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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불가사의 - 1. 쿠푸왕의 피라미드

이희재 |2008.07.26 22:15
조회 249 |추천 0

 

 

 

 

 

 

BC 2550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7대 불가사의 가운데 가장 크며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피라미드란 일반적으로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으로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基)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km인 나일강 서안 사막 연변에 점재해 있다. 그러나 와력(瓦礫)의 산으로 변한 것과 흔적만 남아 있는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기록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BC 5세기)의 <역사> 권 2에 있다. 그는 기자의 대(大)피라미드에 관하여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쿠푸는 카이로 남서쪽 15km에 위치한 기자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 하였다.

이것은 대 피라미드 또는 제1 피라미드라 일컬여지며, 높이 146.5 m(현재 137m), 저변 230m, 사면각도는 51 ˚52 '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 ˚30 '에 지나지 않은 만큼 극히 정교한 것으로, 피리트에 의하면 평균 2.5 t의 돌을 230만개나 쌓아 올렸다. 진정 세계 최대의 석조 건물로서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다. 내부구조는 복잡해서 독일의 보르하르트에 의하면 계획이 2번 변경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지면에서 약간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 그대로 하강하면 암반 밑에 설치된 방에 도달한다. 이곳이 제1차 계획의 매장실이고, 그 위에 있는 통칭 '왕비의 방' 이 제2차 계획의 매장실이다. 그리고 제3차 계획에 의해 피라미드는 완성 되었다. 제1피라미드 남서쪽에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가 있다. 높이 136m, 밑변 216m, 동쪽에 있는 장제신전에 450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엎드려 있다. 기자에는 그 밖에 멘카우레왕의 제3피라미드와 왕족들의 소(小) 피라미드 6기가 있다.

 

 

(건조법)

피라미드를 건조함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운반하는 점이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건설 사업은 돌을 케내어 뗏목으로 운반하고 공사를 하기 위한 도로를 만들고 피라미드의 지하공사를 하는데만 적어도 10만명의 노예가 석 달씩 교대로 해서 10년이 걸렸고 돌을 높게 쌓아 올리는 데도 2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피라미드 건설당시 이집트인은 수레나 말을 이용한 운반법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지레나 굴림대를 제외하면 오로지 인력에만 의자하여 작업이 이루어 졌다. 즉 수백명의 사람이 채석장에서 운반해온 무거운 석재를 뗏목에 올려 강을 건넜고 역시 강기슭에 도착한 석재를 건설현장 까지 운반하였다. 그래서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하였다. 일정한 높이마다 핵재(核材),내장재,전재,외장재의 순으로 쌓아올놓고, 피라미드가 높아짐에 따라 경사로도 높아졌다. 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일정해야 하므로 길이는 점차 길어진다. 정상까지 다 쌓고 나면 위에서 부터 외장을 완공 시켜가면서 서서히 경사로를 낮게 하여 완성기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외장은 정성들여 시공되고,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은 정도로 정밀하게 쌓아졌다. 완성에 걸린 연대에 대하여 헤로도투스는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20년이라 적었으나, 실제로는 더 짧은 기간으로 생각된다.

 

이상이 전통적인 학계의 의견이다.

그러나 위 학설에 대한 많은 부정과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위의 건조법으로 피라미드 건설을 설명할 때 다른 피라미드는 대개 설명이 가능하나 그레이트 피라미드(쿠푸왕의 피라미드)의 경우에는 도저히 불가하다. 그레이엄 햄콕은 그의 저서 '신의 지문' 에서 위의 전통적 학설과 이의를 가하며 많은 부분을 부정한다.

사실, '그레이트 피라미드가 쿠푸왕의 무덤이 맞는가?' 라는 의문부터 시작한다.

즉, 그레이트 피라미드에서는 그 누구의 미이라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어느 문헌에도 쿠푸왕의 무덤이 라는 이야기가 없다.

증축 및 보수에 관한 기록이 있으나 연대적으로 볼 때 다른 피라미드는 그레이트 피라미드의 모방작에 불과하다는 설 또한 있다. 그리고 흔히 알려진 미이라의 저주나 계단의 수가 세계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는 식의 많은 이야기들은 결코 간과할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의문들 속에서 피라미드는 영화의 가장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역사상 최고의 미스테리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는 사실은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그 크기, 설계의 치밀함, 주변환경과 조화디어 있고 천문학적 지식을 집대성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심오한 우주철학을 바탕으로 하여 건설되어졌고,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개나 쌓아올린 엄청난 무게를 4,800년의 기간동안 견디며 장엄함을 드러내며 우뚝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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