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을 전공한 나에게 [눈(眼)에는 눈 이(齒)에는 이]라는 영화 제목이 처음엔 케케묵한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고대 함무라비 법전의 핵심적인 법언(法言)으로 잘 알려진 함축적인 문구를 영화의 제목으로 선택했으니 구지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의 대강을 이해할 수 있음직한 제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지금, 영화의 내용과 제목이 꼭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지만 왜 눈눈이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혹독한 영화평의 전주곡인가?^^;) 8,000원이라는 적잖은 값을 지불하고 본 간만의 영화관람이었지만 서점에서 요즘 잘 팔리고 있는 5,000원 내외의 Hand in Hand의 문고판 책 한 권을 사서 시간을 들여 읽는 것이 훨씬 효용가치가 높다고 거듭 후회하고 있다.
어쨌든 어차피 DVD로 나올 것들 왜 구지 그런 돈을 주고 보았는지에 대한 책임도 나의 몫이지만 (사실 영화는 영화 자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데이트의 주요한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에도 사실 영화라는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 너무 오래간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개봉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로움과 즐거움,, 그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었고 따라서 그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적으로 밋밋하기 이를 데 없다. 백성찬이라는 경찰로 열연한 한석규의 모습은 몇 년 전에 만났던 영화 [주홍글씨; 여기에서는 영화배우 성현아, 엄지원, 故 이은주와 호흡을 맞췄다.]에서 등장했던 상당히 시니컬한 경찰 역할과 캐릭터적인 면에서 그리고 Mood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지난 90년대 영화배우로 변신해 한때 흥행제조기로 주가를 올렸던 그의 역할이 따뜻하고 자상하면서 세심한 배역을 소화했었다는 점을 기억해 볼 때 점점 그만의 연기력을 시험할 수 있는 배역, 그 가운데에서도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스타일의 배역을 소화하고자 하는 그의 도전은 평가할만하지만 그다지 그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어울리는지는 의문이다. 웃음소리가 유독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은 어쩌면 영화를 잡은 곽경택 감독의 웃음을 통한 메세지 전달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석규가 선택한 자신의 역할을 대사보다는 의성어가 짙은 긴 웃음으로 소화할 수 밖에 없는 역할제한과 움직임이 담겨있지 않은가 한다. 욕설이 유난히 그의 입에서 자주 나오지만 과거의 영화들에서 등장했던 그의 이미지가 강해서 쉽게 받아들여지는 장면은 되지 못한다.
그 다음으로 악역으로 등장해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 차승원. 이 친구는 사실 [광복절 특사] 이후로 코믹적 이미지가 굳어져 꽤 진지하면서도 악당 역할을 소화해 내는 것에 대한 점이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진 못한 것 같다. 눈눈이이에서 비록 웃거나 방방 뛰는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왠지 눈매나 또박또박하면서도 굵직한 목소리에서 스스로 웃음을 지우긴 어려웠다.
영화 대사속에서도 기억에 가장 남는 것이 "~~~출발해!" 였는데 광복절 특사에서 상대 역이었던 설경구에게 교도소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무모하게 차를 몰게 하는 역할의 그 "빨리 출발해"의 어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만 그의 변신 가운데 의미있는 점은 검은색 옷을 꾸준히 입으면서 나름대로 어두운 이미지를 꾸준히 보여주려 했던 노력이라고 하면 어떨지,, 한석규 역시 자신의 캐릭터를 보다 냉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회색 코트를 시종일관 입고 나오는데 영화에서 등장하는 선그라스는 본인의 애장품으로 알려져 있고 염색한 회색의 헤어스타일 역시 본인의 의사로 표현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줄거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악당의 복수"와 그것을 제지하려고 애쓰는 "직관적인 형사의 행동"으로 압축된다. 복수라는 키워드는 곽경택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영화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차승원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김현태라는 재벌회장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천 부두항의 무지막지한 컨테이너에 깔려 잔인하게 생을 마치게 되고 (영화의 내용이 그 이후부터 아주 우습게 흘러가긴 한다.) 반전이라고 만든 것 같긴 하지만 반전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마지막의 애매함을 일부러 남겨놓은 것은 아닌지 어쨌든 한석규가 차승원의 청을 '부탁'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하면서 영화가 끝나버리고 만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올드보이]와 같은 명작에서 볼 수 있는 인물의 내면이나 심리연기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자동차가 비교적 많이 부수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도 헐리우드 영화에 이미 익숙해진 우리의 눈을 그다지 만족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대낮에 서울 강남 대치동 한복판에서 수십억의 현금이 든 수송차량이 강탈되는 사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제주국제공항에서의 밀수된 금괴 600kg이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다소 긴박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동안 대부분의 강력범죄를 소탕해 매스컴에도 칭찬이 자자한 백발백중의 형사 한석규는 자신의 이름을 사칭해 완전범죄를 성공시킨 범인 차승원의 행동에 분노한 나머지 그를 집요하게 쫓아보지만 번번히 차승원은 그의 그물망을 빠져나가고 만다.
승자를 알 수 없는 줄거리가 그나마 영화를 어느 정도 긴장감으로 몰고 가지만 사실 결론 부분에 와서는 그런 박진감이 어처구니 없이 결론지어지고 만다. 아무튼 그렇게 숨막히는 레이스가 계속되는 가운데, 위기에 몰린 차승원은 오히려 한석규의 앞에 버젓이 나타나면서 자신의 목숨을 포함한 동료의 석방을 제안하게 되고 그러한 모종의 밀약도 아니면서 거래도 아닌 듯한 두 남자의 위법한 계약이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
범인을 모두 검거하는 형사의 결론이야 이미 새로울 것이 없지만 차승원을 홀로 차에 태우고 떠나는 부분부터 영화가 다소 스릴러가 아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이다. 어쨌든 차승원은 그의 부탁대로 탈출에 성공하고 한석규는 그 댓가로 형사에서 새로운 피의자의 신분으로 바뀐다.
1년 후라는 자막이 나오면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Scene들이 해피엔드로 끝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해피엔딩이 아닌 허무함으로 자리잡을 뿐이다.
간만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지만 그다지 추천을 하고 싶진 않은 영화다. 액션이라고는 하지만 차 몇 대 부수어지는 장면은 컴퓨터 모니터로 봐도 충분하고 두 주인공의 액션장면도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하는 연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금물이다. (대신 그 주인공들이 거칠게 몬 차들이 열연했다고 할 수 있다.)
한석규와 차승원 이외에 '감성이 없어,, 감성이'라고 말하는 안토니오의 다소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는 듣기엔 좋지 않으나 나름대로 이 영화의 또 하나의 축을 든든히 떠받치고 있고 '돈 없으면 그냥 죽어'라고 외치는 재벌 이사장의 연기도 밋밋하지만 볼만하다.
DVD로 나오게 되면 그냥 시간 많이 남을 때 편하게 누워서 보고 한 숨 드러누워 자면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결론지어 버리면 영화를 제작한 많은 분들의 공로를 폄하하는 것이 될 수 도 있기에 이 영화가 나오기 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간만에 영화관을 찾아 볼 수 있도록 괜찮지만 지극히 평범한 컨텐츠를 통해 한국영화를 보게 만든 손길에 사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