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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좌빨 좀비들아 꼭 잃어보고 현명해 지기 바란다

최성구 |2008.08.16 20:53
조회 79 |추천 0
"3.1절을 맞이 하여" : 지만원이 드리는 글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가 한국인들에게 많이 읽혔다. 이어령 박사의 "축소지
향의 일본인"도 많이 읽혔다. 일본을 미워하는 글이면 잘 읽힌다. 일본과의 축구경
기는 유난히 열기를 얻는다.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일본인들은 앉아서 반성만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까? 한국을 더럽게 보는 염
한 서적이 줄을 이었다. 그 책들에는 전여옥씨가 일본을 욕한 것보다 더 더럽고 싫
증나는 모습으로 한국인들이 묘사돼있다. 일본 인구는 한국인구의 3배나 된다. 일
본인들의 독서열은 상당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과 일본, 서로가 서
로를 미워한다면 손해는 누가 더 많이 볼까?

  김동성 사건에 대해 화를 내지 않을 국민은 없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들은 햄버
거를 위시하여 미국제품을 배격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누군가가 "*** 부시"라는
작사와 작곡을 하여 어린이 인터넷에 띄웠다. 곡을 재미있게 부르는 어린이들이 "
부시 나쁜 놈, 부시 ***"를 외친다. "맥도널드 콜라는 아프간의 아프간의 피눈
물, 버거킹 햄버거는 이라크의 주검들, 약소국 피를 빨아 배부른 악마야, 이제는
우리 형제들 피마저 먹으려든다면"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어떤 자세를 보일까? 앉아서 반성만 하고 있을까? "미국에
서 현대자동차, 삼성반도체, 한국섬유제품을 몰아내자는 운동을 펼친다". 미국
의 인구는 한국
인구의 5배다. 미국이 등을 돌리면 모든 세계가 우리를 차게 대한다. 뻔히 지는 싸
움을 감정만으로 걸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우리
의 젖줄이다. 미국도 싫다, 일본도 더럽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가?  

  필자 역시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있었던 미국인들의 추태에 대해 혀를 차고 있
다. "나의산책세계'에는 월남전에서 필자가 소위였을 때 병사들에게 미군 소령 발
뒤꿈치에 대고 M-16 소총을 연발로 쏘아버리라고 명한 적이 있다는 글이 있다.

  거드름 부리던 그가 삽쌀개 도망가듯이 물주머니 같은 배를 안고 잘도 뛰었다.
필자는 그날 직속 상관으로부터 "미국인을 건드려서 큰일 났다"며 꾸중을 들었지만
그 소령의 상관인 미군 중령은 그 다음날 필자를 일부러 찾아와 사과를 했다.

  필자는 미국에서 석박사 공부를 했고, 교수 생활을 하는 동안 동양계라면 무조건 얕
보는 형편없는 미국인들과 싸움을 많이 했다. 하지만 미국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2사람은 필자를 미워해도 8사람은 좋아했다. 형제만큼 친한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한국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듯이 미국도 그러하다. 어느 한 두개의 사건
을 놓고 미국인 전체를 증오하는 것이야말로 반세계적인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을 증오하고 무조건 미워만 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세계
는 약육강식 철학이 지배했다. 그 시대에 일본은 강자였고, 우리는 못난 약자였다.
지금처럼 당파 싸움만 하다가 망한 것이다. 우리가 못나서 당해놓고 우리는 잘났던
일본을 지금까지도 원망하고 증오한다.

왕건이라는 드라마를 보자. 그리고 6.25를 상기해 보자. 지난 수 천년간 우리 민
족이 동족상호간에 저질렀던 만행 중에 일본인 이상으로 가혹했던 사례들이 없었던
가. 일본이 우리보다 야만적이냐 아니냐, 잘났느냐 못났느냐는 지금의 일본인과 지
금의 한국인들을 보면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필자는 불과 10개월 전 일본에서 열흘
을 지냈다. 동경과 농촌에서 본 그들이야말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양반이
었다.

지금은 창의력을 먹고사는 시대다. 증오로부터는 창의력이 나오지 않는다. 증오하
는 마음을 "오죽 못났으면 약육강식 시대에 일본에게 먹혔을까" 하는 참회의 마음
으로 바꾸어야 한다.

  일본인들은 세계 최초로 원자탄의 실험대상이 됐었다. 의약품도 개발하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그런데 미국은 살인무기를 만들어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실
험을 했다. 그 엄청난 재앙을 유전자로 대물림하는 일본인들의 대미 증오심이야말
로 어찌 하늘을 찌르지 않았겠는가?

  이 기막힌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미국을 무작정 증오하지는 않았다. 전
후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장 문 밖을 기웃거렸다. 그들보다 잘난 미국을 배우
기 위해서였다. 미국인들은 그런 일본인들을 멸시했다. "일본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미국을 따라올 수 없다. 문을 활짝 열고 다 보여줘라".

  1957년 당시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수많은 군중을 향해 미국의 우월감을 표현했
다. "일본은 기술면에서 영원히 미국과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지금 매
우 훌륭한 손수건과 훌륭한 파자마를 생산하고있습니다. 왜 그런 것들을 미국에 수
출하려 하지 않습니까?". 감히 미국을 흉내내겠다며 공장문을 기웃거리는 꼴사나운
모습들을 멸시하는 연설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세계 GNP의 54%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생산기지가 미국에 있
었고, 세계의 신제품은 모두가 "MADE IN U.S.A" 였다. 미국인들의 우월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다. 그들은 미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모든 제품을 쓰레기로  멸시
했다. 이를 NIH 증후군(Not Invented Here Syndrome)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모욕을 무릅쓰고 일본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선생님들을 불러들이고 미국을
견학하면서 미국을 모방하려 애썼다. 일본인들은 "미국을 모방하자"(Copy the West
목표를 세웠다. 일단 모방한 다음에 그들의 목표는 "미국을 따라잡자"(Catch up
with the West)로 바뀌었다. 1980대 초, 드디어 일본이 생산 기술과 품질관리에서
미국을 앞섰다.  

  1982년,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조롱 섞인 연설이 있은 이후 20여 년만에 승용차에
대한 미국인의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일본 승용차가 나란히 1,2,3위를 차지했다.
반면 미국 차는 겨우 7위를 차지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차는 미국 차가
아니라 일본 차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일본인들은 "N0라고 말하자"며 미국과 동격임을 주장한다.  

  우리는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성격들을 가지고 있다. 일본만 미워하는 게 아니
라 최근에는 미국까지도 미워하는 사람 수가 늘고 있다. 잘난 사람을 못 봐주는 마
음, 증오하는 마음은 저들에게는 아무 기별도 주지 못하면서 우리 스스로만 파괴한
다. 잘 난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누구로부터 배운단 말인가. 이런 마음을 가진 사
람, 단언하건데 절대로 자기 발전을 하지 못한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오직 황폐한
삶을 살뿐이다.

  일본을 미워하고 미국을 미워하는 마음이 가장 심한 곳이 북한이다. 그들은 누구
로부터 배우는가? 주체사상밖에는 없다. 그들이 못 사는 이유는 그들보다 잘 난 사
람들을 배척하고 증오했기 때문이다. 증오심을 부추기면 단합은 시킬 수 있어도 발
전은 기할 수 없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들은 증오심에 불타는 북한 사람들이 아니라 증오심을 배움으
로 승화시켜 끝 내에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사람들이다. 증오심을 버리고
잘 난 사람들로부터 배워야만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게 많은 국민이다. 그 첫째가 "배우는 방법"이다.
1950년 일본은 미국이 낳은 품질이론의 대가 "데밍"박사를, 1954년에는 쥬란 박사
를, 1958년에는 파이겐바움 박사를 초치하여 경영의 과학화에 눈을 떴다.

"모든 의사결정은 냉철한 통계자료에 의해서 하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
다 해서 그렇게 하지 마라.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
지 마라. 오직 통계자료의 분석에 의해 의사결정을 하라. 통계자료 없이 의사결정
을 할 수 있는 경영자는 오직 神뿐이다".

  "근로자들의 정신력을 강화하여((spiritualism)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려는
것은 화살로 전투기를 쏘아 내리게 하려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다. 인간의 힘은 시
스템의 벽을 넘지 못한다. 개선을 하려거든 시스템부터 개선하라".

  이것이 1950년대 초에 일본에서 최고경영자들에게 유행했던 분위기였다. 이미 50
여 년 전에 일본 기업들은 의식개혁(Spiritualism), 신바람(Emotionalism)으로부터
의 고별을 고했다. 시스템적 접근방법, 통계학적 품질관리라는 냉엄한 과학적 어프
로치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제품을 선호하면서도 일본인이 어떠한
노력이 오늘날의 품질 1등 국가를 이룩해놓았는지에 대해 전혀 연구하지 않았다.

  의식개혁! 지금도 이 의식개혁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영자들이 많다. 일본인들
이 50년 전에 버린 쓰리기를 다시 주워 가지고 보물처럼 애지중지하고 있는 것이
다. 내가 낳고 내 손으로 키운 자식의 의식 하나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지금 수많
은 타인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누가 누구의 의식을 감히 개혁한다는 말인가.

  지금의 의식이 세모로 생겼는지, 네모로 생겼는지 그려내지도 못하면서, 또한 바
꿔야 할 목표 의식이 맥주병처럼 생겼는지 항아리처럼 생겼는지에 대한 스펙
(specification)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의식을 바꾼다는 말인가. 이처럼 처
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우리는 지난 20년간이나 허송해 왔다.

  오늘 아침 조간에는 소위 진보세력 국회의원들이 708명의 "친일명단"을 발표했고, 2.10
일 오후 11시에는 MBC에서 이를 방송할 예정이라 한다. 5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를
다시 부각시키는 데에는 저의가 있어 보인다. 광복회에서 받았다는 692명에 16명을 나 어
린 국회의원들이 날치기식으로 삽입을 했느니, 이회창 총재의 말대로 일부가 잘 못됐느니,
하는 식의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왜 하필 이 시기에 반일정서를 더 부채질  하려 하느냐에 있다. 이를 주동하는 국
회의원들의 어록을 보면 대부분이 "친북성향"의 발언들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 우리 운명
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50년 전의 "친일세력"이 아니라 "친북세력"이다.  

추천수0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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