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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조된 사도신경과 타락한 한국 기독교회의 순종과 촛불 비난

정현호 |2008.08.21 15:38
조회 143 |추천 2

아래 빌라도 판결 동영상을 먼저 봐주세요

짧습니다.

 http://play.pullbbang.com/577261.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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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성경책의 앞면을 보면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실려 있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 6장9~13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이지만

 

사도신경은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제하거나 더하여버리면

거룩한 성 즉,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말씀이자

천국으로 인도하는 나침반과 같다.

 

곧 성경이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것이요,

사람들의 말이 아닌 오직 성경 말씀으로

이단을 분별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도신경의 탄생

    
 

한국교회에서

주기도문과 함께 중요하게 생각하며 암송하는

사도신경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방교회와 동방교회 그리고 천주교와 개신교에서까지도

서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신경 공인본문이 형성된 것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사이로

이 시기 이전에는

공인 본문 형식의 신경(또는 신조)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다만 지방(특히 서방교회의)에 따라

각종 신앙고백문들이 예배 때 사용되어 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형태들 가운데 공통적인 부분들이 있었는데

그 공통부분들을 모으면 하나의 기도문 형태가 된다.

 

이견은 있지만,

학자들은 그 기도문의 원형을

250년에서 460년 사이에

로마교회 예배 때 두루 사용된 신조(이른바 소로마신조)라고 본다.

 

이 때 이미 이 신조는

12사도로부터 직접 유래되었으며,

베드로에 의해 로마로 전해졌다고 믿어졌다.

그렇지만 그 역사적 근거를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2세기 경에 세례식 때 사용되던 짧은 신앙고백문이 전승되었고,

이것이 서방교회에서 반전되면서 두루 전해져왔으며,

이것을 소로마신조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소로마신조의 원형이 되는 초기 형태의 신앙고백문은

당시 (싸이월드야 [ 시/발 ] 금칙어좀 없애라 무지 불편하다)

발흥하던 이단적인 견해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단의 거짓교리에 교회는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었다.

 

교회는 이단이 말하는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저 육체를 껍데기만 입고 오셨다면,

그의 고통도 헛것이고, 따라서 구원도 헛것이라 보았다.

 

아울러 기독교의 정통성은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가장 초기 형태의 사도신경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천지를 만드신,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땅속(고성소, 저승)으로 내려가시고,

공회,

영원히 사는 것’ 등과 같은 세세한 표현은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5~6세기 경

갈리아(아일랜드 포함)에서 만들어진 신조에서는

소로마신조에는 없던

‘천지를 만드신,

고난을 받으사,

죽으시고,

땅속(고성소, 저승)으로 내려가시고,

공회’ 등의 표현이 들어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표현들은

동방교회에서 사용되던 교리적 표현들이었다.

갈리아신조는

동방교회 신조로부터 이러한 풍부한 표현들을 배웠고,

그것이 오늘날 사용되던 신앙고백의 원형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이 점차 발전해,

카이사리우스 시대에 생겨난 대로마신조로

대체되었다는 사실만 확연하게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사도신경이다.

 

특히 루터와 칼빈이

교리문답서에 이것을 포함시킨 이후

교회는 사도신경을 중시하게 되었다.

사도신경은 어떠한 교리적 논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가

유대교나 이단종파와는 구분되는 종교라는 것을 밝히기 위한

자기정체성 확인 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사도신경의 문제점

 

신학적인 논쟁과 이단의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도신경이

마치 믿음의 규칙인양 사용되어

이단적 추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경인 성경을 두고서

어찌 사도신경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정통이 되고 이단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사도신경에는

비성서적인 내용이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도신경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성경적으로 살펴보자.

 

 

 

#1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 예수에게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손을 씻는 빌라도

이 부분은 예수의 수난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예수가 실제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며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려주고 있다.

 

장사했다는 표현 역시 그것을 강조한 말로

예수는 거짓으로 고통을 당한 체 하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빌라도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지만

실상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한 주체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인 장로들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이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1)”

 

 

마태복음 16장21절에 보면

이들에 의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목이 나온다.  

 

이뿐 아니다.

사도행전 2장22~23절의 베드로의 증언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법 없는 자의 손을 빌려

예수를 못 박아 죽였다는 말이 나온다.

 

 

사도행전 4장8~10절에는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52절에서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치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다.

 

 

빌라도는

26~36년 사이에 유다와 사마리아 땅을 다스리던 로마인 총독으로 그만이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인 예수를 처형하기 위해서는

빌라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빌라도는

예수를 왕이라 함을 묵인했고

죄가 없음을 세 번이나 말했다(눅 23장).

 

 

 

또한,

마태복음 27장24~25절에도

 

빌라도는

예수에게 무죄를 선언하고 물을 가져다가 손을 씻으며

 

“예수의 피에 대해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감당하라”고 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거늘(마 27:24~25)”

 

 

 

유대인들이 분명

예수의 피 값은

자기들과 자기 자손이 감당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예수가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자신들의 잘못을

빌라도에게 떠넘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고백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빌라도가 전혀 죄없다고는 할수가 없다.그역시 자신의 영달과 편의를 위하여 예수님의 목숨을 내어주는데 방관하였기에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을 부정한다면 아예 공범이라는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옮긴이 정현호)

 

 

 

 

#2 거룩한 공회    

    
▲스스로 거룩하다는 공회가

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했다.


먼저 거룩하다는 말은

구약에서는 하나님께만 쓰였고,

신약에서는 예수에게 적용된 표현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에 나오는 그 당시의 공회는

절대 거룩하지 않다. 

 

외려 그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장로들과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있는 곳이다.

 

마태복음 26장59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증거를 찾으매”라고 나온다.

 

즉, 이 공회는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거를 찾는 곳이며,

거짓 증인들이 모이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공회를 두고

어떻게 ‘거룩한 공회’라고 할 수 있는가.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마 27:1)”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거룩한 공회’는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는 곳이었으며,

예수를 결박해 총독에게 끌고 가려고 의논했던 곳이었다.

비단 예수만을 핍박하고 죽이고자 모인 공회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이 끌려간 곳(행 22:30)도 이 공회였다.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이 공회는 또한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행 23:12)”

음모한 자들이 속한 곳이었다.

 

어찌 예수를 핍박하고 사도들을 핍박한 곳이

거룩한 공회라 할 수 있으며,

성경적으로도 맞지 않는 내용을

매 주일 교회에서

믿음의 고백으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수의 천국복음을 믿지 않고,

참 진리가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며

거짓말을 지어내고 살인하는 곳이 바로 ‘공회’였으니,

이 공회를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외우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은

사실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려하는

부패한 가톨릭 우월주의 유대인들에 의해

아무 의문도 없이 지켜왔다는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한국교회가

성경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며,

사람이 만들어낸 말에 어느 정도 의지하는 지 알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이문제로 사도신경을 고민했었으나

거룩한 공회를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교회건물이나 인간단체로 보지 않고,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한 통전적인 믿음들의 모임이라고 스스로 암시하며 암송하였다.이제 제2차 종교개혁을 위해 완전히 성경적인 지침이 탄생할 시점이라 본다.-옮긴이 정현호)

 

 

빌라도의 보고서

    
 
이 보고서는

예수가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인간의 회개를 촉구하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며, 사역하던 당시에

유대지방에 파견돼 있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에 관해

로마황제에게 보낸 보고서로

현재 터키의 소피아사원에 소장되어 있다.

 

예수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로마의 역사가 ‘발레루스 파테르쿠러스’의 주석에 의한 원명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로 되어 있다.

 

역사가 ‘발레루스’는

자신이 유대지방에서 만난 나사렛 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 중 가장 특별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로마제국의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했으며,

예수는 놀라운 능력을 항상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고

그들의 삶에 깊은 애정을 기울였다고 기록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 의하면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출세와 호사스러운 생활을 위해서는

그들의 어머니라도 배신할 자들이었다.

또한, 폭동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은 거칠어서

예루살렘이 가장 다스리기 힘든 도시라고도 기록했다.

 

그러면서 가릴리지방에서 나타난 한 젊은 청년

즉, 예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의 법을

고귀한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30세 가량으로 보이는 청년 예수의 말은 지혜로웠고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은 아니었기에

빌라도는

예수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보호의 손길을 그에게 뻗쳐주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한 우리(로마)가 믿어왔던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가련한 저(빌라도)는

유대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세상의 표현대로 하면 운명의 도구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허용된 무제한의 자유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유대인들을 자극했으며,

예수의 지배세력에 대한 자극적인 말에 대한 항의가

날마다 총독청에 줄을 이어 들어왔다고 밝히고 있다.

 

빌라도는

또한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예루살렘에서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선지자로 불리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 두려움 따위의 유약한 감정을 모르는 빌라도 자신도

젊은 청년 예수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그를 존경의 눈으로 응시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고

그를 놓아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빌라도는 보고서 말미에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으며, ‘나사렛 예수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다’고 기록했다.

 

메시아를 그토록 기다리던 유대인의 눈에는

가시와 같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외려 로마총독 빌라도의 눈에는

비범한 자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로 보였던 것이다.

 

 

 

사도신경 대한 여러 의견    

    

비단 사도신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기독교인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 제기하는 것 중 하나가

위에서 말한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내용이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예수에 대한 이야기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에 앞서 예수의 죄의 유무를 두고

빌라도와 유대인들 간의 논쟁이 오가는 장면 또한 빠지지 않는다.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빌라도와 달리

유대인들은

차라리 민란을 꾸미고 살인을 한 바라바라 하는 죄수를

예수 대신 놓아주기를 원하는 장면이다.

 

어쩌면 기독교인이 아닌 자들도 알고 있는 이와 같은 사실을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기독교인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혹 알고 있다하더라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유전이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는 성경 말씀을 허투루 여겨서는 안 된다.    

 

그나마 요즘 들어

사도신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올바른 신앙관을 정립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그에 대한 많은 글들이 올라오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싶다.

 

사도신경의 비성경적인 부분에 대해 짚어주는 글들에는

또한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선물’이라는 한 네티즌은

‘본디오 빌라도를 다시 봐야겠다’고 말했으며,

 

'hae740420'라는 네티즌 또한

‘그동안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었군요. 당대 믿는다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백성들이 죽인 것이었군요. 지금이라도 알게 해주심 감사드려요. 잘못된 신앙 해온 것 회개드려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회개는 하는것인데 드린다니 참 기가 막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말세다.

회개란 무엇인가?

회개는 우리의 인본적 반성이 아닌다.

참된 회개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옮긴이 정현호)

 

 

또 한 네티즌은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곳을

이단이라고 가르치는 현 교회 목사님들이 보고 회개하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사도신경과 한국교회

 

분명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거룩한 공회’와 같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이 사도신경을 마치 진리라도 되는 것 마냥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 교회나 개인을

이단으로 몰고 가는 등

절대적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는 이 사도신경을

이단판별의 척도로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여기에서 또 하나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던진 올가미에 걸려드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도신경의 마지막에 있는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이라는 부분이다.

 

사도신경을 절대적 신앙고백으로 믿고

이를 하지 않는 곳을 향해 이단이라 손가락질하면서도

정작 사도신경에 기록된 대로 “영원히 산다”고 말하면

또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산다는 것은

성경에도 기록된 말씀으로

외려 사도신경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성경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또 이 ‘영원히 산다’라는 말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한국교회는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맹신적인 믿음과 확신이 없는 믿음은

세상으로부터 불신을 낳을 수밖에 없으며,

같은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성경에 근거한 확실한 믿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경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도신경을 아무런 의심 없이 무조건 믿고 시인한다는 것은

그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다.

 

좀 더 과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이 있던 공회를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사단, 마귀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지각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사도신경을

신앙고백으로 암송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살아있다면,

성경대로 가르치고 있다면

절대로 사도신경을

믿음의 척도로 이단의 척도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국교회가 되기 위해

모든 일을 성경적으로 생각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참고자료) 이종성 저, ‘대한기독교서회 현대신서 106’
기독교대백과사전 ‘이문기편 기독교문사 1998’

 

 

출처 http://blog.daum.net/gidskan07/5680828

 

이상 펌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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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정현호 본문

 

문제는 이런글을 올리면

역으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것이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도 생긴다는 거다.

 

사도신경을 외우고 안외우고는

교회시스템의 문제이지만

개인들의 당면한 절체절명의 문제는

바로 그 마음에

하나님을 바라보는가 아닌가이다.

 

난 이미 17년전부터 이문제를 고민했었지만

고리타분한 고신교회에서 같이 안 외울 수도 없고

(그것도 고신교회는 일동 기립해서 외운다..뭐 이건 좋다고 보지만...)

 

여튼 난 사도신경을 나름 분석해서

공회는 천상천하를 아우르는

주님에 대한 순종의 세력과 하나님의 보좌앞을 상상했고,

개신교가 빼먹은 부분은

나름 속으로  묵상했다.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않은 자,

예를들어 노아 홍수 이전에 몰살당한 사람들은

죽음이후에도 예수님을 만날수가 있고 구원받을수가 있다고 본다.

물론 나의 상상이다.

그곳은 시간의 개념이 없는곳이다.따라서 ...ㅎㅎㅎ

이거 풀면 또 이단시비하며 달려들게 뻔하므로

훗날을 기약한다.

 

참고로 나는 성경외에 어떤 경도 인정하지 않으니

이단태클 걸지 마시기를.

거시려면 제대로 걸어보시던가^^

가장 민감한 구원교리도 한번구원은 영원구원아니라고 했는데도 아무도 못덤비더만 ㅎㅎ

어찌 덤비겠어?

난 성경대로 말한거뿐인걸^^

하긴 그럼에도 달려들다가 개망신당하는 분들은 좀 있더군

 

보통 그런 태클 거시는 분들은 다 촛불을 비난하고

이명박장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이니 순종해야 한다는 개풀뜯어묵는 소리를 하시더군

 

그럼 하나 물어보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 이승만 대통령은

백범김구선생을 암살하고 친일파들과 손을 잡았으며

315부정선거에다가 깡패까지 동원해 학생들을 폭행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니?

그러다가 1960년 419학생봉기로 하야했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겠네?

세우시는것도 하나님 허무시는것도 하나님 맞잖어?

 

그리고 1997년 단군이래 최악의 참사인 IMF구제금융을 받아들인

우리의위대한 김뻥삼대통령도 장로님이신데

김뻥삼정부의 부정부패도 그럼 하나님의 뜻인가?

그렇게 따지면 세상 모든일이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어난다고 보고

하나님의 뜻 아닌게 어디있니?

 

개나소나 아무데나 [하나님의 뜻 ]운운 하지마라.심히 재수없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잡것들이 어디서 감히 하나님을 운운하냐?

 

[하나님의 뜻]을 아는것은 아주 쉽다.

 

1.하나님을 믿는다

2.예수님을 믿는다

3.성경을 나침반 삼고 등불 삼아 마음에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면 네 마음에 오시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다.

 

단 그것이 성경의 뜻과 어긋나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귀신을 받은거야

 

뭐 늘 귀신을 받어?

그럼 매일 성경을 보며 씻어,샤워 매일 하잖어^^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뜻을 채워.

밥도 매일 먹잖어 한번에 몰아서 밥먹으며 배터져 죽는다.

 

그러면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우리 능력으론 절대로 불가능한게 서서히 되어 간다

 

내 마음에 오신 그분은

제사보다 정의를 원하신다며 촛불을 들기를 원하시는데

이런 하나님의 뜻을 사탄이라고 비난하는 니들은

대체 어느나라 하나님을 믿는거니?

사탄교였니?

 

촛불비난하며 내 홈피에 명록이 남긴 무개념 기독교인들아

니들이 믿는건 하나님이 아니라 세뇌된 가짜 하나님 즉

물신적 암몬신을 믿는거야

니들이 믿는건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고 없을때

사탄의 회가 만들었던  송아지천사란 말이다.

하나님은 새로운 천국을 주시는 분이지

이세상에 물욕을 실현시켜주는 리모콘이 아니야

리모콘은 바로 사탄이지 ㅎㅎㅎ

 

교회개혁 필요하다 보시는 분 추천^^

 

이상 정현호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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