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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과 천국의 환시- "파우스티나 성녀"

연미숙 |2008.08.19 14:38
조회 123 |추천 1


제목 : 지옥과 천국의 환시- '파우스티나 성녀'

변화의 해(1936) ; 지옥의 환시


이 피정에서 파우스티나 수녀는 신비적 일치의 경험을 가졌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을 보았다. 예수님과 일치를 이룬 어느 한 순간에, 긴 세월 동안 묵상과 명상을 통해 얻은 것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파우스티나는 예수의 명령으로 지옥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 지옥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심한 고문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였다. 얼마나 무섭도록 광활하고 넓은지! 나는 온갖 종류의 고문을 보았다. 지옥을 이루는 첫째 고문은 하느님의 상실이다. 둘째는 영원한 양심의 가책, 셋째는 조건의 불변이다. 넷째는 영혼을 파괴시키지는 않은 채 파고드는 불길인데, 하느님의 분노에서 나오는 영신적 불로서 무서운 고통이다. 다섯째 고문은 연속적인 암흑과 질식할 듯한 무서운 냄새, 더구나 이 암흑 가운데서 악마와 저주받은 영혼들이 서로 마주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고문은 사탄으로로부터의 끊임없는 시달림, 일곱째 고문은 무서운 절망감, 하느님의 증오, 천한 말, 저주와 모독이 난무하는 현장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옥의 영혼들이 겪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문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각 영혼마다 특별한 고통이 있다. 예를 들면 감각의 고통이 있다. 각 영혼은 각자 지은 죄의 양상에 따라 무섭고도 형언할 수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각자가 겪는 고통이 다른 동굴과 구덩이들이 있다. 만일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 광경을 보고 까무라쳤을 것이다. 죄인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따라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도 지옥이 어디 있느냐, 본 사람이라도 있느냐, 지옥이 어떻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느냐는 말을 못하도록 하느님의 명에 의해 이것을 기록한다.

나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지옥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지옥의 심연을 방문하였다. 나는 여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 악마들은 나를 증오했으나 하느님의 명령으로 나에게 순종하였다. 나의 기록은 내가 본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옥에 있는 영혼들은 대부분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지옥에 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따라서 나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한다. 나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자비를 기도한다. 오 예수님,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그것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보다는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어떠한 고통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변화의 해(1936) ; 천국의 환시


파우스티나 수녀는 전에 연옥과 지옥을 본 일이 있었다. 11월 27일 몸이 약해 누워있을 때, 다음과 같이 천국에 대한 환시를 기록하였다.

오늘 나는 정신적으로 천국에 가 있었다. 나는 사후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천국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보았다. 모든 피조물들이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하느님 안에서의 행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았다. 이 행복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전파되어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이 행복에서 나오는 영광과 찬미는 행복의 원천인 하느님께 되돌아간다. 그들은 끝없는 하느님, 하느님의 내적 생활, 즉 성부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명상한다.

이 행복의 원천은 그 본질상 불변의 것이나, 항상 신선하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행복을 쏟아 붓는다...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눈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것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순수한 사랑에서 나온 조그마한 행위라 하더라도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충실히 사랑하는 영혼에게 내리시는 은혜는 측량할 수 없다.

하느님의 엄청난 엄위로우심을 보고도 나는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리고 하늘의 천사들이 자기들이 받은 은총과 계급에 따라 하느님을 숭배한다는 사실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영혼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찼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기쁨도 더했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즐거웠다. 내가 작음을 보고 기뻤다. 왜냐하면 내가 작아야 하느님께서 나를 품안으로 데려가 성심에 보다 가까이 안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오 하느님, 영생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을 감싸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부정(父情)어린 가슴에 껴안으시게 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변화의 해(1936) ; 시련과 은총의 시기


내 딸아,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적들은 내 발아래에서 흩어질 것이다.

그가 가진 불신이 그가 짓는 죄보다 내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준다고 전하여라.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모든 어려움은 다 내뜻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이다.

 

 

중재의 고통과 불타는 사랑(1937) ; 순명의 가치


내 딸아, 긴 기도와 극기를 하는 것보다 한 가지의 순명이 나에게 더 큰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

내 딸아, 너는 네 자신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들을 위해 살고 있다. 그들을 위해 기록하여라. 네가 글을 써야 한다는 내 뜻을 고백신부들을 통해서도 알았을 것이다. 너는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알고 있다. 내가 하는 말에 의혹을 지녀왔다면 누구에게 가서 물어 볼지도 알고 있다. 나는 그에게 내 일을 판단할 빛을 주었다. 나는 그를 지켜 보고 있다....내 요구보다 그의 판단을 따라라. 그가 내 뜻에 따라 너를 인도해 줄 것이다. 그가 내 뜻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해도 염려할 것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너는 그에게 순명하면 된다.


(파우스티나 성녀- 자비는 나의 사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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