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이들은 오래 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진정한 친구사이라 하고 어떤 이들은 감정 하나하나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진짜 친구라고 얘기한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꼭 '진짜'라는 수식어가 들어가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럼 가짜도 있단 말인가? 란 생각을 하면서.
진짜 친구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지는 모르지만 분명 친구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때는 있는 것 같다. 어린 시절을 함께 해서 힘든 얘기를 문득 할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지금 상황적인 가까움으로 얘기가 잘 통하는 친구도 있다. 항상 무언가를 주고 싶은 친구도 있고, 친구라는 단어를 쓰기엔 마음이 어색한 친구도 있다.
친구라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인연의 무게를 생각하는 기준도 다들 다를 것이다. 만약 '개인의 상황'이라는 조건을 예로 들자면, 어려울 땐 손을 내밀어주는 친구가 정말 고마운 거고 즐거울 땐 즐거움을 함께 해주는 이가 고마운 거 아닌가. 물론 모든 상황을 같이 해줄 벗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운이고 말이다.
그 개념을 정의하는 게 개인의 판단기준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했던 생각이 '쌍방향'이라는 개념이다. 핸드폰에 오백명이 저장된 사람과 오십명이 저장된 사람을 두고, 누가 더 행복한 인간관계를 가졌을까를 따진다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물론 이 말도 안되는 테스트의 가이드 라인은 정해지지도 않겠지만 결론을 꼭 내야 한다는 전제를 넣는다면 이 두 사람이 말하는 소위 친구라는 사람들의 뇌속에 침투해서 이 두사람을 지각하는 개념을 살펴보아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발생한다. 우정 혹은 인연이라고 지각하는 무게를 재보는 일이 발생해야 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행복한 인간관계를 가졌는 지를 판단하는 일을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관계에 대한 판단은 필요없는 것일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행복에도, 인간관계에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스치는 말 한마디에도, 마음 씀씀이 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게 고마움이다. 사람의 판단기준은 모두 주관적이지만 그 마음 씀씀이마저 주관적인 사람은 정말 싫다. '필요함'을 위한 친절과 오로지 모든 이야기의 기준이 늘 자신인 사람들 말이다. 이런 판단기준의 전부는 아마 내 개인적인 취향인 듯하다. 언젠가부턴 나와 맞지 않는 소모적인 인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설사 실망을 하더라도 서로 다독여나갈 애정이 있는 게 인간관계의 초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모든 판단과 기준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도와 결부되는 것 같다.
내가 좋은 인간관계를 가진건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인간에 대한 애정에 대해 요즘 부쩍 자주 생각하는 듯 하다. 좋은 사람들에게 작은 손이나마 내밀어 줄 수 있을 때가 기쁘고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는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서로 알아가고 쌓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그리고 배워갈 점에 감사한다. 누군가를 통해선 사람에 대한 예쁜 마음 씀씀이를 느끼고, 누군가에게선 지혜로움을 느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같이 얘기할 때의 즐거운 설레임을 느낀다.
친구라는 정의는 아마도 내리지 못하겠지만 인간관계가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건 분명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