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더 킹

이영주 |2008.07.13 16:36
조회 37 |추천 0

 

 

더 킹 (The King, 2005)

감독 : 제임스 마쉬

 

 

 

신(神)이란 인간의 위선이 만들어낸 종이 왕관일 뿐

 

 

0.

3회까지 부평을 고수해왔던 인천여성영화제가 올해는 주안으로 공간을 옮겨 진행됐다. 인천의 대표적 다운타운으로 자리잡은 부평과 달리 한때 공단과 대학의 젊은이들이 쏟아지는 젊음의 거리였던 명성을 뒤로한 채 이제는 인천의 대표적인 '지는 상권'인 주안으로 영화제 장소를 옮기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인천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인 영화공간주안과 주안미디어영상센터의 호의적인 태도와, 무엇보다 지난 영화제의 열악했던 상영조건을 떠올렸을 때 재론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도 걱정은 됐다. 영화공간주안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과연 영화제에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까?

영화제를 모두 끝내놓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올 사람들은 어디서 해도 온다는 것과 안 올 사람은 설사 집 앞에서 영화제가 열린다 해도 안 올 것이라는 것이다. 관객 수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비슷하거나 약간 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영조건은 부평의 한 극장을 대관해서 프로젝터 돌려가며 할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아졌으니, 앞으로도 인천여성영화제는 영화공간주안에서 계속 열리게 되지 않을까?

어찌됐든 영화제 준비기간까지 합쳐 열흘 정도 영화공간주안으로 출근을 하면서 나 역시도 이 공간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셈이었다. 나름 꽤 열성적인 영화팬으로 통하는 나였지만, 인천에 와서 부평이라는 공간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게 영화공간주안은 서울의 시네큐브나 필름포럼, 하이퍼텍나다보다도 먼 공간이었다. 물리적 거리로 보면(우리집과 영화공간주안은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다) 1/10도 안 되는 가까운 공간이었는데도. 쩝.

영화제는 3관, 4관만 사용했기 때문에 1관, 2관은 영화공간주안의 상영작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제를 진행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1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에 자꾸 눈길이 갔다. 과 이후 세계에서 최고로 섹시한 남자배우로 머리 속에 각인된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이 짧은 군바리 머리를 하고는 매력적인 눈빛을 빛내고 있었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게다가 악천후 속에서도 멀리서 영화제를 찾아온 한 친구분이 그러는 거다. "주안 사람들은 복도 많다. 이렇게 좋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주변에 있다니. ,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영화제 보느라 못 보고 가서 너무 아쉽다"

친구분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내가 꼭 이 영화 을 봐줘야 했다. 물론, 에서 스치듯 지나쳐 보고 한참 동안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했던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 (가엘을 직접 만나지 않는 한 사그러들지 않을 나의 사심이여~ ㅋㅋ)

수요일, 영화제 덕에 친해져버린(!) 영화공간주안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다. "더 킹 언제까지 하나요? 가엘을 꼭 보고 싶은데" 바로 답문이 왔다. "오늘까지 해요. 오늘 아니면 가엘 못 만나요"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시간 맞춰 극장으로 튀었다.

 

1.

와우~!! 극장 안엔 채 열 사람도 앉아 있지 않았지만, 그래서 빵빵한 에어컨의 냉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지만,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깟 에어컨 냉기따위는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로 화끈했다.

한마디로 은 내게 쌔끈하기 그지없는 영화였다. 마이 페이보릿 섹시가이(ㅋㅋ)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물론이고 과 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폴 다노, 모순덩어리 인간의 이중성을 낱낱이 파헤쳐 보여준 윌리엄 하트까지, 모든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웠다. (아, 그러고 보니 폴 다노는 주연이 아니다. 다만 내가 편애하는 배우일 뿐. ㅋ) 그렇다 할 스릴러적 요소나 강한 액션씬 하나 없이, 현란한 카메라 기교도 없이, 촘촘히 짜여진 이야기 전개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연출은 과연 엄지손가락을 번쩍 쳐들만 했다. 더구나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연기와 탄탄한 연출이 겨냥한 곳이 바로 누구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성역인 신(神)이다. 관객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브라~보~~!!

 

※ 경고 : 이제부터 스포일러 있음

 

2.

외모는 반듯하지만 제대하자마자 사창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썩 범생스럽지 않은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엘비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범생스럽지 않은 엘비스가 제대 후 사창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다름아닌 범생스러움의 집합소인 교회다.

그 교회의 목사 데이빗(윌리엄 하트)의 과장스러운 사랑과 기쁨의 몸짓, 그의 아들 폴(폴 다노)의 광신도 삘 넘쳐나는 찬양, 그리고 예배가 끝난 후 다정하게 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데이빗의 단란한 가족들(데이빗, 아내 트윌라, 아들 폴, 딸 말레리, 이 얼마나 단란한 해피홈의 조합인가!)을 수상스러우리만치 집요하게 따라붙으며 지켜보던 엘비스는 뚜벅뚜벅 그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데이빗은 철저히 엘비스를 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엘비스는 데이빗의 사랑과 기쁨, 감사가 충만한 해피홈 이전 시절, 데이빗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신을 만나기 이전 시절, 악마의 꾐에 빠져 방탕하게 지내던 젊은 시절의 죄악이 낳은 사생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비스는 자신의 친부 데이빗에게 내침을 당한 채로 주저앉지 않는다. 대신 데이빗과 그들의 가족을 둘러싼 신의 축복과 사랑의 오로라에 심각한 균열을 내는 악마의 자리에 자신을 앉힌다.

나는 엘비스가 친부의 냉정함에 대한 복수를 위해 철저히 계산하고 데이빗의 딸을 꼬셔 연애를 걸고, 데이빗의 전부였던 아들 폴을 살해하고, 결국은 데이빗의 아내와 딸까지 살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엘비스의 숱한 악마적 행위는 대부분 우발적으로 보였다.

내게 더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엘비스의 우발적 악행을 대하는 엘비스와 데이빗의 태도였다.

인간은 참으로 만물의 영장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합리화한다. 합리화의 귀재 엘비스는 폴을 살해한 뒤 폴의 여동생이자 자신의 의붓동생이자 애인인 말레리에게 자신이 왜 폴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한다. 아들의 실종 앞에서 데이빗은 지금까지 내쳐온 또 다른 아들 엘비스를 폴의 빈 자리로 불러들인다. 이것은 인간 엘비스, 인간 데이빗 개인의 악행 또는 아이러니가 아니라 신의 섭리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이것이 어찌 엘비스와 데이빗만의 일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라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신이란 존재를 만들어(그에 반하는 악마란 존재 또한 자연스레 만들어) 자신의 행위를 끝없이 합리화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 아닐까? 그도 안 되면 데이빗의 아내 트윌라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신은 우릴 버렸다"고 원망하면 그만인 것이다.

 

3.

선과 악의 기준을 만든 것도 인간이면서 그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 혹은 심판해야 할 순간이 오면 인간 위의 존재 신을 끌어들여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역시 인간이다. 폴의 죽음이 발각되자 가차없이 말레리와 트윌라를 살해하고,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젠 내가 신께 용서받게 해달라"며 피 묻은 손을 내미는 엘비스. 방탕하게 지내다 실수(!)로 사생아를 낳은 악마의 소행을 신 앞에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용서를 얻은 데이비드는, 과연 어떤 제스쳐를 취할까? 아니,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모순덩어리다. 신은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쓸 수 있는 대일밴드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