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일:8월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
그분의 고향은 요한 바오로 2세와 같은 폴란드입니다.
1894년에 태어나셨고, 후에 꼰벤뚜알프란치스꼬회에 입회하여 평생을 프란치스꼬의 제자로서 사셨습니다.
그분의 삶을 특징적으로 규정해 주는 두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모의 기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수감자(갇힌이들)들의 주보성인’입니다.
그럼, 간략하게 이 두 내용에 대해 알아봄으로 콜베성인의 삶과 영성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성모의 기사’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매달 저희 꼰벤뚜알 프란치스꼬 수도회의 사도직 공동체인 성모의 기사회에서 발행하는
영성교육잡지 이름입니다.
현재 나가는 잡지의 이름은 그냥 ’성모 기사’이지요. 운전기사나 다른 기술자를 일컫는 ’기사’가 아니라,
옛날 서양의 ’삼총사’같은 데서 나오는 군인을 말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성모님의 군인, 병사, 전사 등등으로 말할수 있겠지요.
1917년 콜베성인이 수도회 신학생일 때 다른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동아리처럼 시작한 모임이었습니다.
동아리의 목적은 당시 반 교회적인 적대 세력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성모님 군대의 일원인 영적 군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이미 어린시절부터 콜베성인의 가슴 깊은 곳에 뿌려졌던
성모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꽃처럼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시절 뿌려진 씨앗이란 다음과 같은 일화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 콜베에게 어느날 성모님께서 발현하셔서
아름다운 흰 관과 붉은 관을 보여주시며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흰관은 순결을 뜻하고, 붉은 관은 순교를 뜻했는데 어린 콜베는 두 관을 다 달라고 대담하게 청했습니다.
이 발현은 소년 콜베가 수도자로서 살다가 순교의 빨마를 얻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영광을 성모님의 일꾼으로 일하면서 얻게 될 것을 말해줍니다.
’성모의 열애자’라는 애칭에 걸맞게 콜베 성인은 그야말로 성모님께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온통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생각과 사랑으로 가득 찼고,
그 가득찬 것이 ’성모 기사’라는 잡지를 통해 온 세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처음 몇 십 부로 시작한 잡지는 이내 몇 십만 부로 늘어났고,
최신의 윤전기와 시대의 선구적인 진보 기술 등을 이용해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려 했고,
서구 유럽뿐 아니라,한국을 기차로 관통하여 일본으로 가서 성모의 마을을 건설하여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낯선 동양인의 언어로도 우주의 여왕이신 성모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 모든 여정중에 콜베 성인의 입과 맘속을 맴돈 단어는 오직 ’아베 마리아’ 뿐이었습니다
’수감자의 주보성인’ 여러분은 제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콜베성인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미움과 분노, 혼동의 역사 한가운데 계셨습니다.
어느날 폴란드의 니에포칼라노프(성모의 마을)에서 독일 나치군에게 체포되어
죽음의 수용소로 일컬어 지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절망의 철조망 안에서 위대한 사랑의 화산이 폭발하여
미움과 살인의 세상을 순식간에 덮어 버립니다.
어느날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한명이 탈출을 하여 그 대가로
남아있는 포로 10명이 아사감방에서 굶어 죽어야만 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포로수용소장의 손가락이 저승사자의 갈쿠리가 되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포로들의
뒷덜미를 하나씩 낚아채고 있을 때, 지적당한 한 포로가 몸부림을 치며
’나는 죽을 수가 없다. 내 아내와 자식들을 어쩌란 말인가!’하며 절규했습니다.
바로 그때 콜베 성인이 나서며 ’내가 저 사람대신 죽겠소’
마치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해 당신을 보여주시는 듯 했고,
이어 사랑의 쇠뭉치에 맞은 듯 얼떨떨한 상태에서 피도 눈물도 없던 수용소장 프리츠는 이를 허락합니다.
콜베 성인의 놀라운 사랑은 다른 9명의 포로가 굶어 죽어가는 동안 끊임없이 그들을 격려하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을 통해 평화롭게 숨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끝내 독일군의 독주사에 의해 순교의 빨마관을 얻게 되었는데,
이날이 바로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인 8월 14일 이었습니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
그분의 삶을 보면서 우리 모두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모님께 대한 완전한 의탁과 신뢰만이 사랑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지금도 교회를 거슬러, 생명을 거슬러,
자연을 거슬러 살아가는 인류를 다시 원 상태로 회복시킬 수 있는 은총이
오직 성모님의 전구하시는 손길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꼰벤뚜알프란치스코홈에서www.ofmconv.or.kr)
1894년 1월 8일 폴란드의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난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는
라이몬드(Rajmund Kolbe)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1907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막시밀리안이란 이름을 얻었다.
1911년에 유기서원을 하였고,
1917년에는 로마에서 천주의 모친 동정 마리아께 대한 자녀다운 효성에 불타는 마음에서
"성모 기사회"라는 신심 단체를 설립하였다.
1918년, 그는 로마에서 서품받고 폴란드로 귀향하여, 월간 "성모의 기사(Rycerz Niepokalanej)"를 창간하였다.
1927년, 그는 와르소에서 25마일 거리가 되는 곳에 무염시태 성모의 마을을 세웠는데,
그는 선교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성모님의 보호와 도우심 밑에서 이와 비슷한 마을을 일본과 인도에도 세웠다.
1939년 나치에 반대한 혐의로 비밀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일단 석방된 뒤,
1941년 2월 유대인들과 폴란드 지하조직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다시 체포당했다.
바르샤바 감옥에 갇힌 뒤 배에 실려 크라쿠프 교구 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이곳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죄수 프란치셰크 가요프니체크를 대신하여 목숨을 내놓았는데,
처음에는 굶주리다가 마지막에 페놀(석탄산) 주사를 맞고 1941년 8월14일 죽었으며 화장되었다.
1971년 10월 17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福者)로 선포되어
나치 희생자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시복(諡福)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1982년 10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사제이자 수도자로서
일생동안 그리스도의 사랑을 온 몸을 바쳐 실행하고 순교의 길을 간 성인이다.
폴란드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신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모께 대한 특별한 사랑과 믿음을 간직하며 자라났다.
티없이 맑은 소년시절의 어느날 콜베 신부는 기도 중 성모님으로부터
순교의 관과 순결의 관을 선사 받게 되고 결국 그의 일생은 이 계시를 꾸준히 실현하며 펼쳐지게 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운 형편이였으나 그는 타고난 재능을 닦을 수 있게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로마에서 수학하며 철학과 신학의 박사학위를 얻게 된 그는
조국 폴란드로 돌아와 자신이 계획하던 주님의 나라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로마 유학시절 만들었던 "원죄 없으신 성모회"를 기초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성모의 기사회’라는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의 도움은 커녕 주변의 비웃음과 냉담함을 이겨내며 콜베신부는
오직 기도와 고행으로 기적적인 발전을 이룩해 나간다.
이런 신부의 모습에 감동한 수련 지원자들이 몰려들어
그를 중심으로 ’니에포칼라누프’라는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기리는 공동체가 탄생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잡지 등의 홍보매체와 기적의 매달 제조로 전교에 매진한다.
이 공동체가 발전을 거듭하자 신부는 세계 곳곳에 이것을 전파하고
세계 각국어로 된 ’성모의 기사’를 발간하려는 포부를 안고 우선 일본으로 출발한다.
일본과 인도에서 선교하며 결실을 얻은 신부는 건강의 악화로 다시 귀국하게 되는데
마침내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 아우슈비츠 감옥에서 타인,
그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준 것이다.
죽음이란 보통의 죽음도 아닌 아사형이란 끔직한 것이었다.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귀한 사랑, 예수님의 가르침을 콜베 신부는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그의 숭고한 죽음은 지옥같은 아우슈비츠를 주님의 섭리가 지배하는 장소로 바꿔 주었으며
사랑으로 증오를 갚아주는 표양을 보였기에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의 편지에서
(O. Joachim Roman Bar, O.F.M. Conv., ed., Wybor Pism, Warszawa 1973, 41-42; 226)
사람들의 구원과 성화를 위한 사도적 열성
친행하는 형제여,
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현양하자고 그대에게 권고하려는 열의를 느끼며 한없는 기쁨을 맛보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무관심주의라는 시대적 유행병이 세속 사람들 사이에서뿐 아니라 수도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형태로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괴로운 마음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하신 분이므로,
비록 우리 자신이 인간적 나약성 때문에 그 분께 마땅한 영광을 드리기에 무능하겠지만,
부족한 우리 능력을 다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차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당신 피로써 구속해 주신 영혼들의 구원에서 가장 뚜렷이 빛나시는 것이므로
사도적 생활의 가장 높고 중요한 노력은 되도록 많은 영혼을 구원해 주고 성화시키는 일입니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
즉 하느님의 영광을 도모하고 영혼들을 성화하는 길에 대하여 몇 마디 말해 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신 분이시기에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하여 우리가 계속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히 알고 계시며
특히 지상에서 당신을 대리하는 장상들을 통하여 당신 뜻을 밝히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밝히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은 순명이요 또 순명 하나뿐입니다.
물론 장상이 오류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우리 자신이 순명함으로써 오류에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장상이 하느님의 법을 조금이라도 명백히 어기는 일을 명령하였을 때에 한해서
순명에도 예외가 인정되겠지만 이런 경우에도 신자가 하느님 뜻의 해석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홀로 무한하시고, 지극히 지혜로우시고,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인자하신 주님이시며, 우리의 아버지 이시고,
시작이요 마침이시며 지혜와 능력과 사랑 전부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 밖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과 관련되는 한 그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분 홀로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인간들의 구원자이시며 전 창조의 목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지상에서 당신을 대리하는 장상들을 통하여 흠숭해올 당신의 뜻을 밝히 드러내시며,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도 당신께로 이끄시며
더욱 완전한 애덕으로 당신과 결합시키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자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품위가 얼마나 존귀하게 되었는지 알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명으로써 허약한 한계를 초월하여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닮게 되고,
하느님께서 무한하신 당신의 지혜와 슬기로써 올바로 행동하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피조물도 저항 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우리 자신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욱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와 슬기의 길이요, 이것이 최고의 영광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만일 달리 더 합당한 길이 있었다면 분명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말씀과 모법으로 그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리스도의 긴긴 나자렛 생활을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로 요약 하였습니다.
나머지 생애도 순명의 표지로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으니,
여러 군데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준행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고 알려 줍니다.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합시다.
우리의 순명이 바로 이 완전한 사랑의 증거이어야 하겠습니다.
순명이 우리 자신의 뜻을 희생하라고 요구하더라도 순명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데에 진보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읽어야 할 더 고상한 책을 우리는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원죄 없으신 동정녀를 통하여 얻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성모 마리아에게 당신 자비의 분배를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함으로써 마치 성모님께서 하느님 손 안에서 그렇게 되셨듯이
우리도 성모님 손 안에서 하느님 자비의 도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의 지도를 받고,
성모님의 인도를 받아, 그분의 보호 밑에서 마음 놓고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성모님이 보살펴 주실 것이고,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며,
영육간의 모든 어려움 중에 성모님이 우리를 기꺼이 도와주실 것이며
어려움과 불안도 그분이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