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고등학교 졸업 전/후의 태도가,
일반적으로 두발규제 반대 -> 찬성으로 변하시는 게 일반적인 경우인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 보니 추억이더라" 혹은 "그땐 몰랐지만 필요했었다" 유의 논변이 그러한
맥락에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이상한 케이스인 건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 오히려
고등학교 때는 부분적으로 찬성했으나 졸업하고 보니 폐지 쪽에
어느 정도나마 공감이 가고 있네요.
고등학교 때는 3학년생만 아니면 길이도 짧게 잘라야 하고, 3학년생이라 해도
(입시 스트레스를 감안하여...) 염색이나 컬, 지나친 길이 등은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3이라 자기입장에서 저런 게 아니고, 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저런 태도를
일반적으로 견지했던 것으로 기억나네요. 물론 두발단속 시즌 등 당장 저에게 닥친
상황에는 약간은 머리길이에 대한 집착이 생기긴 했습니다만, 그게 "짧은 머리"에서
벗어나는 수위로 발전한 것은 고2 말 ~ 고3때입니다.)
근데 지금 보면, 두발규제는 거의 쓸모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두발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뭐죠?
일반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 맥락에서 그런 논변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1. 공부가 방해되어
2. 보기 안 좋아서
(둘 외의 다른 맥락에서의 이유가 있다면 알고 싶습니다.)
위 中 2번은, "강제적 규제"의 근거로서 제시되기에는 이미 그 타당성 논의의
가치조차 상실한 것으로 보이므로 논하지 않겠습니다.
1번의 경우 그나마 논리적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여기서의 '공부'란 무엇일지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두발규제의 근거로서 제시되는 '공부'가, 진정한 의미의 '공부'라면,
그럴 경우에는 "딴 일에 신경쓰는 것을 자제하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될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보편적'이라는 말은, 밑에서 다룰 경쟁적 입시교육에 대한 이야기와 비교해서 이해합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강제적 규제'가 합리화된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일반적인 경우, 중고등학생에게 요구되는 '공부'란 입시를 위한
경쟁기계화에 지나지 않죠.
제가,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부정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경쟁체제에의 순응으로서의, 현재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공부"라는 것은
자기 자식, 혹은 자기 학교 학생을 위한 특수한 의미에서만 권장되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두가 그 일을 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은 일'이지요.
(cf. "내가 공부해도 너는 절대 하지 마")
결국, "공부를 위해 머리를 깎아라" 유의 논변은, 경쟁력 강화를 통한 자녀의 상대적 출세를
원하는 부모의 논변, 혹은 사적 인정에 의한 염려와 애정이나 진학률을 위한 해당 학교
교사 및 관계자의 논변으로만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 '강제적 규제'를 뒷받침할 근거는 전혀 되지 못하겠지요.
위의 의미에서의 '공부'와는 달리, 심지어 "사회 전체적으로 보기에, 보편적으로 권장될
만한 목적에서의 권장"으로도 존재할 가치조차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두발자유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명제의 진위 여부가
두발규제 논쟁에 있어서의 주요 문제가 되어 왔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그 명제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두발규제의 당위 문제는 논하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위에서 밝혔듯이, '공부' 자체가 보편적으로 권장되는 일로서의 '공부'도 아닐뿐더러,
설령 참된 의미의 '공부'라 해도, 그것은 강제성을 띤 규제를 뒷받침할 수는 없는 정도의
필요성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사안의 당위성 여부와는 상관이 없더라도, 일단 사실관계에의 최대한의
접근을 지향하는 의미에서, '두발규제와 학업과의 관계' 역시 조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머리를 '단정히' 깎으면 공부를 잘 할까요.
모르겠습니다. 통계자료가 없네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강제할 권한은 부여되지 아니하며,
또한 '공부를 잘 한다'라는 게 어차피 사회 보편적인 이익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학 공부라면 모를까... 차라리 사회인으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학업은, 제가 보기에는
초등학교 - 중학교 때에 오히려 더 진행됩니다. 대학입시를 거치는 과정을 겪는다면
거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생각해 보니, 요즘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경쟁기계화되고 있긴 하네요.)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서 쓰는 말입니다만,
'지나보니, 어울리지도 않는데 길렀던 내가 딱하더라. 공부나 할걸...'
이라거나
'지나보니, 교복 입고 머리 긴 애들 지나가면 보기 안 어울리더라.'
유의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이 전부, 강제적 두발규제를 찬성하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개인적인
감상이나 후회, 혹은 '단정한 머리'를 "권장"하고 싶은 심정에서 하신 말씀이었을
분들도 있겠지요.
하지만 혹시라도 그런 이야기를, "강제적 규제"의 근거로 삼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따위 이유는 강제적인 규제의 근거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발적 합의에 의한 규제라면 가능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