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다니며 시골의 작은 구멍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시골의 구멍 가게는 실내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유통기한이 지났을 법한 과자나 라면 봉지, 소주병에 먼지가 쌓인 것들을 진열해 놓고 있다. 손님이 가게문을 들고 들어서도 주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인은 낮잠을 자는 지, 손님이 한참을 불러대야 하품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바쁜 도시와 달리 시골은 느긋하고 느린 것이 제멋이라고 느껴진다. 문득 가게문을 나서는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흑염소를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김승옥의 작품이 떠올랐다.
염소는 힘이 세다. 그러나 우리 집 염소는 보름쯤 전에 죽어버렸다. 이젠 우리 집에 힘센 것은 하나도 없다. 힘센 것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 있다. 염소 고깃국을 사먹으로 오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집의 밖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그 사람들은 기운이 세다.
기운 센 그 사람들은 사흘 만에 염소 한 마리씩 삼켜버린다. "겨울철엔 뭐니뭐해도 염소 고깃국이 제일이거든. 한 그릇 먹고 나면 얼굴이 불그스름해지고 사타구니가 뜨뜻해진단 말야." 손님 중의 한 사람이 말한다. "요즘 자네 마누라는 볼이 홀쭉해졌겠군"하고 다른 사람이 말한다. "에끼, 이 사람. 아닌게 아니라 마누라도 가끔 데려와서 이걸 먹여야겠어." "동네가 요란해지겠군." 그들은 난 알 듯 말 듯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높은 소리로 웃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