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5분
밖에 나왔다. 적막함이 흐르는 서울 밤거리,
도저히 서울이라 믿을 수 없는 촌스런 동네 길 어귀에 다닥 다닥 붙어있는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에는 불이 덜 붙은 연탄불 처럼 활짝 열린 창문과 불빛들이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관음증적 환자 마냥 그 안에 누가 있을까, 무엇이 있을까, 한마리 외로운 승냥이 처럼 두리번 거린다. 무엇을 찾는 걸까, 짐승본위적인 짝짓기 상대를 찾는 걸까, 아니면 그냥 호모사피엔스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존재감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다 때려치우고 내 생각이나 일단 해보자.
나는 '고 시 생'이다. 순간 이 세글자를 키보드로 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진다.
왜일까.
남들 다 하는거 나도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나도 그냥 한마리 메뚜기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너희들 '따위'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 더러운 짓거리를 하면서 점점 약해져 가는 내 자신에 나는 또 패배감을 느끼고, 그런 드러운 기분이 또 느껴지면 그냥 또 쓰려지는 거다. 녹색의 깔판이 날 노려보는 그 책상에 엎드려 강아지쿠션을 머리에 괸채, 괴로운채 하며, 쳐엎드리는거다. 부끄럽지만 그냥 잔다. 왤까. 그냥 힘드니까.
그리고 또 잠이 안온다. 나는 불면증이다. 무엇이 무서워서 잠을 못잔다. 내일이 두려워서, 인간이 두려워서, 아침이 두려워서, 잠을 이대로 자기엔 너무 무섭다.
마침 새벽에 공포영화를 해주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수줍은 맥주 한캔과 쟁반에 1/3가량 덜어넣은 프링글스 과자. 영화에서 남자는 여자를 불태워 죽이고, 여자는 영혼이 되어 남자를 괴롭힌다.
그리고 나는 자리에 눕는다. 무엇을 위해, 불에 타 끔찍한 피부가 다 벗겨진 핏덩이를 생각하며 자리에 눕는다.
사법시험...이 정식명칭이지만 보통 사법고시라 불린다. 나보다 몇배나 더 잘난 인간들도 힘들다고 하는 그 빌어먹을 시험을 나는 피부가 다 벗겨진 핏덩이가 된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왜 난 불탄 여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맥주 한모금을 더 들이킨다. 좋군, 좋구나, 순간이 좋구나, 이게 인생인가. 순간이 인생일까, 인생이 순간일까, 무엇이든 말장난에 불과하겠지만. 이제는 더이상 찾기 힘든 자신감을 찾으려 안감힘을 쓰려하지만, 겨우 한고비 넘긴 주제에 벌써 힘든척이다. 그리고 난 피부가 깨벗겨진채로 이 곳에 있다.
한모금 더.
지금 난 초조하다. 너무 불안하다. 막막하다.
난 잘나고 싶은데, 성공하고 싶은데, 현실은 새벽에 보여주는 공포영화가 되고 말았다.
난 잘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물어봐도 자동으로 '응'이라고 대답해주는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高試가 아니라 孤試이다.
난 잘 할 수 있을까.
적막한 새벽이다. 적막한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