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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이완희님 때문에 발끈하여 간만에 글 쓴다.

송왕호 |2008.07.13 15:01
조회 717 |추천 11

 

 경제학은 재화의 생산 소비 및 분배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으로, 수요와 공급, 시장의 운용 등에 주목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은 인간에 대한 특정한 가정에 기초한다. 그것은 곧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는 믿음이다. 합리적 존재이기에 합리적으로 손익계산을 할 수 있고, 그 계산에 따라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선택도 합리성에 기초한다. 이러한 존재가 바로 경제학적 인간이다. 이같은 경제학적 인간에 대한 믿음이 세워지지 않을 때, 재화의 생산과 소비, 그리고 분배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렵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문제도 예측하기 어려우며 따라서 시장 메커니즘은 붕괴될 수 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경제학은 인간을 합리적 선택자로 보기 때문에.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 측면에 대해서는 고의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일까? 제 3장에서 다시 다루게 되겠지만, 인간의 행위(action)란 객관적으로 쉽게 관찰되며 자극(원인)에 따라 반응(결과)이 나오는 단순히 '합리적'인 행동(behavior)만이 아니다. 행위는 행동에다 (알파)를 더 보태야 한다. 이 (알파) 속에는 의지, 신념, 가치, 동기 등 비합리적인 요인들이 듬뿍 들어가 있다.

 쉬운 보기 하나를 들어 보자. 김군의 집에서 100m 떨어진 곳에 'ㄱ'의 가게가 있고, 또 200m 떨어진 곳에 'ㄴ'의 가게가 있다고 하자.

  김군은 이 두 가게가 규모 면에서나 상품의 종류와 질 면에서나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예측한다면 김군은 당연히  'ㄱ' 가게에서 필요한 상품을 사게 될 것이다. 'ㄴ' 가게에 가는 것보다 시간도 절반밖에 들지 않고, 신발도 절반밖에 닮지 않으며, 에너지 소비도 훨씬 더 경제적(절약이 라는 낱말이 바로 영어의 경제적이란 뜻이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군이 사실은 거의 예외 없이 'ㄴ' 가게에서 물건을 산다고 가정해 보자.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다. 이런 김군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본 결과 특이한 사회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ㄴ' 가게 주인은 아름다운 딸을 두고 있다.  'ㄱ' 가게 주인의 자녀는 모두 어린이들인 데 반해  'ㄴ' 가게에는 20대의 아리따운 딸이 있다. 김군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반드시 'ㄴ'가게까지 가서 물건을 산다. 김군은 'ㄴ'가게집 딸과 그 어떤 관계를 밎고 싶어한다. 즉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그녀와 애인관계라는 사회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김군은 'ㄴ'가게집 딸에 반한 것이다. 그의 이같은 행위는 합리성에 기초한 선택을 어렵게 한다. 그러기에 김군의 이른바 경제적인 행위는 사회학적으로 해명할 때에 설득력이 있다.

 경제학적 현상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 중에는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적지 않다. 이른바 경제외적 변수들을 접어 두고서 경제현상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경제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외적 변수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바로 내가 그렇게 (완희)님 한테 주장하는 원유의 문제) 한 두 가지 보기를 들어 보자.

 1960년대 초,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던 군부는 권력의 정통성(정당성)을 높이기 위한 경제적 조치로 농촌 고리채를 정리해 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의 당국은 농민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높은 이자의 빛을 지고 있어, 그 빛을 정리해 주는 일을 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까닭은 경제외적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완희님 도 포함). 채무자 농민은 자기 부채를 탕감받기 위해서는 부채액수와 채권자의 이름을 밝혀야 했다. 채무자는 채권자를 신고해야 이 경제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빛정리로 농민들이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다면, 이 정책은 성공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책의 수혜자였던 농민은 조만간 여러 가지 이유로 또 빛을 얻어 써야 할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둘째아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도 이미 팔아 버렸다. 그래서 넉넉한 동네 이웃인 채권자에게 또 다시 돈을 빌려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번 농촌 고리채 정리 때 그 이웃을 이미 채권자로 신고했었다고 해 보자. 채권자는 자기를 신고했던 채무자를 '의리 없는 이웃'으로 섭섭하게 여겼을 것이고 다시는 돈을 못 빌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때 이미 이 두 이웃 간의 인간관계, 공동체적 관계가 훼손된 것이다. 아무리 못 살아도 농촌공동체는 끈끈한 인간관계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바로 이같은 사실을 당시의 당국은 중요한 변수로 고혀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뼈로 깎는 자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외환위기, 금융위기, 경제위기의 원인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경제외적 변수들이 얽혀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정경유착, 관치금융, 재벌의 상호지급보증과 문어발식 경영 등에서 우리는 합리적 요소들보다 비합리적 요소들을 더 많이 보게 된다. 경제외적 요인 중에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또는 전통적 가치가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제문제와 정치문제가 분리되기 어렵고, 경제현상에 미치는 사회, 문화적인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에, 경제정책의 효울성을 높이려면 경제외적 요인들이 그 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면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사회학적 변수의 영향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적 인간의 행위와 태도를 보다 폭 넓게 파악하려면 사회학적 시각이 필요하며, 그만큼 두 학문 간의 상호보완성은 높아진다.

 

이완희님... 님이 주장하시는 요소는 사회학적 시각이 배제 되었으며 정치적인 요소, 비합리적인 변수가 없이 경제학적 인간이라는 한정된 우물안에서 세상을 다 아는양 의시 대고 있다고 저는 판단됩니다.

 

經國濟世를 잃어 가고 있는 지금의 경제학은 비판 받아 마땅하며 이대로 경제학이 그 본래적 의미를 망각한채 학문으로서의 긍지심을 버린다면 초토화 시켜도 무방하다고 본다(왕호개인적인 생각)

 

이완희님 제가 읽었던 교수님이 쓰신 책 중(어디서 읽었나 찾느라 해맸습니다). 워드로 치어. 이완희님이 주장했던 예전 글의 잘못됨을 공격하고 제가 댓 글을 단 것들이 다탕하다고 뒷받침하려는 보충적인 글이오니 적절한 비판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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