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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 이야기 - 교육감 선거를 돌아보며

장명현 |2008.07.31 01:18
조회 9,810 |추천 154

  대학수학능력시험에는 '언어 영역'이라는 이름의 국어 과목이 100점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한국어 사용 능력을 고취시키고, 비문학과 문학을 두루 아우르는 독해 능력을 키우는데에 목적이 있다고 내 맘대로 판단해도 아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문맹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 수준의 글을 한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언어 교육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55문제(?)의 언어 영역에는 문학 작품을 지문으로 하는 문제가 무조건 출제된다. 덕분에 한국의 고등학생들은 고대로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수많은, 게다가 매년 늘어나는 작품들을 대충이나마 훑어볼 것을 강요받는다.

 

  모래톱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설의 화자는 교사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아마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시골 마을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어떠한 거대 권력과 외롭게 싸우고 있다. 화자는 직접적으로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다만 전해듣거나 본 내용을 담담하게 서술할 뿐. 즉,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겠다.

 

  난 분노했었다. 소설은 픽션이지만 그 내러티브는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 난곡을 비롯한 달동네에서, 평택의 미군기지 예정지에서, 간척사업이 벌어지는 갯벌 마을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소설은 '힘'을 가지고 있다. 잘 쓰여진 소설은 훌륭한 사상가의 논설보다도 더 크게 사람들을 움직인다. 나는 그러한 힘을 느꼈던 것이다.

 

  고등학교 때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 소설들을 섭렵해야 했지만 그 작품들은 무엇하나 나에게 감동을 주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난이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감자'를 통해 느꼈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개인주의자의 아픔을 '광장'을 통해 느꼈고, 사랑과 외로움이란 어떤 것인가를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통해 느꼈다.

 

  그러나 나도 그랬듯이, 한국의 학생들은 노련한 교사(혹은 강사)들이 제작한 '리스트'를 통해 문학 교육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작품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작품의 시점과 주제, 배경, 서술 시기, 역사적 상관 관계, 주인공의 성격 등등을 외우다 보면 같밭새 영감의 독기서린 외침과 살인 행위는 신문 끄트머리에 있는 쪽광고보다 가치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교육의 수월성이란 무엇인가? 과연 잘 하는 학생과 못 하는 학생의 기준은 무엇인가? '학력'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행복한 가정'과 '번듯한 직장'과 '안락한 노후'만을 추구하는 정신적 기계들만이 뽑혀나오지는 않는가?

 

  사람들은 점점 어려지고 있다. 나만 해도 이미 스물 다섯, 한국 남성 평균 연령의 1/3 가량을 살았지만 아직도 대학생이란 지위에 머물러 있다.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가 늘어날 수록 소요되는 교육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만큼 배우고 있는가?

 

  사람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돈만이 목적이 아닌 '보람된' 일을 하고 있으며, 적당한 '여가'와 '취미'를 즐기고 있고,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살아있는 것을 찬양한다. 하지만 이러한 중산층적 수사들 뒤에 숨어있는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적으로는 평생 아동기를 벗어나지 못한채, 다른 누군가가 젖병 속에 고이 담아준 이유식만을 옹알이하며 빨고 있지는 않은가?

 

  갈밭새 영감은 무식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알았다. 자신이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남아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알고 있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부딪치는 행동가였다. 모래톱 이야기가 교과서와 수능 출제 리스트에 남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점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다시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반체제적으로 읽힐 수 있는 이 소설이 극도로 병영화, 보수화 된 한국 사회의 교과서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신기한 일이지만, 밑에 첨부한 그림(사진?)을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똑똑한 강남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추천수154
반대수0
베플민경현|2008.07.31 12:38
전 가장 이해가 안가는게...교육의 수장을 뽑는 것인데 왜 피교육자의 참가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초등학생은 몰라도 중고생까지는 교육감선거에 있어서 포지티브 원칙을 적용, 예외적으로 선거권을 부여했으면 좋겠는데요. 왜 어른들의 논리에 맞춘 교육정책에 학생들이 묵묵히 복종해야하는지 저는 도대체 이해가 안갑니다. 대통령 선거와는 다르게 교육감 선거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거인데요.
베플권순호|2008.07.31 13:32
똑똑한 강남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국민이길 포기한 85%의 사람들이 문제죠.
베플최선구|2008.07.31 14:58
왜 아이들이 교육감선거를 하면 안되는지 설명해보면 학생들이 원하는 중고등학교 생활이랑 사회가 원하는 학생의 모습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예를 하나로 들어보면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과목의 선택권을 주면 상경대에서 기초가 되는 회계, 통계학, 경영수학 이런과목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쉽고 점수안주는 교수과목은 안들으려고 하지 않게 된다. 결국엔 인기있는 교수로 순위를 매긴다면 실력있는 교수보단 학생들에게 점수 잘주는 교수, 쉽고 편한교수가 더 상위에 랭크 될것이다.이것이 사회적으로 옳을까? 문제의 본질은 경쟁을 하는 당사자인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체제를 선택할수 있는 자율권, 선거권을 주는것이 사회적으로 타장하냐는 것인데 결론은 부정적입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본성은 경쟁이 없는 쪽..즉 편한쪽으로 가려는 하기에 때문이고 즉 평가당하는 학생과 평가하는 어른들간의 대리인문제가 발생하게 되고 사회전체적으로 교육에 필수적인 경쟁이 붕괴되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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