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현재, 한국에서 서태지는 UFO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태지는 서울 한 복판에 추락한 UFO같다. 모두 그의 존재를 알고, 그가 무엇을 할지 궁금해 한다. 그러나 서태지는
결코 그들과 섞이지 않는다. 1990년대의 서태지는 10대의 대변자였을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반의 서태지는 대중음악 시장에 100만의 군대를 몰고 돌아온 왕이었다. 하지만 2008년의 서태지는 대중과 전혀 다른 어떤 존재다. 그는 의 멀더와 스컬리도 오래전에 진실 저 너머로 사라진 시대에 미스터리 서클과 UFO를 콘셉트의 일부로 삼은 앨범을 들고 나왔고, ‘TTL’ 류의 신비주의 티저 광고가 네티즌의 정보력에 의해 더 이상 신비하지 않은 시점에서 TV도 아닌 서울 삼성동 한복판에 UFO로 티저 광고를 했다.
1990년대 이후의 서태지, 그는 변했는가
발매 전후로 보여준 UFO와 미스터리 서클 등의 행보는 다분히 음악적이다.
물론 서태지는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그 때는 신비주의가, 깜짝 컴백이, 새 앨범에서의 예상치 못한 변신이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를 대표하는 카리스마였던 신해철이 케이블 TV에서 자신의 안티 팬과 설전을 벌인다. 반면 서태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많이 부족하고 소질도 없고”라는 이유로 오락 프로그램 출연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인다. 모두 서태지를 알고, 모든 매스미디어가 서태지를 다루며, 서태지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만 서태지는 대중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대중과 유리된다. (이하 ) 발표 후 서태지에 대한 논의가 ‘서태지 VS 대중’의 구도로 이뤄진 것은 필연적이다. 대중은 서태지가 대중 안에서, 대중을 향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대중을 향한 제스처로 해석된다. 그가 미스터리 서클과 UFO를 들고 나온 것은 이 영민한 ‘마케터’가 대중의 관심을 위해 띄운 승부수고, 의 곡들이 과거보다 쉽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의 표현에 따르면 ‘혁명’에 지쳤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서태지라는 이름을 지우면, 서태지가 발매 전후에 보여주는 행보는 서태지의 모든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음악적’이다. UFO와 미스터리 서클은 서태지의 앨범 콘셉트 중 하나다. 또한 그는 팬들을 모아놓고 게릴라 콘서트를 열었고, 게릴라 콘서트 뒤에는 ETP 페스티벌과 로열 필 하모닉을 지휘했던 톨가 카쉬프와의 협연이 기다린다. 그의 프로모션은 이효리와 전진보다는 오히려 조용필의 그것과 유사하다.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려고 돈을 쏟고, TV 대신 공연을 통해 팬들과 만난다. 서태지의 신곡이 ‘빠삐놈’이나 ‘전스틴’보다 화제가 안 되는 것을 ‘서태지의 굴욕’이라 말하고 싶다면, 서태지가 그 굴욕을 감수하고도 굳이 음악을 위주로 한 활동을 하는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게다가 는 ‘교실 이데아’나 ‘Comeback home’, ‘victim’처럼 사회적인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지도 않는다. 서태지는 더 이상 불특정 다수의 대중과 호흡하거나, 그들을 대변하는 영웅이 되겠다는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대중을 위함이 아니다
음반 발매 전의 신비주의 광고처럼 ETP페스티벌 또한 온전히 그의 팬들을 위한 것이다.
지금 서태지가 함께 호흡하는 상대는 그만의 언어를 이해하는 팬들이다. 그의 팬들은 그가 무슨 음악을 하건 16년 째 그의 앨범 발매일 첫 날에 줄을 서서 그의 앨범을 산다. UFO와 미스터리 서클, MBC 의 티저 광고는 서태지가 대중들에게 그가 컴백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광고가 아니라, 팬들을 위한 ‘이벤트’다. 그들은 늘 서태지의 새 앨범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고, 컴백 전 흘러나오는 작은 정보들에도 열광했다. 그들은 서태지가 컴백 전 음악을 미리 공개하기보다는 음악을 기대하도록 만드는 ‘꺼리’를 던져주길 바란다. 그것은 서태지가 TV 대신 땅 위에 미스터리 서클과 UFO를 설치한 이유다. 일반 대중은 그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할 뿐이지만, 서태지의 팬들은 그것들을 직접 보기 위해 그 곳으로 가서 서태지의 컴백을 몸으로 느낀다.
그런데 서태지와 팬덤이 밀착될수록, 서태지와 대중사이의 마찰은 점점 커진다. 서태지의 팬들은 서태지 닷컴을 통해, 또는 서태지의 공연을 통해 그들만의 커뮤니케이션을 쌓아갔다. 그들 바깥의 대중은 그 커뮤니케이션의 방식과 깊이를 절대로 알 수 없다. 이런 스타와 팬덤의 커뮤니케이션은 1990년대부터 명성을 쌓은 뮤지션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희열의 팬이 아니라면, 혹은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아니라면, 유희열이 매일 구사하는 독특한 유머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런 팬덤은 대중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노출된다 해도 스타와 팬들이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알 수는 없다. 반면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서태지가 컴백할 때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그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이 대대적으로 알려진다. 서태지는 공중파 방송사의 스페셜 방송을 통해 컴백하고, 서태지와 그의 팬들이 빚어내는 현상들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전달된다. 지금 서태지는 더 이상 100만 명의 열성팬을 가졌던 그 신드롬의 주인공이 아니고, 지금의 10대는 서태지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서태지의 활동 기간 동안 좋든 싫든 서태지와 그 팬덤이 벌이는 ‘ETP’(‘Eerie Taiji People의 약자)의 페스티벌을 지켜봐야 한다.
서태지와 팬덤, 그리고 대중 사이의 간극
지금 서태지는 팬들을 위해 한정 음반을 발매하고 그를 위한 mp3가 출시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건 팬들에게는 4년마다 한 번씩 오는 축제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4년에 한 번씩 UFO가 착륙하는 것을 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중들은 서태지에게 대중적일 것을 요구한다. 매스 미디어 안에서, 매스 미디어의 세례를 받는 사람이 팬들을 중심으로 소통하겠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대중은 당연히 서태지를 대중성의 여부로, 또는 그들 나름의 기준에 따른 음악성의 여부로 끊임없이 평가한다. 매스 미디어는 여전히 그를 ‘영웅’이나 ‘음반 시장의 구원자’로 묘사하는데, 팬들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정말 인기있어?”, “정말 음악이 좋은 거야?”가 된다. 게다가 대중음악 시장이 몰락하면서 서태지의 팬들은 대중 음악 시장에서 충분히 유의미한 규모가 됐다. 과거에는 10만원에 육박하는 1만 5천장의 스페셜 앨범 매진이 있을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가수들이 정규 앨범조차 1만장을 팔지 못한다. 서태지가 1만 5천장 한정의 스페셜 앨범을 판매하고, 삼성을 통해 스페셜 에디션 mp3 플레이어를 내놓는 것은 팬들을 위한 마케팅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지금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여전히 10만장 정도의 싱글 판매량이 가능한 서태지의 팬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서태지라는 이름이 가진 브랜드 파워 때문이다. ‘스페이스 나인’, ‘토스카’ 등 서태지가 막대한 계약금을 받고 출연하는 CF들 중 상당수가 새로 런칭하거나, 제품의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은 서태지가 만들어내는 실수요 층뿐만 아니라, 서태지가 그만큼 좋든 실든 대중의 이목을 끄는 힘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는 끊임없이 서태지를 주목하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은 어떤 식으로든 언론이 전하는 서태지의 소식을 접한다.
그래서 서태지와 팬덤, 그리고 대중 사이의 괴리감은 커진다. 과거에 서태지의 출연은 ‘그럴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래서 어쩌라고?”다. 시간은 흘렀고, 세상의 패러다임은 변했다. 하지만 매스 미디어는 서태지의 자리를 대체할 만한 누군가를 찾지 못했고, ‘영웅이란 존재는 더는 없는’ 가요계의 바뀐 패러다임에 맞는 틀을 찾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서태지는 때론 조용필과 비교되고, 때론 유희열과 함께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이 돼야 하며, 때론 이효리와 인기 경쟁도 해야 한다. 반면 서태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서태지가 ‘오버’한다며 냉소한다.
서태지가 가장 위험했을 때
더이상 한국에서 ‘됐어!’를 외치지도 않는데, 여전히 그는 진보이며 열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물론, 서태지가 정말로 ‘영웅’처럼 살거나, 대중 친화적으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인가. 그가 한국의 현실에 밀착됐던 시절은 고등학교에서 자퇴한 10대의 청춘이 자기 또래의 지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던 그 때였다. 평범한 10대 소년이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됐고,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강력한 결정권을 가졌다. ‘교실 이데아’와 ‘발해를 꿈꾸며’의 차이는 그 평범한 청년이 체감하는 교육과 통일 문제의 차이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긋지긋하도록 겪었을 교육 문제에서는 ‘됐어!’라는 강렬한 한마디가 나왔지만, 남북 문제는 그 나이 또래의 평범한 청년처럼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계다. 그러나 그 시기를 지난 서태지는 ‘4천 8백만분의 1’이다. 그는 여전히 많은 팬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몇 년에 한 번씩 음반을 낼 수 있는 음악적 자유가 있으며,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러우면 언제든지 해외로 떠날 수 있다. 그는 이미 한국의 일반적인 대중의 삶과 떨어져 있다. 그가 4년에 한 번씩 돌아와 ‘영웅’의 이미지만 가져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다. 서태지가 가장 위험했을 때, 혹은 비판받아야 했을 때는 그가 한국인의 삶과 떨어진 상태에서 컴백해 그 기간 동안만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했을 때다. 4년 만에 돌아온 서태지가 ‘live wire’의 뮤직비디오에서 자신이 음악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메시아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했을 때, ‘토스카’ CF에서 2008년에 스스로를 진보를 향한 열정이라고 자처할 때 같은 것들. 세상은 달라졌고, 서태지는 더 이상 한국인들 틈에 섞여 ‘됐어!’를 외치지도 않는데, 그는 구원자이며 진보이며 열정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행보는 지금 대중이 서태지에 대해 의심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2008년 서태지에 대한 게임 이론은 복잡하게 돌아간다. 서태지가 2000년에 공항에서 수천 명의 환호를 받으며 귀국했을 때만 해도, 서태지와 팬덤, 나머지 대중 사이의 승부는 간단했다. 서태지가 1등 하면, 음악성이 뛰어나면 이기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진다. 물론 그것은 정확한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늘 논란을 일으켰고, 서태지와 그 주변은 늘 시끄러웠다. 서태지의 팬들은 서태지의 음악성을 증명하기 위해 해외 리뷰 사이트에 리뷰를 보냈고, 다른 한 편에서는 안티 서태지 운동이 있었다. 만약 지금도 서태지와 그의 팬덤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면, 서태지의 모든 것을 극찬할 수도, 저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서태지는 더 이상 그 소용돌이에 있지 않다. 과거의 서태지로 돌아가기엔 이미 ‘4천 8백만분의 1’의 서태지로 10년을 살았고, 마음 편하게 자기 세계를 펼치자니 네티즌뿐만 아니라 언론까지 나서 ‘빠삐놈’하고까지 경쟁시킨다.
이제와 비로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서태지는 현재 자신의 위치나 이미지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점차 팬들과의 세계를 쌓아 올리면서, 여전히 그 세상 바깥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며 산 자의 딜레마다. UFO 속 외계인들처럼,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이미 한국 사회에서 크게 분리된 어떤 영역을 차지한다. 그것은 대중에게 더 알려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고, 남은 건 그의 팬이 되느냐 마느냐일 뿐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지금도 19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의 틀로 이해된다. 서태지는 저항적이어야 하거나, 혹은 변절했거나, 혹은 장사꾼이거나, 혹은 시대착오적으로 자신들의 팬들만 붙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언급한대로, 이는 서태지라는 사람에 대해, 혹은 그와 팬이 끌고 간 역사에 대해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서태지는 뭘 해도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서기 쉽지 않다.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서태지가 아닌, 또 하나의 이미지일 것이다. 또한 그렇다고 서태지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팬과 소통하는 방식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팬들과 ETP 페스티벌을 하려면, 미스터리 서클을 만들면서 같이 놀려면 그에게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은 필요하다. 또한 매스미디어는 서태지를 통해 끊임없이 이슈를 재생산하기를 원할 것이다. 서태지는 자기 세계 안에서는 최고지만, 그 바깥에서는 열렬한 칭송과 냉소적인 비아냥거림을 함께 듣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어쩌라고?”에 대한 물음에 서태지가 답해야할 말은 “그냥 한거야”일지도 모른다. 남들이 뭐라하건 나는 이렇게 팬들하고 놀고, UFO로 장난치고 있다고. 실제로 서태지는 그런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발표 이후 서태지의 행보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인정하고, 그 와중에 자신의 세계가 어떻다는 것을 대중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려 하는 듯하다. 서태지의 이번 컴백 스페셜에서는 더 이상 서태지의 ‘업적’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서태지는 ‘북공고 1학년 1반 25번’이던 자신의 10대 시절부터 슈퍼스타로 살아온 16년 동안의 인생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말한다. 자신이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2000년 컴백 당시의 헤어스타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일반인이 보기에 서태지의 토크는 어색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태지가 솔로 활동 이후 TV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은 거의 처음이다. 물론 이는 자신의 ‘팬’인 이준기가 자신과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마이클 잭슨처럼 자신과 팬의 세계 안에서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서태지는 자신이 지금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산다고.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는 없다고.
여기서 더 심각해질 필요가 있을까. 서태지는 그냥 서태지인데
만약 서태지가 꾸준히 지금처럼 그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면,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타인에게 그 세계를 침범당하지도, 고립되지도 않은 채 그들만의 세계를 땅에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되면 MBC 에서 방영하는 서태지의 컴백은 서태지가 대단해서, 어떤 의미가 있어서를 따지기 이전에 그들이 일으키는 현상 자체가 우리 세계의 독특한 현실의 하나이기에 다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 존재했던 어떤 슈퍼스타와 그의 팬덤은, 그리고 그것을 목도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나이 들어가고, 변화하고, 정착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건 서태지의 의도를 추측하고, 그를 떠받들거나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를 좋아하거나, 혹은 DC인사이드에서 가지고 노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태지와 그의 팬덤은 거기에 그냥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신경쓰게 할 일은 점점 줄어들테니까. 여기서 더 심각해질 필요가 있을까. 서태지는 그냥 서태지인건데.
“큰 꿈을 꾸고 살진 않는다. 서태지와 정현철의 꿈을 나눠 꾸진 않는다. 정현철의 꿈이라고 하면 RC 갖고 노는 등 평범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있었으면 한다. 그런 평범한 삶과 음악을 하는 삶이 잘 조절돼 병행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죽을 때까지 즐겁게 팬들과 같이 살고 싶다.”
- 서태지, 8집 컴백 후 가진 인터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