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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건의 공공미술 산책 - (2)새로운 서울의 아이콘 ‘해치’이야기(上)

서울마니아 |2008.07.18 11:02
조회 101 |추천 0
윤태건의 공공미술 산책

(2)새로운 서울의 아이콘 ‘해치’이야기(上)

 

 

 

 

공공미술 이전의 공공미술 ‘해치’상

숭례문이 화마에 잿더미가 됐다. 어제일 같다. 시뻘건 불길에 휩싸여 2층 누각이 ‘폭삭’ 주저앉는 황망한 장면이 뇌리에 생생하다.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을지도 모른다.

 

숭례문은 한양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알다시피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한 이태조와 정도전은 숭유억불정책을 폈다. 그리고 유교의 다섯 가지 으뜸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방위에 적용하여 사대문을 만들었다. 동쪽은 흥인문(仁), 서쪽은 돈의문(義), 남쪽은 숭례문(禮), 북쪽은 홍지문(智)이 그것이다. 홍지문은 숙청문이라고도 한다. 다섯 가지 덕인데 사대문이니 하나가 빠졌다. 남은 것은? 신(信)이다. 그래서 사대문의 중심에 보신각(信)을 만들었다. 믿음의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는 뜻이다. 숭례문은 한양의 정문 역할을 해서 사대문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숭례문 화재를 두고 흉흉한 민심 탓인지 당시에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한참이었다. 광화문 복원사업을 하면서 해태상을 이전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해태상 이전과 숭례문 화재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상관이 있는 걸까?

 

경복궁 등 조선의 궁궐들은 유독 화재에 속수무책이었다. 목재로 지어진 탓에 방재 장비가 부족한 탓에 당시만 해도 화재는 국가적 재앙이었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의 조산은 관악산이다. 관악산은 돌이 많다. 대부분의 돌산은 풍수지리상 불기운이 강한 화산(火山)이다. 결국 궁궐의 앞머리에 강한 불기운을 머금고 있는 화산이 있다 보니 화재가 빈번했다는 소리다.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자 관악산 정상에 우물을 파고 구리로 만든 용을 넣었다고 한다. 서양의 용은 불은 내뿜는 악한 동물이라면 동양의 용은 비바람을 부르는 상서로운 영물이다. 그래서 용은 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비를 부르는 용으로 화마(火魔)를 막아보려는 간절한 바람이 궁궐과 숭례문 지붕 윗부분 가로로 길쭉한 용마루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 앞 양쪽에는 해태상을 놓았다. 해태상은 풍수지리상으로는 불을 삼키기도, 뱉기도 하는 상상 속의 동물로 화기를 다스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화산인 관악산을 누르고 도성과 궁궐을 위협하는 화마를 제압하기 위해 해치를 세웠다는 것. 화마가 불을 지르기 위해 달려들면 해치의 목에 달려 있는 방울이 저절로 울려서 알려 주기도 했단다.

 

그 해태상이 광화문 복원사업 과정에서 없어졌다. 그리고는 숭례문이, 연이어 세종로의 정부종합청사에 불이 났다. 해태상이 없어졌다고 불이 났을 리 만무하다. 용마루 또한 있다고 해서 불이 안 났을 리도 없다. 해태상은 단지 지금처럼 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 화재를 예방하고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해태상은 당시만 해도 그냥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사회적 기능, 주술적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필수적인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해태 조형물은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 공공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공미술 자체가 건축과 조각이 분리되고, 환경과 미술이 분리되고, 삶과 예술이 분리되면서 등장한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마을 어귀의 장승, 솟대는 공동체의 상징물이자 마을의 수호신, 지역간의 경계와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성황당의 돌탑은 개인과 집단의 안녕을 기원하고 소원 성취를 바라는 주술적인 역할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장승, 솟대는 기념조각, 상징조형물이고, 돌탑은 참여미술이고, 공동체미술이다. 근대 이전의 모든 조형물들은 의식적으로 공공미술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원래부터 조형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공공적이었다. 서구에서도 적어도 18세기 이전에 미술이 하나의 ‘작품’으로서 건축이나 공간, 장소로부터 분리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공공미술이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잘 먹고, 죽거나 다치지 않고, 번창한 자손을 기원했던 말 그대로 공공의 가치를 추구했던 공공미술인 것이다.

 

해태의 순우리말은 해치다. 이 해치가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선정됐다. 해치는 화재를 막는 역할 외에 그 부릅뜬 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의 잘잘못을 가리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상상 속 동물로 사헌부, 사간원의 역할에 딱 맞는 상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관복에 해치를 새긴 것도 그 때문이다. 문관은 학을, 무관은 호랑이를 수놓은데 비하여 사헌부의 관원들의 흉배에는 해치를 수놓았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나 대법원, 검찰청 등에 가면 해치 조형물을 만나게 되는 연유다.

 

서울시가 앞으로 해치를 싱가포르의 머라이언(머리는 사자, 몸통은 물고기인 상상의 동물)이나 베를린의 곰처럼 서울 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국가나 도시를 상징하는 상징물에는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빅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뉴욕의 빅 애플,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의 예수상 같은 조형물이나 건축물들이 있다.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된 다른 도시의 상징물처럼 해치가 서울시의 대표 아이콘이자 상징조형물로 자리 잡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광화문 광장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입구에 해치상을 배치하는 등 곳곳에 해치상을 설치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치상은 상상의 동물을 형상화한 조형적인 요소에 불을 막고, 부정비리를 막는 기능적인 역할이 일체화되어 있는 공공미술이었다. 이처럼 해치상은 지금의 공공미술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공공미술이 가져야 할 시대정신, 공공적 가치에 대한 것이 과연 무엇일지, 강력한 상징물로서의 현대의 공공미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치상이 서울시 대표 아이콘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되묻게 된다.

 

글 윤태건(미술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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