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남자
오늘 그녀는 좀 이상했습니다.
잘 입지 않던 치마에 화장까지..
그리고 자주 이어지는 침묵..
하지만 어제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도 전화를 하지 않았던 게
내심 찔렸던 나는 차라리 그 침묵이 다행이다 싶어
이유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녀는 오히려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물었고,
나는 농담 삼아서 그녀가 싫어하는 장어구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먹으러 가자고 날 잡아 끌더니
싫은 표정하나 없이
장어구이를 한 점 두 점 먹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정말 이상하다는 걸 느낀 건
식사 후 카페에서 그녀가 커피대신 녹차를 시킬 때였습니다.
하루 종일 별말이 없던 그녀는
갑자기 우리에게 있었던 일들을 얼마나 기억하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같이 본 영화..
함께 다닌 장소들..
그러더니 갑자기 이 모든 걸 잊지 말아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곤 그동안 행복했었다며 일어나 버립니다.
오늘 그녀의 낯선 태도가 이별을 위한 준비였다는 걸..
난 그제 서야 깨닫습니다.
이별이 이렇게 갑자기 올 수도 있다는 걸..
난 정말 몰랐습니다.
그 여자
세수를 하다가 거울속의 나에게 말해봅니다.
'잘할 수 있지?
그래..
잘할 수 있을 거야.'
어젯밤 울어서 퉁퉁 부운 눈에
차갑게 얼린 녹차 티백을 얹어놓고 다시 한 번 더 다짐을 합니다.
'울지 말자.
울지는 말자.'
오늘은 우리가 헤어지는 날..
아니.. 내가 그 사람을 놓아주는 날입니다.
가슴엔 옛사랑을 담아놓고 입으로만 날 사랑한다던 그 사람
오랜 시간 자기만을 바라보던 나를
더 이상은 외면하기 힘들어서 날 받아주었던 그 사람
그런 그를 내가 놓아주는 날입니다.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그를 만나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내가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다던 그 사람의 걱정을 떠올리며 오늘은 녹차를 시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와의 잊지 못할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려 봅니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내겐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내 것일 수 없는 불완전한 행복일 뿐이었죠.
그래서 나는 이제 그를 이렇게 놓아줍니다.
그 사람이 나를 귀찮아하기 전에..
내가 지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