. 어떤 작품은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지요. 내가 만약에 바흐 스타일의 푸가를 작곡한다고 해도 항상 탱고같을 것입니다."

 

탱고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는 있지만 예술로서 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오해라며, 그는 강변한다.

 

"판을 내지 않는 이상 상업적이지 않습니다. 가벼운 음악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모욕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나의 음악은 실내악적이고 대중적입니다. 분명 탱고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말이야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고요. 만약에 내가 현대 음악 작곡가라면 지금 내가 탱고를 위해 하는 일을 못했으리라고 봅니다. 나는 폴리리듬, 다조 등을 시도하지요. 하모니와 대위리듬... 참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탱고에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데서 오지요. 대통령은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대주교나 추기경, 축구선수...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탱고는 다릅니다. 탱고느 ㄴ있던 그대로 놔둬야하지요. 슬프고, 지루하게 반복되고, 거의 비슷비슷하고..."

 

탱고를 유럽화 시킨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도 머리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요. 나의 음악이 진정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음악이기 때문에 더욱 세계적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음악에서 다른 문화를 발견하는 것이죠. 나는 탱고에 있어서 몇 발자국 나아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아직 50년대를 살고 있다는 차이입니다. 빌라 로보스가 유럽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브라질 음악을 너무 유럽화 시켰다는 비판과 비슷할 수 도 있지요. 그것은 바보같은 생각입니다. 빌라 로보스는 100% 브라질 사람입니다. 그의 실내악은 훌륭합니다. 완전 브라질적이지요. 나에 대해서라면 Piazzolla가 윗성부에서 하는 것은 음악이다. 하지만 밑에 깔린 것은 자연 그대로의 탱고이다.'라는 뉴욕의 어느 비평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군요."

 

 

 

-<객석>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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