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사회학
우리나라에 휴대폰이 보급된 지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미국 AT&T사가 1978년 세계 최초로 운용에 성공한 아나로그(AMPS: 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방식의 서비스에서부터 1984년 '카폰'으로 불리는 차량용 서비스로 시작된 이동전화를 거쳐 휴대용 이동전화서비스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 1988년 7월 수도권과 부산지역에서 개시된 휴대전화 서비스의 기본료는 월 27000원, 통화료는 시내 및 시외 50Km까지 10초당 25원, 설치비는 65만원이었다. 특히 휴대전화 가격은 400만원 정도로, 당시 현대 포니엑셀 자동차 한대가 50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할 때 휴대전화는 과거 ‘부의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의 TV와 컴퓨터가 그랬듯, 휴대전화 또한 처음에는 부유층의 전유물 이었다가 기술의 발전에 따른 가격 하락과 대량생산, 수요의 증대로 점차 대중화 되었다. 실제로 방송통신위원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8년 5월말 44,738천명으로 인구대비 92.2%의 보급률을 기록하여 ‘1인 1휴대폰’시대를 열고 있다. 휴대폰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생활필수품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길거리, 학교, 지하철, 오지 산중에서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심지어는 인터넷 웹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휴대폰으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 사이트도 존재한다. 휴대폰은 이제 생활의 일부이다.
최근 휴대폰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이슈가 터졌다. 근 몇 달간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였던 ‘촛불 집회'가 그것이다. 초기 ‘촛불 집회’가 이슈화 되었던 것은 기존의 사회적 이슈에서 멀어져 있던 중․고등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 덕택 이었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어린 학생들의 ‘촛불’에 세대론적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재단하고,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세대의 탄생을 예고했다.
학생들은 일산분란하면서도 자유로웠고 새로웠다. 몇 일만에 광화문 광장에 만 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가 해산하고 다시 그 다음날에는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얼굴의 이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그들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었고, 각기 다른 메시지와 구호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개인, 개인의 학생들을 이어준 연결 고리는 무엇이었을까? 혹자는 그것이 ‘아고라’ 등의 토론 공간이 존재하는 인터넷이라고 답하겠지만 그 전에 그들에게는 ‘휴대폰’이라는 대중화된 매체가 있었다.
현재 10대 청소년들의 휴대폰 보급률은 80%가 넘어선다. 대한민국 평균 보급률에 비해서는 다소 떨어지는 수치이지만, 휴대폰의 다방면에 걸친 활용도는 기성세대를 압도한다. 그들은 휴대폰의 알람 기능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잠에 드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휴대폰은 더 이상 단순한 정보전달과 연락의 수단만이 아니다. 그것은 멀티기기이고 문화이며 생활이다.
휴대폰은 세대 간의 권력 이동을 촉발하는 힘을 갖는다. 휴대폰을 통해 젊은층은 부모의 감시의 눈에서 벗어난다. 기존 가정의 전화는 한때 부모가 자녀들과 그 친구들의 관계를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계신 집에서 여자 친구 혹은 남자친구와 전화 통화하는 것이 꺼려 졌던 기억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부모가 지배하는 가정 공간은 십대들의 정체성을 ‘친구’가 아닌 ‘아이’로 조정한다. 현재의 청소년들은 문자 통신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엿들을 위험 없이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촛불’을 독려하고 함께 하자는 내용의 문자 내용이 부모에게 알려 졌다면, 아마 학생들의 ‘촛불’이 이번과 같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휴대폰은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생성하고 자유의 공간을 열어 준 것이다.
더불어 휴대폰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도시 문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낳았다. 현재 우리는 한쪽 발을 미래에 디딘 채 살고 있다. 휴대폰을 이용하여 미래의 만남과 사건들을 운영하고 관리한다. 장소와 시간은 미리 계획 되지 않는다. 누구나 친구들 혹은 연인과 약속을 할 때, 구체적인 위치와 시간을 상정하지 않고 대충 뭉뚱그려 정했던 기억을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있는 이상 시간과 장소는 언제든지 변경 가능하고 협의할 수 있다. 더 이상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금기 사항이 아니다. 오늘날의 금기사항은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오거나 충전하는 것을 잊는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시간이 ‘조직된 미래’의 개념이었다면 휴대폰이 대중화 된 지금, 시간은 유동성을 지닌 부드러운 미래의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휴대폰은 공간의 제한을 벗어 던진다. 지하철에서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두고 휴대폰을 통해 친구와 연락 할 때, 우리는 두 발은 현재 서있는 물리적 공간에 두었지만 정신과 의식은 전파 너머의 다른 공간에 두고 있는 상태가 된다. 즉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에게 문자 메시지를 교환하고 있는 엄지족들은 같은 장소에 함께 ‘현존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는 물리적 공간 개념을 넘어 휴대폰을 통한 공간의 확장을 보여주는 예 이다.
마침내, 휴대폰이 개․개인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구성하는 새로운 매개체가 될 때 그것은 이번의 ‘촛불’문화제와 같이 통합과 연대의 매개체로 발전한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매체의 대명사인 휴대폰이 낳은 연대의 모습은 역설적이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공간의 장애를 벗어던져 버리며 거리의 정치를 펼쳤던 한국인의 ‘촛불’의 시작은 ‘휴대폰’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