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의 기술 - 
사카토 켄지 지음, 고은진 옮김/해바라기직관적이고 즉흥적인 내 다이어리 실패기
매번 연초가 되면 다이어리를 사면서 결의를 다진다.
어떤 해에는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고, 또 다른 어떤 해에는 영풍문고나 교보문고에서 예쁜 디자인의 다이어리를 발견하면 그걸 집곤 한다. 다이어리에 붙일 알록달록한 꽃 모양, 캐릭터 디자인 등의 스티커를 사고나면, 뿌듯한 마음에 펜 코너에 가서 부드럽게 잘 쓰여지는 펜을 한웅큼 쥐고나서, 괜히 있는 데도 수정테이프 하나를 더 장바구니에 넣고, 형광펜도 있지 않는다.
집에 돌아가서는 다이어리와 몇 권의 책, 그리고 학용품을 산 포만감에 그냥 보기만 해도 뿌듯하고 이미 무겁게 들고 왔기 때문에 쳐다만 보다가 잠에 든다. 다음 날 아침 다이어리를 어떻게 써야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아침은 그냥 스리슬쩍 가버리고, 그냥 도서관으로 가는 길 다이어리는 챙기지 않고 간다. 이제 만원은 족히 넘을 돈들이 그냥 휴지통으로 가버리는 순간이다.
어느 순간 1월은 가버릴 테고 "에이 시x 다음 달 첫날 부터 맞춰서 써야지"하다가 2월이 다가오고, 2월은 또 그냥 가고. 며칠 정도 표기했을 다이어리는 어느 순간부터 짐이 되어버린다.
메모하는 습관, 잘 짜여진 일과를 계획하겠다면서 사버린 다이어리는 애물단지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거. 그게 내 다이어리와의 악연이다. 매번 뭔가 잘 흘리고, 잘 잊어먹고, 약속은 파토내지 않지만 그래도 종종 전화거는 일 따위를 흘리고. 지나다니다가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스타일임에도 그걸 다 적어놓지 못해 집에 돌아와 생각을 해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거. 나야 말로 메모의 습관이, 그리고 -9;메모의 기술-9;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집게 되었다.
메모의 기술. 메모의 정석.
사실 이 책은 -9;메모의 기술-9;은 말해주지만, -9;메모의 정석-9;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첫 번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을 수 있도록 작은 수첩과 펜을 휴대하는 것을 잊지 말 것이다. -9;메모할 준비-9;가 -9;기술-9;에 선행하는 것이다. 이 책은 차근차근 메모할 준비를 하는 것부터 이야기한다.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해도 처음에는 메모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메모를 많이 한다. 이런 사람들은 -9;처리할 일-9;, -9;기억해야 할 일-9; 식으로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메모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사람) 할 일을 메모하여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미리 대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메모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방법도 있다(p.21).그리고 처리해야 할 일들의 순서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물론 이는 다이어리를 쓸 경우 요즘에는 다 되어 있는 듯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상황별 메모 도구도 굉장히 유용하다.
1. 일할 때(책상에서)
책상 오른쪽(왼손잡이는 왼쪽)에 메모지를 펼쳐놓고, 바로 옆에 볼펜을 꽂아 언제든지 메모할 수 있도록 한다.
2. 외근이 잦을 때
겉주머니에 수첩과 펜을 넣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메모할 수 있게 한다.
3. 걸을 때
소형 디지털카메라 휴대용 녹음기, 작은 수첩을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4. 차 안
필요할 때 즉시 녹음할 수 있도록 휴대용 녹음기에 테이프를 넣어 다닌다.
5. 이동 중일 때
걸을 때는 휴대용 녹음기를 이용하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탔을 때는 IC 레코더를 사용한다. 휴대전화의 메모 기능을 이용해도 좋다.
6. 약속이 있을 때
가방이나 재킷, 바지에 메모지를 넣어둔다.
7. 집에서 쉴 때
A4 용지(297*210mm) 크기의 복사 용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상자에 넣은 후 집 안 여기저기에 놓고, 그 위에 펜을 올려놓는다.
8. 잘 때(침대 옆)
머리맡에 노트를 준비해 둔다.(p. 27)
중요한 건 항상 메모에서 떨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메모를 같은 방법으로는 할 수 없고, 저자는 또한 1)꼼꼼한 타입 / 2)감성적인 타입/ 3)지성적인 타입/ 4)변덕스런 타입을 구분하여 메모하는 방법을 제안하는 데, 나 같은 경우는 4)변덕스런 타입에 해당된다 할 수 있겠다. 대답은 "이런 사람은 아예 메모를 하지 않거나 혹시 하더라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메모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이어리를 사도 그때만 잠깐 사용할 뿐 금방 잊어버린다. 따라서 휴대전화나 최신 기기를 사용하거나 집 안 곳곳에 메모지를 두어 먼저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p.52)가 답이 되겠다.
본격적인 메모의 기술
저자의 메모의 기술은 총 7개의 범주이다.
1. 언제 어디서든 메모하라.
2.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라 - "그리고 그들의 발언 내용과 사고방식, 언어 습관 등을 메모하라"(p.60).
3. 기호와 암호를 활용하라.
4. 중요 사항은 한눈에 띄게 하라.
5. 메모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하라 -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한가하고 무료한 시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적는다"(p.68).
6. 메모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라 - "나는 의식적으로 메모와 기록, 정보를 주제별로 정리하여 보관하고 있다. 다이어리와 수첩은 나중에 주제별로 분류하는데, 제목은 각 기획별로 붙여도 좋고 인물별로 붙여도 좋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매일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한다. 나는 이 메모를 책이나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략).... 자신이 체험한 일에서 뭔가를 얻어냄으로써 실패를 성공으로 유도하기 위한 업무 추진 방법, 실수와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등을 알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9;정리한 후 잊어버리자!-9;이다. "(pp.73-74).
7. 메모를 재활용하라 - "1)메모한 것을 버리지 않는다. 2)수첩은 일정 기간 보관한다. 3)나중에 다시 읽는다는 기본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p.75).
마지막 뒤의 세 장은 "일과 메모", "일상과 메모", "자기관리와 메모"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 각자의 용도에 맞게 보면 되겠다. "일과 메모" 장에는 -9;상사에게 깨지지 않기 위해-9; 메모하는 부분이 나와있는 데 너무 재미있다.
이 책이 대단한 스킬을 주는 것도 아니고, 또 대단한 메모를 통한 성공의 사례를 제시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점차 정보량이 많아지는 현대사회에 있어서 그것들을 자신이 -9;장악-9;하기 위해서 메모는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메모란 걸 항상 하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메모에 들인 시간은 평생의 0.0001%가 될까 말까한 사람이다. 덕택에 즉흥적이고 직관적이긴 하되, 디테일에 강한 사람은 못되었다. 디테일에 강하고 싶다는 것이 내가 <메모의 기술>을 잡은 이유가 될 텐데. 이제 해봐야지(안 그래도 어제부터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잡다하게 적어보고 있다.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난 자기계발서를 한권도 읽지 않을 계획이다. 이를 테면 난 아직까지 자기계발서를 한권도 읽지 않았다. <시크릿>이나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다보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자꾸만 세상 어찌 굴러가는 지도 모르면서 -9;기도하는 심정-9;으로 자신의 마음 정리만 강요하는 책을 이해할 수가 없다.
다만 이런 -9;실용기술-9; 책은 좀 손이 가게된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에 대한 -9;장인-9;들의 이야기는 항상 매혹적이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이라는 그 질감이 너무나 맘에 든다.
저자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말.
-9;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9;가 아니라 -9;오늘 꼭 해야 할 일은 이것과 이것-9;이라며 막힘 없이 일을 진행하며 인생과 일을 즐겨라.
메모는 이런 목적에서 한다.
메모를 잘 할수록 그만큼 일하기 쉬워지는 것만은 틀림없다(p.181).뱀다리1.
사실 이런 책은 문고판으로 3000원 정도에 찍어야 하지만, 9500원 씩이나 받으면서 팔고 있다. 상혼이 좀 싫긴 한데,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앞에 추천의 글을 쓴 윤은기 박사는 도대체 뭐하는 녀석인지 궁금하다. 속물 근성에 역겨워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집어던질 뻔 했다. 게다가 -9;하드 드라이버-9;라고 말하는 무식함.
"메모는 돈이다(Memo is money).""메모는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속물스러움과 -9;철학적 해방선언-9;을 같이 엮어 놓는 놈은 참 견디기 힘들다.
http://flyinghendrix.tistory.com2008-08-08T08:07:320.3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