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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스포는 2MB 애국심만큼)

송상희 |2008.08.21 02:17
조회 44 |추천 0

절도, 강도, 살인, 사기, 성범죄... 범죄의 대부분은 욕망을 채우고픈 충동을 이성으로 억누르지 못한 인간의 이기심에서 기인한다. 같은 동기로 범하는 행동은 비슷한 패턴을 지니게 마련이므로 원인과 결과를 예측하기도 쉽고 예방 또한 완벽하진 않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는 범죄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심은 크지 않은 편이다.

 

문제는 예측할 수 없는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소수의 인간들이다. 하나는 유영철 등으로 대표되는 사이코 패스에 의한 범죄고,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크게 와 닿지 않지만 9.11이나 각종 폭탄테러처럼 대상이(때론 목적조차) 불분명한 무차별 테러이다. 전자의 경우 채우려는 욕망이 일반적인 범죄자들과 너무나 다르고 후자는 욕망 따위는 가뿐히 넘어서는 맹목적인 신념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아 예측할 수도 없고 대상 또한 무차별적이다.

 

 

조커는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지닌 캐릭터이다. 그는 돈이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악행 자체를 즐길 뿐이며 인간의 목숨 따윈 그 유희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가히 배트맨 시리즈 최고(최악)의 악당이라 할만하다. 그의 모습은 '악한 심성을 가진 인간'을 넘어서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시험하며 즐거워하는 악마'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 조커가 지폐더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장면은 조커의 캐릭터를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만약 고담시가 1편처럼 어둡고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면 조커의 독특한 인격 또한 그런 환타지의 일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고담시의 모습은 본 얼티메이텀을 보는 것처럼 매우 현실적이고, 굵직한 사건들도 주로 대낮에 벌어지다 보니 평화로운 일상에 느닷없이 나타난 조커에게 느끼는 고담시민들의 공포가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미국 관객들은 조커가 방송국으로 보낸 인질을 촬영한 영상이 테러리스트가 촬영한 인질 처형 영상과 몹시도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더 몰입이 되었을 것이다.

 

조커라는 괴물에게 강한 설득력을 불어넣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히스 레저다. 잭 니콜슨의 장난기어린 조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히스 레저의 조커는 악마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강한 마성을 뿜어댄다. 그런 히스 레저의 연기에 더욱 강한 힘을 실어주는 건 선과 악, 공포에 관한 인간의 본성을 기분나쁠정도로 정확히 꿰뚫는 조커의 대사들이다. 단 1명의 조커가 3천만명이 사는 고담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는 설정은 이처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에 기초한 치밀한 시나리오로 인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이토록 강렬한 조커로 인해 정작 시리즈의 주인공인 배트맨의 존재감은 다소 위축되어 보인다. 이 영화는 수퍼히어로 배트맨을 위한 액션활극이라기보단 나름의 규칙을 가지고 일정하게 돌아가던 인간사회에 조커가 던진 엄청난 위기와 혼돈을 다양한 유형의 인간들이 각자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로 봐야 한다. 배트맨 또한 다양한 인간들 중 하나로 그려져 있는데 배트맨과 조커의 취조실 조우 장면은 배트맨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 역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뇌에 찬 인간일 뿐이지만 악당은 물론이고 시민들마저 등을 돌린 최악의 상황에서도 또다시 악과 맞서 싸우는 비장한 운명의 영웅에게 'Dark Knight'란 제목은 몹시도 잘 어울린다. 그 외에도 '하비 덴트'란 의외의 캐릭터가 주는 강렬한 파장이나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도 정당화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미국의 현실을 풍자하는 '루시어스 폭스'도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2시간 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블록버스터들과 비교한다면 액션장면은 의외로 소박(?)한 편이지만 끊임없이 묵직한 물음을 던지는 장면들이 팽팽한 긴장감과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을 동반하면서 스크린에서 눈과 귀를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폭탄이 설치된 두 대의 배에 탑승한 사람들이 갈등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과연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틀을 깨고 막나가는 악마의 영화가 될 것인지 여기서 멈출 것인지를 기다리는 과정이 말로 다할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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