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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유주희 |2008.08.26 13:34
조회 71 |추천 0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온전하게 적확한 수사는 아니다. 있다가 사라진 게 아니다. 처음부터 없었다. 우리가 평소 듣고 보고 읽던 것들이 지금의 광장에선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김장훈이나 윤도현, 이승환 같은 주류 가수들이 드물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촛불 문화제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진압이 시작되고 광장 위에 힘이 넘쳐날 때 대중문화의 가수들은 사라졌다. 눈에 띄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았다. 광장에서 간간이 불리고 들리는 노래들은 대부분 과거로부터의 유산에 불과했다. 지금의 것이 아니다. 문제는 2008년 대중문화의 무기력이다. 광장에 대해 발언하려 하지 않는다. 광장에서 한 걸음 벗어나 극장을 가고 서점을 가고 TV를 켜면 비로소 거기 지금의 대중문화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점의 어떤 영화도 가요도 문학도 사상도 광장에서만큼은 무력하다. 찾아볼 수 없다. 작동하지 않는다. 그 기능이 정지해버린 것이다.

 

중요한 때 중요한 장소에는 늘 중요한 대중문화가 존재했다. 대중문화는 당대의 시대성을 대변했다. 또한 정치적 입장을 보다 유연한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게 도왔다. 쉬이 섞일 수 없는 것들을 모으고, 분열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대화하게 했다. 그렇게 대중문화 운동이 됐다. 이를테면 1968년의 프랑스가 그랬다. 그 해 2월 고다르와 브뉘엘을 위시한 누벨바그 영화인들의 행진은 당대의 저항정신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강력한 전조였다. 같은 해 5월 파리의 대학들은 일제히 봉기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극장에서 누벨바그 영화를 감상했으며 광장에서 돌을 들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 운동은 68혁명의 불온한 공기로부터 영향받은 시네아티스트들에 의해 태동했다. 요컨대, 거기에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반성과 회의가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 전후의 한국에서도 대중문화는 소극적이나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들국화, 시인과 촌장, 김현식, 부활, 시나위의 대표 곡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다. 최루탄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쓰러진 대학생의 책가방 안에도, 그 대학생에게 방망이질을 하던 전투경찰의 관물대 안에도 이문세의 음반이 있었다. 예전 광장에 대중문화가 있고 지금은 대중문화가 없어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정신을 폄하할 만큼 하찮다거나 예술인들의 결기가 희석됐다는 지적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2008년 광장에서 사라진 대중문화가 지금 세상의 구조적 실체를 드러낸다는 데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보수단체들은 지금의 소요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인 양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조갑제의 분석이 맞다. 현 정부는 이념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특성이다. 신자유쥬의와 신보수주의의 결정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자본'이다. 돈이다. 개방과 실용과 복지 축소, 경쟁력 강화, 공공 서비스 민영화 등 모든 정책의 기초에는 돈을 모든 것에 우선하려는 논리가 있다.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진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또한 돈 때문이다. 전부 돈에 먹혀서다. 영화는 1990년대 후반 대작열풍이 불면서 진작 거대자본에 휘둘려왔다. 영화계에 흘러들어온 외부의 거대자본은 공정하게 분배되기보다 일부에 의해 독식됐다.

음악에 있어서 싱어송라이터의 시대는 거의 막을 내렸다. 기획사가 모든 걸 통제한다. 기획사를 통하지 않은 가수는 데뷔하기 어렵다. 힘들게 음반을 내도 노래를 부를 무대가 없다. 자연히 들을 노래가 없다는 불평이 쏟아진다. 덕분에 철 지난 옛 노래의 리메이크가 늘었다.

문학 또한 다르지 않다. 당장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20대'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라. 첫 번 째 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책들이 출력될 것이다. .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메뉴얼로 가득하다. 그런 책들이 잘 팔린다. 의식의 문제에 우선해 시스템의 문제다. 돈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상황에 개별 예술가나 예술작품이 주류체제에 저항하기란 불가능하다. 자본 안에서 자본에 저항한다? 어불성설이다.

 

광장에 대중문화가 사라졌다.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도록 구조화됐기 때문이다. 시민의 삶도, 대중문화도 모두 자본에 먹혔다. 시민들은 자본을 실용의 이름으로 신봉하는 정부에 대항하고 있다. 체제에 대한 저항의지가 기본적으로 전제돼있다. 그러나 정작 체제의 정체에 대한 고민은 드물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어떤 목표를 공유하고 있는지에 대한 시민사회 내부의 확인이 지연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환기가 없다면 학습이 되지 않는다. 부자나라가 되면 시민 개인이 부자가 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혹은 부자가 되는 것이 행복의 최소조건이 되는 경제구조가 연장되는 이상, 소요와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지리멸렬한 대중문화 또한 그렇다.

 

 

글_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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