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Kahlo, Frida, 1907~1954]
요약
멕시코의 여류 화가.
국적 멕시코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멕시코시티 교외의 코요아칸
주요작품 《두 명의 프리다》(캔버스에 유채, 172×172㎝, 1939) 《내 마음 속의 디에고 자화상》(섬유판에 유채, 50×75㎝, 1943)
본문
1907년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출생하였다. 독일인인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 지도자인 자파의 부하들을 보살펴 준 것을 계기로 멕시코 청년공산당에 가입하여 죽을 때까지 골수 스탈린주의자였다.
7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1925년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이 사고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1939년 르누와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출품하여 파블로 R.피카소(Pablo Ruizy Pacasso)·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았으나 프리다 칼로 자신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며 정체성을 강하게 지켰다.
삶은 매우 연극적이었고 항상 여사제처럼 전통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하였으나 사회 관습에는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는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작품으로는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자화상이 많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세 번에 걸친 유산과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이는 고통스러운 재앙으로 받아들여져 《헨리포드 병원》(금속에 유채, 38×30.5㎝, 1932), 《나의 탄생》(캔버스에 유채, 173.5×173㎝, 1932), 《프리다와 유산》(종이에 리소그래피, 31.7×23.5㎝, 1932) 등과 같은 작품들로 형상화되었다. 이 작품에서 프리다 칼로의 모습은 탯줄과 줄 혹은 뿌리 같은 오브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친 사슴》(나무에 유채, 22.4×30㎝, 1946) 속의 그녀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book]
독특한 외양, 멕시코 전통 의상을 즐겨 입었던 프리다 칼로는 독창적인 그림과 강한 의지를 보여준 멕시코 여성 화가이다. 1925년 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하교 길에 탔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척추가 부러지고 골반이 부서지고 한쪽 발이 으깨지는 중상을 당한 프리다는 그날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9년 동안 서른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곧잘 배신을 당하거나 버림받는 굴곡의 삶을 살았다.
디에고 리베라의 세 번째 아내이자, 트로츠키의 연인. 헨리 포드와 넬슨 록펠러의 친구. 앙드레 브르통과 피카소, 뒤샹, 미로, 칸딘스키 등 당대의 수많은 사람들의 친구. 열렬한 스탈린주의자에 아스텍문화의 신성한 여사제, 페미니스트의 우상으로 기억되는 프리다. 이 책은 서른 한 점의 컬러도판과 함께 그녀의 일기와 편지, 지인들의 입을 통해 그녀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헤이든 헤레라가 쓴 이 전기는 2002년 미라맥스에서 영화화되어 제59회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소망한다, 고통을 품고, 망가진 척추로, 걷지도 못하고, 드넓은 길에서, 멀리 본다. 강철로 된 생명을 부지한다.”
서양 미술사의 두꺼운 책장을 뚫고 느닷없이 고개 들이민 괴물,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독창성과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 리베라와 트로츠키의 연인이자 열렬한 스탈린주의자에 아스텍 문화의 신성한 여사제였으며, 오늘날에는 페미니스트의 우상으로 자리 매김한 여인. 그리고 이 모든 미사여구를 초월하여 오직 자기 자신으로 남길 원했던 인간, 프리다 칼로. 그러나 이 같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에게 프리다 칼로(1907-1954)라는 이름은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 몇 종의 전기와 소설이 출간되었지만, 그녀는 기껏해야 조금 유별난 그림을 그렸던 멕시코 여성 화가 정도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여기에 약간의 지식이 더해지면 ‘장애인’에 ‘초현실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붙을 테고, 비교적 면식이 있다 하는 사람들에게도 ‘천재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정도로 여겨지기 일쑤다. 페미니즘 미술을 연구하는 쪽에서나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리다 칼로를 말하는 책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프리다 칼로 재단’이 인정한 정본(定本)인 헤이든 헤레라의 『프리다 칼로 Frida: A Biography of Frida Kahlo』(1983)가 새로이 소개된 사건은, 프리다를 미처 몰랐던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더 큰 감동을 안겨줌과 더불어, 몇몇 서유럽 남성 작가들에게만 편중되어 온 미술사 이해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함께 수록된 서른한 점의 엄선된 컬러 화보가 그녀의 작품 세계를 한층 깊이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Not Iconic But Human: 전설 아래 감춰진 진실
남편이기도 한 위대한 벽화가 디에고 리베라를 비롯해 ‘초현실주의의 아버지’ 앙드레 브르통과 피카소, 뒤샹, 미로, 칸딘스키, 록펠러와 포드, 트로츠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당대의 예술가들과 사상가, 유명인사들이 그녀의 그림과 그녀라는 인간에게 빠져들었다. 이 책의 저자 헤이든 헤레라 역시 프리다 칼로에게 반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저자의 가슴은 감동으로 차 있되, 시선은 곧고 냉정하며 그녀의 손은 정확하다. 헤레라의 치밀하고 섬세하며 절제된 필치가 그려 낸 프리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적’이다. 모든 뛰어난 전기가 그러하듯 이 책의 저자 또한 자신이 직접 인물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인물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게 만들었다. 치밀한 1차 사료 조사에 바탕하여 재구성해 내고 친구와 지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프리다는, 때로는 성난 늑대처럼 으르렁거리고 때로는 가슴 가득 화살을 맞은 사슴처럼 흐느낀다.
몇 개의 정의와 미사여구로 타인의 인생을 규정하기는 쉽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손쉬운 해결책의 유혹을 뿌리치고, 프리다를 둘러싼 전설을 들려주기보다는 그 속에 감춰진 진실에로 우리를 이끈다. 그녀의 눈에 비친 프리다 칼로는 명성과 인기에 무덤덤한 것처럼 굴었으나 실은 그것을 즐겼고, 남들 눈에 비치는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능했으나 손쓸 수 없는 고통과 시련 앞에 무너져 내린다. 헤이든 헤레라의 손에서 프리다 칼로는 더 이상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가 아닌, 복잡하고 모순된 내면을 지녔으며 나와 당신처럼 울고 웃는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시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궤적을 함께 더듬을 것이다. 틀을 깨부수고 뛰쳐나온 프리다는 생생하고 활기차며 자유롭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자유’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고통을 딛고 혁명을 넘어, 디에고와 途?
“두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나에게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면.”
“나의 평생소원은 단 세 가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7년간 프리다 칼로가 겪어온 삶은, 시쳇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것이었다. 멕시코 혁명의 한가운데에서 나고 자라 스스로를 혁명의 딸이라 여겼던 프리다는, 일곱 살 때 앓은 소아마비와 열여덟 살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흔과 정신적 ? 육체적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그녀는 일생 동안 서른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했으며 간절히 원했음에도 자기 아이를 갖지 못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고, 평생의 연인이자 정치적 동지가 될 디에고 리베라와는 결혼과 별거, 이혼, 재결합을 거듭했다. 디에고의 무절제한 바람기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언제까지고 그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정숙한 아내였던 것은 아니다. 프리다는 자유연애의 신봉자였으며 남녀의 구분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었고 망명한 혁명가 트로츠키?깊은 사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디에고에 대한 갈망으로 괴로워했다. 디에고와 함께 멕시코 청년 공산당에 입당해 열성적으로 활동했으며, 예술이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되길 바랐다.
사람들에게 그녀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혁명가에서부터 《보그Vogue》의 표지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중 무엇이 진실이었고 무엇이 거짓이었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모두가 프리다 칼로라는 개인이 지닌 여러 측면의 반영일 뿐이다. 저자 헤이든 헤레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모습들을 섣불리 걸러내지 않고 한자리에 펼쳐 보임으로써 ‘진짜 프리다’로 하여금 스스로 입을 열어 독자와 소통하게 만든다.
“나는 나의 작품이 평화와 자유를 위한 투쟁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내가 나의 그림에 아름답고 숭고한 이념을 불어넣을 수 없다면 그것은 내게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결코 예술이 이념에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출처
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400302&CategoryNumber=001001020004
[영화]
태그라인
삶이란 캔버스에 펼쳐진 열정
그들의 만남은 가장 큰 사건이자 최대의 축복이었다!
영화내용
1922년 멕시코. 남미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멕시코의 한 마을. 세상 모든 것이 흥미로운 탐구 대상으로만 보이던 사춘기 소녀시절, 버스와 전차가 부딪치며 일어난 인생의 첫 대형사고는 첫번째 사랑의 실연과 함께 그녀의 온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상처를 남겼다. 그 후 프리다는 침대에 누워 두 팔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고통 속에서 깁스를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년 후, 프리다는 성숙한 숙녀의 모습으로 당대 최고의 화가인 '디에고'를 찾아가 자신의 그림을 평가해달라고 요구한다. 직접 내려와서 보라는 당돌한 그녀의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낀 디에고는, 결국 프리다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로, 사랑하는 연인으로 마음의 정조를 약속한다.
불완전한 미모를 가진 여자라도 그녀만의 매력을 찾아낼 줄 아는 진정한 바람둥이 예술가와 성실한 사랑을 원하는 프리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디에고와의 결혼이 자기 인생의 두번째 대형사고이자 최대의 축복일 줄은.
"난 마지막 떠나는 날은 즐거웠으면 한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다. - 프리다"
제작노트
1983년부터 2003년까지, 한 세기를 뛰어넘은 노력의 결실
프리다의 영혼이 축복한 꿈의 작업.
1983년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책 [프리다]가 출판되었을 때, 프로듀서 낸시 하딘은 이 책을 들고 모든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라틴계 화가의 이야기를 영화화해 줄 스튜디오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꼬박 10년이 흐른 뒤, 화가 프리다가 재조명 되면서 프리다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름이 되었다. 이 무렵 그를 만난 셀마 헤이엑은 영화의 주연뿐 아니라 프로듀서를 자청한다. 알프레도 몰리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러쉬, 애슐리 쥬드 등 꿈의 캐스팅으로 무장한 헤이엑은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을 찾아가고, 시나리오는 물론 그녀의 철저함과 불굴의 의지에 반한 웨인스타인은 영화 에 투자, 제작을 결정한다. 곧 줄리 테이머를 감독으로 영입한 뒤 2001년 늦은 봄, 20여년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촬영은 프리다와 디에고가 살았던 1920년대 코요아칸과 가장 흡사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인 푸에블라에서 대부분 진행되었고, 멕시코 정부의 협조하에 국립 예비학교, 마제스틱 호텔, 디에고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교육부 청사 등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는 프리다의 생가는 멕시코 시티의 Churubusco 스튜디오에 집과 안마당을 똑같이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홍성진 영화 해설 ★★★★ (별4개 만점)
실존했던 멕시코 화가로서 현재도 그녀를 추종하는 많은 팬들이 있으며, 그림은 최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원작 을 바탕으로 멕시코 출신의 미녀 배우 셀마 헤이엑이 그녀의 인생을 연기하고 있다. 아카데미 분장, 음악상 등 2개 부문 수상. 2002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
영화는 10대부터 47세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세상을 뜨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불운이 많이 따랐던 그녀에 대해 항상 정력적이고 고집세며 독선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개방적이었고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였다. 또한 양성애자였으며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다. 18세의 나이에 프리다는 버스 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 수차례의 수술 후에도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술과 진통제에 쪄들게 되었고 육체적 고통과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림 속에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유명한 화가이자 오입쟁이같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떠들썩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술과 약물 중독이 그녀를 47세의 나이에 죽게 만든다. 영화는 그녀의 인생을 다루지만, 그러한 시기에 탄생한 그녀의 작품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셀마 헤이엑과 제니퍼 로페즈가 주인공 자리 물망에 올랐는데, 일자 눈썹 외에도 프리다의 두드러진 외모에 흡사한 셀마 헤이엑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녀는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이 영화에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녀는 프리다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자 눈썹처럼 보이게 자신의 눈썹을 짙게 좀 더 자라게 했다고 한다. 각본에는 일부 헤이엑의 남자 친구인 에드워드 노튼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는 까메오로 넬슨 록펠러 역할로 잠깐 나오기도 한다. 그외 애슐리 쥬드와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단역으로 우정 출연했다.
이 영화의 제작 기획이 있을 당시 MGM의 자회사인 UA(United Artists)에서도 동시에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영화 가 기획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연으로 약정됐던 제니퍼 로페즈가 다른 영화 때문에 떠나자 가 개봉된 시점에서도 먼 훗날을 기약하며 여전히 촬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의 반응은 호평 쪽이 우세하였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의 스티븐 헌터는 "끝도 없이 흥미롭다."라고 이 영화를 치켜세웠고, 뉴욕 옵저버의 렉스 리드 역시 "빈센트 미넬리가 빈센트 반 고흐의 심리적 혼란을 의 스크린에 접목시킨 이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영화"라며 칭찬했다. 또 USA 투데이의 클로디아 푸이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헤이엑 생애에 가장 뛰어난 연기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한 그녀의 열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라며 헤이엑의 연기를 칭찬했으며, 버라이어티지의 데보라 영 역시 "이글거리는 열정과 중심 역할로의 접근들을 통해 헤이엑은 칼로의 꺾을 수 없는 삶, 사랑, 그림에 대한 의지를 묘사하면서 그녀 자신이 칼로에 필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고 주연 배우인 헤이엑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실망한 반응을 나타낸 평론가 중 하나인 롤링 스톤의 피터 트라버스는 "공명(共鳴)할 수 있는 어떤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으면서 프리다 인생의 모든 중대한 사건마다 멈춰서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각본 때문에 절름발이가 된 듯..."하다며 미처 공감할 시간조차 주지않고 프리다의 일생을 모두 다루려했던 어리석음을 지적했고, 워싱턴 포스트의 데슨 호우 역시 "영화는 칼로를 다룬 영화 치고는 기가 막히게 단조롭다."라고 실망스런 반응을 보였다. 또 헐리우드 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난잡하고 잔인하도록 고통스런 인생을 정연하게 만듦으로써 이 영화는 뭔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라고 지적하는 등 대체로 살마 헤이엑의 연기와 열정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평탄하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인물의 일생을 담은 시나리오의 평이한 구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평론가들이 있었다.
리뷰
예술과 생을 합일시킨 전기 영화
필름 2.0 2003.11.16 / 장병원 기자
일대기적 전기 영화가 그렇듯 도 멕시코 여류 화가의 불꽃 같은 인생 중 결정적인 국면들을 요약 발췌한 '엑기스' 모음이다.
프리다 칼로(샐마 헤이엑)는 처녀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된다. 그에게 불구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그림이다. 멕시코의 벽화 화가 디에고 리베라(알프레드 몰리나)를 찾아가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프리다는 디에고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여성 편력이 심한 호색한 디에고를 돌보면서 그는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에 담긴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동료 예술가이자 동지였지만 남편으로는 친밀하지 않았던 디에고의 못 말리는 바람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는다. 동시에 프리다의 성치 않은 육체도 서서히 쇠잔해간다.
는 전형적인 전기 영화다. 전기 영화가 지녀야 할 요소를 완비했다는 뜻이다. 드라마틱한 생을 살았던 인물, 대중들의 인지도, 그의 생애와 밀접히 연관된 영화적인 요소(의 경우 그림과 음악) 등 모든 것이 매력적이다. 할리우드의 내로라 하는 여배우들이 왜 프리다 역을 탐냈는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전형적이라는 말은 전기 영화가 지니는 한계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대기적 전기 영화가 그렇듯 도 멕시코 여류 화가의 불꽃 같은 인생 중 결정적인 국면들을 요약 발췌한 '엑기스' 모음이다. 당연히 듬성듬성 빈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드라마틱하지만 깊이가 떨어지는 단점도 감수해야 한다. 굴곡진 프리다의 삶이 기구해 보일지언정 썩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그런 까닭이다. 혁명가-예술가-자연인으로서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에 쉽게 동화할 수 없는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유명 인사의 일생을 되새김질하는 3류 전기 영화가 되지 않기 위해 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을 밀착시킨다. 목수와 세트 화가, 미술품 복원사를 동원해 복원한 수십 장의 그림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현란한 색채와 음악의 향연도 압도적이다. 연극, 오페라, 뮤지컬 등 연행 장르에 두루 통달한 여성 감독 줄리 테이머는 다채로운 볼거리와 물결치는 음악으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만든다. 테이머는 특히 ‘평범하지 않은 인상을 주는 연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움직이는 그림, 인형극, 마네킹, 콜라주를 활용한 화면 연출은 단조롭게 흘러가기 십상인 전기의 형식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주의 깊게 디자인된 멕시코 가옥의 인테리어, 멕시코 전통 의상에 대한 프리다의 애착을 보여주는 의상들, 소품들도 그득하다. 이처럼 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부분 그의 그림과 연관돼 있다. 전기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예술과 생의 합일이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