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을 훔쳐가는 대상,
내가 되고자 하는 대상,
내가 바라보며 감동을 느끼는 대상,
나를 기쁘게 하며 나를 슬프게 하는 대상,
때론 멀리 떨어지고 싶지만 이내 나를 다시 부르는 존재.
내가 배울 모든것을 내가 느낄 모든것을 함께 느끼며 사는 또다른 나.
: 사람
사람마다 모두 다른 저마다의 언어에 대한 정의가 존재합니다.
실로 우리는 살아있는 저마다의 사전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지금 사랑이라는 한 단어를 들으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과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마음에 얼룩지는 감정의 향과 깊이가 다를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랑을 경험하고, 다른 관계속에서 그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저마다의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이번 챕터에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2번째 파트로서 전개해 나가고자 합니다.
사람에 대한 정의 또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직/간접적 경험의 총체로서 이루어지는 정의가 될 수 있겠죠.
많은 의믹가 내포되어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사람에 대한 많은 표현중 가장 많이 와닿는 한문장을 고르라면,
' 모든 자원으로 통하는 터널(문) : 사람 ' 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돌이켜 내인생을 보건데,
내가 배운 모든것, 내가 가진 모든것, 내가 느낀 모든것,
내가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닫는 그 순간까지의 나의 모든 총합은
또다른 누군가에게서 시작되어 나에게 머문 손길로 이루어진 것이 나라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하나의 손길이 모이고 모여 하나의 개인을 이룬다면,
사랑의 손길을 많이 받고 관심과 애정과 믿음과 신뢰를 많이 받은 개인의 총합은 딱
그런 사랑과 믿음과 신뢰가 되겠죠. 우리는 우리가 받는 그대로의 존재가 됩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받은 그대로의 존재를 뛰어넘는 사람이 되는 방법은
내가 받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주는 것을 늘 긍정과 사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받는 존재 그대로의 내가 되어갑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는
2차적으로 우리가 받은 그 무엇이건 우리가 되고자 하는 존재에 합당한 무엇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개인이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주는 그대로의 존재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자원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많은 생각속에는 내가 읽은 많은 책들속의 가치와, 내가 다니며
보고들은 많은 여행의 경험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눈속에서 느낀 내마음의 총합 들어있다고
할 수 있을것입니다. 실로 그 어느것 하나도 내 혼자힘으로 해낸것이 아니며 그 어느것 하나도
온전히 나의 생각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것이 나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모든것이 나를
만들고 유지하는 씨앗으로 나를 키워가는 햇볕처럼 따뜻이 날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이런 모든 자원으로 통하는 터널과 같은 사람을 만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저는 새로운 커뮤니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 커뮤니티는 자유롭고 도전적인 영혼들이 내뿜어내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지요.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우리가 되고자 하는 존재에 합당한 필요한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자원을 배우고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터널을 통과해서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 새로움을 보아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터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또다른 사람입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또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내가 공감하고 교류하는 것은 서로의 세계에 다리를 놓는 것과 같죠.
우리는 이 다리를 튼튼하고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사랑으로 연결할 수 도있고,
미움과 질투와 분노의 다리를 놓고 그 다리를 통해 계속해서 서로에게 나쁜감정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서로에게 놓인 다리를 통해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이 미움과 분노의
감정이라면 그 어떤 세계도 그 다리를 무너뜨리지 않을 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 모든 개인의 감정은 항상 자신에게 맞는 평화의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지점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서 불안해지고 슬퍼지면 우리는 자연히 그사람과의 관계 즉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존재가 되어가기 위해서 나는 많은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첫째로는 내가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며, 세상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자유롭게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다리의 중요한 요소인 언어와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필요했습니다. 전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 새로움을 배우길 원했고, 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 다리를 만들어주는 새로운 세계로 접하는 생활을 오래도록
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잘못고른 세계, 즉 내가 접해서는 안되는 세계에 나의 다리를 놓아 내 세계전체가
위험했던 때도 있었고, 상처받고, 불신감에 휩싸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데,
그렇게 내가 가서는 안되는 세계에 다리를 놓으며 맺었던 관계도 지금의 나에게 좋은 배움과
교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건강한 다리를 건강한 세계에 놓는 것만큼
내 생명 의 시간과 감정에너지를 절약하고, 최대한 빠른시간에 최대한의 내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 또 있을까요?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맺어가기 위해 많은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2가지에 대해서 집중해서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먼저 누군가를 필요로 하기 전에,
자신의 세계를 누가와도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돌아갈 수 있는 오아시스와 같이
화평한 세계로 만들어 놓으라는 것과,
내가 새로 접할 새로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다리를 놓고 들어가지 않고서도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2가지를 충실히 하지 않으면서 겪게 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화평한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세계에
다리를 놓고 나를 보러 와 주지 않을것입니다. 우리가 파티를 열어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고자 할때, 우리의 집안과 우리의 주변을 지저분히 하고 어지럽히지 않죠?
우리는 이처럼 우리가 사랑할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편안한 파티를 준비해 초청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내자신을 화평하고 편안하게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이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진정으로 내가 접할 세상인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아픔과 절망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때로는 그런 관계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관계속에서 성장하는 개개인도 보아왔지만, 새로운 관계속에서 무너져가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만약 한개인의 세계가 월등히 긍정적으로 강한 사람이 있다면,
부정의 세계에 접한다 해도, 강한 긍정의 세계가 부정의 세계를 교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지요. 저는 많은 시간을 사람들을 상담하고 그들의 문제에
도움이 될만한 부분들의 교점을 찾아내는 데 주력합니다.
한사람을 상담하고 나면 그 사람이 소개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오고 또다시 그런 과정을
되풀이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간접적으로 많은 상담을 해왔습니다.
만약 내가 심리학을 공부하며 학교 교실에 앉아 심리학 이론만을 들었다면,
나는 이론이외에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을것입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이 적든 많든 상관없이 늘 사람들 틈에서 내가 부족한것이 무엇이며
내가 돕고자 할때 한계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실은 나를 찾아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는 스승이었던
것입니다.
때로는 나는 나의 약한 긍정의 세계가 나보다 훨씬 강한 부정의 세계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지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날은 돌아오는 내내,
내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내 존재자체를 뿌리채 흔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 내가 가진 문제점들에 대해서 저는 정확히 위에 제시한 2가지 관점을
나에게 취하기로 결단내렸습니다. 그것은 우선 내 세계를 화평히 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내자신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쏟았습니다. 그 대부분의 시간은 여행으로 이뤄어졌습니다.
그리고2번째 내가 만나는 상대방의 세계를 예측하고, 최대한 넓은 식견으로 그 사람의 마음과
필요를 느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가 맺는 관계는 실로 다양합니다.
가족 , 친구, 스승, 거래처의 사람들, 사회에서 맺는 관계.
우리는 이런 집단들 틈에 속하는 개인에게 느끼는 연결감이 모두 다릅니다.
나에게도 많은 친구가 있지만 특정친구가 저에게 갖는 위치와 깊은 존재감은 그 어떤 친구
몇이 가져다줄 수 있는 안정감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중 2번째 파트로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글을쓸때면 이런 느낌을 갖습니다.
내게 하늘에서 1000미터의 평방 반경으로 씨앗이 떨어지는데, 정말 내가 받아 담을 수 있는것은
고작 1미터 밖에 되지 않을때 나머지 999미터가 내 곁을 지나가고 마는것처럼 내마음이
담아내고 내언어가 표현하는 것이 너무도 제한적이라는 느낌 말입니다.
언젠가 행운에 대한 많은 생각을 정리하며 내가 느낀 표현은 위와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온나라에 중요한 과일 나무 씨앗이 하늘에서 내릴때,
준비된 토양만이 그 씨앗을 열매로 새싹을 틔게 하는 것처럼 준비된 생각과 준비된 마음만이
주어지는 모든것을 흡수 할 수 있다는..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평안히 해 우리에게 다리를 놓길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사람들이 나를 만남으로써 더 나은 자신을 바라보고 강한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끔
만들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러는 도중에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사람들속에서 제대로된 사람들을 보고 관계맺는 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만약 관계속에서 아픔을 습관적으로 겪고 사람과의 만남에서 늘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의식의 건너편에 속하는 대상관계에 대한 아픔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자기성찰과 명상 그리고 지속적인 상담 그리고 아주 건강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오래전 한 심리학잡지에서 원숭이의 대상치료에 대한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로 부터 격리되어 자란 원숭이는 사랑을 배우지 못해
나중에 자식을 나았을때 자식을 사랑하고 따뜻히 감싸안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는것
이었습니다. 그 원숭이 곁에 보통 원숭이 (일반적으로 양육된 원숭이)를 데려다 놓으니,
처음에 사랑을 배우지 못한 원숭이가 계속해서 신경질을 내고 할때마다,
견디지 못한 보통원숭이는 그 무리를 떠나고자 계속해서 쇠창에 매달려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 넘치는 스킨쉽과 따뜻한양육의 과정을 가진 심리적으로 월등히
안정되고 건강한 원숭이를 상처받은 원숭이곁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처받은 원숭이가 너무너무 힘들어 하더니,
그런 힘듦의 과정에서 사랑의 원숭이가 늘 곁에 있어주구 자신의 받은 사랑 그대로를
그 상처받은 원숭이에게 내어놓는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격리되었던 원숭이의 상처가 아물고,
보통원숭이들과의 관계에서 겪어던 기피증세를 해결했다는 논문이었습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제 눈에는 눈물이 났습니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조차도,
그 누군가를 통해서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도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으며,
수없이 많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확실한 믿음이었으니까요.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면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99프로 이상의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부모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부모님으로 부터 따뜻한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부모의 과거에 대해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실은...
그 속의 대부분의 부모가 우리에게 원치않게 준 상처는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이며
그 상처가 부모님속에 자신도 모르게 남아있다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무의식적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상처받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본인이라면
우리는 이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현호: 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MY MENTOR : 현호군, 이제는 현호군이 현호군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어보는건 어떨까?
이제는 늙어가는 부모는 아이와 같아지고 지금만이 우리의 부모가 어릴때 받았던
상처를 여기에서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면..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그런 부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 부모의 아들이자 2번째 부모의 역할을
하는것이라면?
관계로 시작했던 자원으로 시작했던 사람의 칼럼은 다시 그 관계의 처음인 가족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안정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믿음이라면.. 우리가 다리를 놓아야 할 가장 중요한 세계는 우리 가족에게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