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에 건립된 최대의 건축물로 일컬어지는 콜로세움!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건물을 보기 위해서 찾아들고 지금도 이 건물을
보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네로 황제가 자신의 저택인 황금의 집에 전시해 두던
거대한 조각상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9;Colosso-9;라는 거대한 네로의 금박 입힌 동상은
높이가 30m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9;Colosseum;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황금의 집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즉 네로가 만든 인공 연못 부지위에
플라비우스의 원형극장이 들어섰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A.D. 72년) 착공되어 약 8년만인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완공을 기념하는 축제가
100일 동안이나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약 2,0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유산으로 아직도
그 웅장한 모습을 잃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콜로세움의 이야기 속으로 떠나보자.
포로 로마노를 벗어나자 콜로세움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듯이 상상하고 늘 꿈꾸워 왔던 곳 그리고 매체를 통하여 숱하게 봐왔던 것을
실제적으로 눈으로 목격하게 되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아마 글래디에이터를 보신 분들이 많으시리라.
당시 로마시민들을 가장 열광 시켰던 것은 -9;유혈오락-9;인 검투사 경기였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크레타 섬에서 처음 이 경기를 관람하고는 로마에 도입한 것이 시초였는데
로마 시민들도 그 경기를 보자 마자 열광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검투사는 노예나 사형수, 포로들을 모아 교외의 전문 양성소에서 훈련을 시켰는데
뛰어난 검투사에게는 명예와 보수, 그리고 자유가 부여되면서부터는
로마 시민들 중에서도 자원하는 자들이 생겼을 정도라고 한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실제적으로는 자유를 걸고 싸웠던 것이다.
포로들 중에서 시장에서 팔리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9년에 예루살렘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약 10만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하고 멸망을 말씀하셨는데
그후 이 티투스가 예루살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그 포로중 4만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앞에서만 보는 것 보다는 한 바퀴를 돌면 보다 다양한 외형과 부조들을 볼 수 있다.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하고 중세기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의 콜로세움 외형이 흉한 부분과 내부의 돌들이 없어진 것은
교회나 빌딩의 건축물의 자제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적으로 바르베리니 궁전도 여기에서 돌을 뜯어다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를 빗대에서 유명한 말이 전해진다.
야만인들이 하지 않았던 것을 바르베리니 가문이 하였다
(Quod non fecerunt Barbari fecere Barberini)
이 이야기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526년 토틸라 야만족들이 쳐들어와서 콜로세움을 훼손시켰다고 한다.
그들의 조상들의 원수를 갚고 또 돌과 돌을 이어주던 구리를 약탈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도 그렇게 훼손을 하지는 않았는데 후세의 로마 귀족 명문세도가들에 의해
훼손된 것이 더 치명적이라는 데서 저러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들이 시민들에게 검투사의 싸움이나 맹수들의 싸움을 보여주었던 이유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한편으로는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은 4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높이 10.5m의 도리아식 반원주,
2층은 높이 11.85m의 이오니아식 기둥, 3층은 11.6m의 코린트식 기둥으로 되어 있고,
4층은 관중들이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고정시키기 위한
장대장치를 지탱하는 벽으로 되어 있다.
이곳의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도미치아누스의 건축가 라비리오라고도 하고, 가운덴치오라는 사람이라고 추측한다.
높이가 48m, 둘레가 500, 경기장 내부의 길이가 87m와 폭이 55m이다.
당시에는 약 5만명의 사람이 80여개가 넘는 아치문을 통하여서
단 10분이면 모두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입구는 하나로 로마시에서는 엄청난 재원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우리의 몇시간은
대수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워주고도 남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가이드 양반의 말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볼 것이 없다. 글래디에이터 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이 안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글래디에이터를 보라는 말이었는가?
많은 시간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밀린 줄 때문에 들어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가이드도
나중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과 라인 그리고 센스를 발휘해서
우리들을 조금 빨리 들여보내 주는 기지를 발휘했다. 몇 분전의 원망은 눈녹듯이...
이 놈의 성깔머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부를 보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역사가 무엇인지 순교가 무엇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이곳에서 경기를 개최할 때마다 검투사 수백 명이 콜로세움에 모여서
아레나(그라운드)의 지하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고 한다.
-9;맹수와 맹수-9; -9;사람과 맹수-9; -9;사람과 사람-9;의 순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타원형 아레나는 물로 채울수도 있었고 사막이나 정글 풍으로 꾸미기도 했다.
본 경기에 앞서 둥물들의 대행진이 있었는데 모든 영토에서 잡아 온 동물들 1만 마리가
역사적인 인물로 분장하여 행진 후 투기를 벌였다고 한다. 동물들의 수가 줄어 들면
투우 경기가 펼쳐지고 맨 나중에 인간들의 검투 시합이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출전자 수가 부족하여 경범죄자들에게도 사형을 선고해서 참가하게 했다고 한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때는 1만 명의 검투사가 참가해서 8일 내내 시합을 했다고 하니
8일 동안 1만명의 사람들이 죽어 간 것이다.
이들 검투사들이 사용하던 창, 낫, 도끼, 화살 등은 본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중에 돈벌어서 이 부모들을 같이 데리고 오기를...
콘스탄니누스의 개선문인데 콜로세움 안에서 본 모습(위)과 바깥에서 본 모습(아래)이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는가! 파리의 개선문의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서대문 독립문은 파리에서 모델을 삼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적 막센티우스를 밀비아누스 다리 전투에서 물리친 것을
기념해서 315년에 세운 승리의 개선문. 높이는 21m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로 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지만
정작 이 개선문과 기독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콜로세움 안에서 바라본 포로 로마노!저곳에서 검투극과 다른 경기를 보기 위해서 당시의 귀족들과 권력가들이 이곳을 왔으리라.
이곳을 다녀온 다음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옮겨본다.
내 앞에 나타날 사자, 그리고 눈앞에서 순교라는 이름으로 이제 이 세상을 하직 합니다.
죽어가는 아들, 부모, 형제... 그들은 말을 합니다.
사자 앞에서 무서워 떨고 있는 아들을 꼭 껴안고 엄마는 한 마디 합니다.
“아들아! 5분만 기다려라. 그러면 그토록 우리가 바라던 주님의 세상으로 가는 거란다.
5분만 기다려라!”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것이 인간입니다.
오죽했으면 흙으로 직접 만드신 인간을 홍수로 다 쓸어버리셨을까...
그 분들의 순교의 피로 오늘날 이 십자가가 세워지고 우리들이 편하게
정말 편하게 목숨을 담보로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허물어지고 암울한 곳에서도 역사는 증거한다.
유물이 있고, 유적이 있고 또 다른 인간들이 증언해 놓은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우리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역사를 바로 배우고 바로 만들고 바로 적고 있는지...
어차피 우리들도 후손들에게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때문에 역사에서 배우고 역사를 두려워 해야 한다고 수많은 이들이 피력을 하였다.
하지만 진정 시대를 만들어가는 자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때가 많으니...
저런 아치문을 통하여 관객들이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짐승에게 잡혀 먹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시합에 그렇게 열광을 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잔인함은 똑같나 보다.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이다.당시에는 모의 해전이 유명했다고 한다. 이곳에 물을 채워놓고신화나 역사상의 유명한 해전을 재연해서로마인의 위대함과 작전의 묘미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9;교육적 가치-9;에입각해서 연출된 살육전이었다고 한다.이 경기는 사형수 2만 명이 홍백으로 나뉘어 서로 죽이는 경기였다고 한다.도망가지 못하게 호수 위를 뗏목으로 둘러싸 놓았고, 해병으로 분장한 죄수들을장갑선 두 대에 나누어 태우고 서로 배를 젓고 조종하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한다.그들은 클라우디우스와 황후 아그리피나 앞에서 "황제 폐하여! 죽음을 앞두고 인사드립니다" 외치며 싸우다가 호수 밑으로 죽어갔다고 한다.
일본인 처럼 보였다.
배낭여행을 온 것 같았는데 햄버거와 음료수로 식사를 하면서
안내책자와 지도로 이렇듯 여행을 하는 그들을 볼 때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쩐지 고풍스러운 도시와 어울릴 것 같은 전동차!(맞나?)
시내 한 복판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무조건 부수고 없애는 것이
꼭 능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았다.
여행을 하면서 차창밖으로 자주 보이는 것이 저러한 주유소였다.손님들이 직접 주유를 해서 인지 몰라도 한적하고 조용해 보였다.
콜로세움 구경을 마치고 들어간 점심식사 장소!이곳에서 먹었던 음식은 나름 괜찮았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도 맛있었다.홀이 굉장히 크고 넓었는데 손님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