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만큼 사람 만나기가 쉬운 곳이없고
뉴욕만큼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운 곳이 없다는거
누구나가 알고 있지만 누구나가 직접 겪을수는 없는것.
어느 주말 밤, 습관처럼 주말밤 나들이를 나선 나와 Silvia.
자정이 다 되어가는 Meat Packing은 온갖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거리로 나선
수많은 관광객과 New Yorker들로 가득 차 있고
특별히 대단한 간판이 없어도 이미 어디로 갈지 무엇을 할지 결정한 듯한 재빠른 걸음들로
빽빽히 줄을 선채 움직이지 않는 옐로우 캡들이 울퉁 불퉁한 벽돌깔린 도로를 채우고 있고.
반짝 거리는 입술로 한껏 멋을 낸 Silvia와 나도 자연스레 그 무리속에 섞여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거라는 바보같은 기대감과
힘들게 보낸 일주일의 버거움을 날려버리려는 큰 웃음소리 만으로
우리의 주말밤은- 아름답고 즐겁다.
"지난번에 갔던 그 클럽은 지루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볼까?
걸어오면서 봤던 거기는 어때? 사람들 많겠지? "
그다지 넓지 않은 Meat Packing 의 왠만한 Club은 한번씩 순회를 한 Silvia와 나라서
오늘은 Bar에서 조금 취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방향을 돌려 우선 거리를 걷는다.
이미 문을 닫은채 환한 Display 불빛만을 밝혀놓은 상점들
지나치게 Vivid 하지 않은 네온사인들, 바라보는 것만으로 시야가 즐거운
사람들의 각양 각색 Outfit들.술렁임.북적임.그리고 소음소음.
그러나 이내 우리는 한 상점앞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한 커플을 본다.
11시 45분. 심각해 보이는 두 사람, 남자는 앉아있고 여자는 벽에 기대선채 남자를 내려본다.
시선을 맞추지 않는 두 사람.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앞을 깔깔 대고 웃는
나와 Silvia가 지나친다. 마치 꾸며놓은 듯한 드라마의 한장면 같다.
코너를 돌아 반블럭쯤 걷다 하이힐이 버거워 멈춰선 Silvia는
행선지를 정하고 움직이자며 머리를 매만진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면 재미있을까.
순간 우리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 아까 상점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금발머리의 여자다
몇발자욱 걷는 구두소리가 딸깍 대더니 이내 벽에 기대서서 울음을 터뜨린다.
잔뜩 얼굴을 찡그린채 눈물을 훔치는 그녀. 타코이즈 컬러의 드레스가 유난히 눈에 띈다.
우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탓이었을까- 공공장소에서 청승맞게 눈물을 흘릴때마다
꼭 한명 두명씩 지나치는 사람들의 위로와 Hug까지 받는일이 부지기 수인 나로서는
흐느끼며 우는 그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가 서고 말았다. 왜 그래.왜.울어.무슨일이야.
흘러내리는 눈물에 검은 마스카라가 번져버린 얼굴로 그녀는 아무런 의구심도 없이
대답을 하며 끊임없이 눈물을 흘린다.
" 지금 방금 남자친구와 헤어졌어.6년동안 만났던 약혼자와 헤어지고 만나기 시작한
사람인데.9개월 정도 함께 일하다가 얼마전부터 사귀기 시작했는데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대"
예전 약혼자에게는 돌아갈수 없고.잘못이 있으면 고치겠다고 말했지만 듣지 않는 남자친구는
완고하게 그녀에게 안녕을 고했고. 함께 살고 있는 집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려댄다.
누구나가 그렇게 했을테지만- Silvia와 나는 그녀편을 들고 잔인한 남자친구를 비난하며
그녀를 깊게 안아준다. 품에 안겨우는 그녀는 흐느낌은 없으나 자꾸만 눈물을 흘린다. 가슴이.아프다.
이내 시작되는 세명의 대화. 미국인도 아닌 우리가 불쑥 거리에서 위로를 건네주어 놀랐는지
어디서 왔으며 무슨일을 하냐며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들을 한다. 약간 안정이 되가는 걸까.
그러더니 이내 그녀가 함께 술한잔 할것을 권유한다. 별로 놀랄일도 아니다. 심야의 Meat Packing
낯선이와 인사를 하고 뜬금없는 대화를 하고 술 한잔 하는일- 오히려 기대했던 바가 아닐수 없다.
그녀의 앞장으로 북적이는 Bar를 찾아 세명 나란히 Cosmopolitan을 주문한다.
"it's on me, girls" 보답으로 술을 사는 그녀. 세명은 눈을 맞추며 Cheers를 외치고
그녀를 위해 Cheers를 한다. 바로 15분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그녀를 위해.
소음과 음악소리로 가득한 Bar안에서 세명은 부담스럽지 않은 어색함과
조금만 흔들려도 넘쳐흘러 버릴것 같은 아슬아슬한 Cosmo 잔을 움켜 쥐고
15분 전과는 전혀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녀는 Designer 라고 했다.
역시 반짝이는 그녀의 드레스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Fashion Person 이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그녀는 가야할곳이 있다고 말한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기전 함께 갔던 Bar에
신용카드를 Open 한채 두고왔다고.마지막 술값까지 자기가 지불했다며 거친 단어를 내 뱉더니
장소를 옮기자고 한다. 오늘 그녀 덕분에 몰랐던 Bar를 두곳이나 가게 되는거다.내심 즐겁다.우리는.
휘청이는 그녀를 부축하고 찾은 곳은 Meat Packing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지만
숨겨진듯 구석쪽에 자리하고 있어 아는 사람만 찾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일반적인 Bar 였다.
한참 절정으로 오르는듯 사람들의 물결로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람들과 부딪히기 시작한다.
흘끔대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어쩌면 모두의 목적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겨우 자리를 잡고 한숨을 돌리려는데 Carolline이 또 한잔 술을 사겠다고 한다.
내일 아침 일어나 신용카드의 영수증을 보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순간일텐데.
이미 눈동자가 풀릴대로 풀려 알코올에 취해있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워
나와 Silvia는 그녀를 막고 대신 술값을 지불한다. 또한잔의 칵테일.이번에도 Cosmo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멀리서 눈웃음을 보내는 금발머리에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
이내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는 사람. 앳된 얼굴. 언제나 그렇듯 Hi로 시작된 이런곳에서의 대화란
정말 뻔하고 뻔할뿐이지만 Cosmo 기운을 빌려 나도 인사를 건넨다. 성명교환.호구조사.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힐끗 옆을 보니 Silvia도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다. 사실 대화를 하는 사람의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이 무슨생각으로 말을 거는지. 움직이는 눈동자만 봐도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이제는 알만한 우리라서
적당히 반응을 섞어 부드럽게 대화를 하는 일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Carolline- 나와 Silvia 사이에 앉아 혼자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 가능한 질의응답은 이미 끝냈고. 헤어진 남자친구의 직업이며 나쁜 습관까지 다 들었으니
어쩌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주제가 없다. 그리고 이미 취할대로 취해버린 그녀라
Silvia와 나는 눈짓을 서로에게 건네며 그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괜찮을지 모르겠네.그녀가- 하며.
잠시후 혼자가 되버렸음을 인식한 그녀가 주섬 주섬 클러치백을 움켜쥐고 신용카드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나려 휘청댄다. 얼른 그녀를 잡아준다. 다시 나를 보고 웃는 그녀. 굳어버린 마스카라 자국이 안쓰럽다.
" Thank you guys, thank you so much.it was really nice meeting you guys "
굳이 전화번호를 주고 받으며 다시 만날 일을 기약하지 않아도 좋고 또 어쩌면 그럴필요도 없다.
우리는 늦은 밤, Meat Packing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두잔의 Cosmo 를 함께 마신 사람들일 뿐이니까.
친구가 되자는 부담스러운 권유나 언제쯤 다시 만나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할 이유도 없다
그저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면 되는것. 그게 바로 사람들이 New York에서 누릴수 있는 특권같은 거니까.
- 너는 금방 괜찮아 질거야. 더 좋은 사람만나서 더 사랑받으려고 이러는 거니까 너무 속상해 하지마.
마지막까지 깊고 길게 Hug를 나누는 그녀와 우리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죽마고우 같이 보일꺼다. 남들에게는.
불안스러운 하이힐위로 흔들거리는 그녀 모습이 안쓰러워 택시를 잡아주려 했으나 이미
성큼대며 걸어나가는 그녀에게 우리는 끝까지 손만 흔들어 주기로 한다. 아까 정리 되지 않은 그녀 지갑속에 있었던
남자친구의 사진이 문득 기억난다. 쉽고 간단한 헤어짐이란 없겠지만 사진속에서 유난히 행복해 보였던
그녀와 남자친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취한 그녀를 위해 카드를 지갑속에 넣어주다 우연히 봤을 뿐인데.
친구들 사이에도 아무렇지 않게 i love you로 인사를 하고
좋아하는 모든것들에게 love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는 이곳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사랑은 그렇게 쉬운게 아니겠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았듯이
이들에게도 i love you 라는 말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참으로 길며
사귐을 시작하고 함께 살 결심을 하고 또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익혀가고 알아가고
실망해 가는 과정은 우리와 그렇게 다르지 않겠지.
그녀를 보내고 한참동안 그녀 뒷모습을 바라보던 Silvia 와 나는
기다렸다는 듯 서로에게 시선을 맞추고 활짝 웃으며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다 알고있다는 표정으로
남은 Cosmopolitan의 잔을 높이들고 다시한번 Cheers 를 한다.
이 때쯤이면 잊지 않고 Silvia가 건네는 말이 있음을 나도 알고 그녀도 알고있다.
나는 눈짓으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sign을 보낸다. 얼른 해. 그말.해야지. 지금쯤이면.
그리고 그녀가 말한다.
" Geenie, we love New York, righ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