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형 제품으로 승부하라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
빌 게이츠는 포커판에서 정보 수집의 중요성을 익혔다. 상대가 어떤 패를 들고 있고, 누가 과감한 베팅을 하며, 연막술을 치는 친구는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그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포커판의 정보는 바로 게이츠의 머리 속에 내장된 컴퓨터에서 온라인 시스템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컴퓨터적인 시스템이야말로 정보 수집에는 아주 적격이었던 것이다.
"포커판에서 상대방의 여러 정보들을 종합할 줄 알았기 때문에 나 자신의 전략, 즉 베팅의 액수를 정하는 데 자신이 있었습니다. 포커에서 딴 돈과 거기서 얻은 전략수립의 경험이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게이츠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빌 게이츠는 1975 년 여름, 친구 폴 앨런과 함께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에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하였다. 지분은 60대 40의 비율로 게이츠가 많이 가지기로 하였다. 이것은 베이직 개발에 게이츠가 더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게이츠는 19세였으며, 앨런은 21세였다. 그들 두 사람 이외에 단 3명의 직원이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곧 MITS사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1만 6천 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베이직 프로그램의 로열티로 대강 30달러를 받았다. 게이츠는 계약금으로 받은 돈으로 우선 기술 전문 잡지 광고비에 사용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이것이 없다면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것이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광고 카피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한 이듬해인 1976 년 게이츠는 아예 다니던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본격적인 사업가로 나섰다.
그러나 베이직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게이츠는 난관에 부딪쳤다. 프로그램의 호응도는 매우 높았으나, 매상은 형편없이 낮았다. 소프트웨어의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기 위해 무수한 해적판이 시중에 나돌았던 것이다.
그는 화가 났다. 그래서 그는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드리는 공개 서한'을 각계 각층에 보냈다.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여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보람찬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한 자본을 축적할 수 있도록 제발 해적행위만은 중지해 주십시오.'
그러나 이러한 게이츠의 호소는 애호가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들은 프로그램을 애용은 하지만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보다 공짜로 사용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저작권 보호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게이츠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미국의 컴퓨터 회사들이 많은 매상을 올릴 때,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창업 이후 1979 년까지 매상의 거의 절반을 미국이 아닌 일본에서 벌어들였다. 1978 년 우연한 기회에 니즈 가즈히코란 젊은이와 베이직에 대한 동아시아 독점 배급권 계약을 맺었는데, 그의 활발한 사업 전개로 당초 예상보다 무려 10배가 넘는 1억 5천만 달러 이상 거래를 하게 된 것이었다.
1979 년 1월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앨버커키에서 게이츠의 고향인 시애틀 교외로 이전하였다. 이때부터 소프트웨어 업계에 게이츠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일거리들도 많이 들어왔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낀 게이츠는 하버드 대학 시절 친구인 스티브 볼머를 마이크로소프트사로 끌어들였다. 당시 직원은 30명이나 되었는데도 인력이 모자랐다.
"지금 당장 50명은 더 필요해."
스티브가 게이츠에게 인력을 보충해 달라고 말했다.
"절대로 안 돼!"
게이츠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는 가급적이면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려고 했다. 사업이 잘 된다고 무리하게 확장을 하다가 망한 회사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이츠를 가장 불안하게 한 것은 다른 회사가 달려들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시장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당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작은 기업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걱정은 대기업이 자기 회사에서 만든 대형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프로세서에 토대를 둔 소형 컴퓨터용으로 수정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IBM과 같은 대형 컴퓨터 회사들은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기업은 자기 회사의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성공은 별로 좋은 스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공은 똑똑한 사람에게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성공에 자만하는 사람은 곧 자신의 사업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많습니다."
게이츠의 성공철학이다.
이처럼 게이츠는 자기 스스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가장 큰 위기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도 설립 이후 성장일변도를 걸어온 벤처기업이었지만, 1980 년이 되자 사운이 걸린 아주 중요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날 게이츠를 '세계 최고의 거부'로 만들어준 IBM과의 계약이 바로 그 사건이었다. 그는 이때야말로 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하였다.
게이츠는 IBM과 같은 대규모의 컴퓨터회사와 손을 잡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못 계약을 하면 영원한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미 게이츠는 그전부터 계산해 놓은 것이 있었다. 그는 1970 년대 말에 벌어진 비디오의 표준형식을 둘러싼 VHS 방식과 베타 방식의 싸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베타 방식이 기술적인 면에서는 VHS 방식을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베타 테이프는 1시간을 녹화할 수 있었던 데 반하여 VHS 테이프는 3시간까지 녹화가 가능하였다. 소비자는 전문 엔지니어가 작성한 제품 설명서보다 테이프의 녹화시간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1시간 가지고는 영화든 축구경기든 녹화하기에 모자랐던 것이다. 더구나 VHS 방식을 개발한 회사는 다른 비디오 제조업체들이 아주 낮은 사용료만 내고도 그 방식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자 VHS와 호환성을 갖는 비디오가 늘어나면서 대여점에서도 베타보다는 VHS 테이프를 더 많이 갖다 놓게 되었다. 결국 나중에는 베타 테이프가 시장에서 사라지고 VHS가 표준방식으로 정착하였다.
게이츠는 이러한 시장의 원리를 꿰뚫고 있었다. 포커판에서의 베팅 원리와 다르지 않았다.
1980 년 7월 IBM에서는 컴퓨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하청업체로 게이츠가 운영하는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선정하면서, 일정액을 지불하고 그 소유권을 넘겨받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IBM이 제시한 금액은 마이크로소프트사로 볼 때 거액이었다. 당면한 자금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고, 사업 확장의 자금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계약석상에 나간 게이츠는 차이나 스타일의 컬러가 느슨한 옷을 입고 있었고, IBM 측 사람들은 반듯한 넥타이의 정장 차림이었다. 어떻게 보면 철모르는 젊은이와 노련한 사업가가 계약을 하는 자리로 보였다.
그러나 게이츠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이 계약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소프트웨어의 미래를 점치고 있었으며, IBM이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가 될 것이라는 것도 예측하고 있었다. 따라서 개인용 컴퓨터는 앞으로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제시한 조건에 만족하십니까?"
당시 IBM 측에서 대표로 나온 스티브 밸머 부사장이 물었다. 그러나 그때 게이츠는 다른 조건을 제시하였다.
"아주 낮은 사용료를 한 번만 지불하면 향후 IBM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계를 자사 제품에 얼마든지 이용할 권리를 드리겠습니다."
IBM 측에서 볼 때 그것은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이 소프트웨어 사용권을 얻어낸 것이었다.
"좋습니다. 계약합시다."
IBM 부사장 스티브 밸머는 선뜻 계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시 그는 게이츠를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업가로 낮게 보았던 것이다.
"스티브 씨! 믿어주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한 후 게이츠가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말이었다.
이 계약은 석 달 안에 IBM이 만드는 개인용 컴퓨터에 적합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낸다는 조건하에 성립된 것이다. 이 계약이 마이크로소프트사에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게이츠 한 사람 뿐이었다.
게이츠의 계산은 단 한 가지, IBM이 PC를 잘 만들어 싼값에 공급함으로써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널리 세상에 알릴 수 있게 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하였다.
첫째, 소프트웨어의 품질로 승부한다.
둘째,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기본으로 한 다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돕는다.
셋째,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싸게 책정한다.
이러한 전략을 가지고 게이츠는 MS-DOS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런데 당시 납품 기간이 촉박하였다. 그는 먼저 시애틀의 한 회사에서 초기 개발단계에 있던 소프트웨어를 싼값에 사들이고 그 회사의 선임 엔지니어였던 팀 패터슨을 영입하였다. 이 개발단계의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수정의 수정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MS-DOS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IBM은 곧 이 MS-DOS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PC의 개발을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1981 년 8월 12일, 뉴욕의 윌도프 아스초리아 호텔에서는 IBM PC 설명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 설명회는 대단한 호응을 얻었으며, 출시 첫해에 20만 명의 사람들이 컴퓨터를 구입하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IBM으로부터 MS-DOS의 기본 사용료에 대한 로열티로 20만 달러를 받았다.
게이츠의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IBM은 거의 헐값의 사용료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MS-DOS를 싼값에 판매할 수 있었다. 즉 UCSD 파스칼 P-시스템을 4백 50달러에, CP/M-86을 1백 75달러에 판매한데 반하여 MS-DOS는 불과 60달러에 판매를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목표는 IBM으로부터 직접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IBM PC와 크든 작든 호환성을 갖는 컴퓨터를 만들고자 하는 업체로부터 MS-DOS 사용료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이츠는 IBM의 경우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소프트웨어를 거의 공짜로 쓸 수 있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성능이 향상된 새로운 버전에 대해서는 아무런 독점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계약서에 명기하였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버전업이 될 때마다 개인용 컴퓨터 산업의 밑바탕이 되는 소프트웨어로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IBM PC의 인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전 세계로 시장이 확대되면 확대될수록 게이츠는 갈퀴로 돈을 긁어모았다.
게이츠의 베팅은 성공을 거두었다. MS-DOS는 IBM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의 개인용 컴퓨터에도 표준으로 사용되었으며, 개인용 PC 시장이 전세계로 확장되면서 어마어마한 로열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게이츠에게는 뜻하지 않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3 년 동업자인 앨런이 호지킨병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 것이었다. 이후부터 게이츠는 혼자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이끌어가야만 했다.
앨런이 떠난 후 게이츠는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하여 배달된 피자와 커피를 마시면서 밤늦게까지 일에만 파묻혔다. 소프트웨어의 수명은 매우 짧기 때문에 보다 발전된 버전을 내놓아야 했고, 정보를 도둑질하는 해커들이 많아 늘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게이츠의 노력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초스피드로 성장하였다. 1981 년 이 회사의 매출을 1천 6백만 달러였으며, 1984 년에는 9천 7백만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다.
'모든 책상 위에 컴퓨터를, 모든 컴퓨터 안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소프트웨어를!'
이것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슬로건이었다.
게이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개발했지만 까다로운 문자로 작동하는 MS-DOS 대신 그림으로 작동할 수 있는 차세대 운영 체제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윈도우 3.0이다. 이 제품은 1990 년을 기점으로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넘어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종관계는 무너졌으며, 게이츠는 오히려 하드웨어 생산업체들에게 자신이 설정한 표준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위치로 올라서게 되었다.
윈도우의 이 같은 성공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매출은 1988 년 5억 9천만 달러에서 1990 년에는 무려 1조 1천 8백만 달러로 급증하였다.
게이츠는 계속해서 사업 영역을 확대하여 신규 사업을 펼쳐나갔다. 1995 년에는 윈도우95의 출시와 함께 인터넷 접속 사업에 뛰어 들었다. 1996 년 초에는 NBC와 공동으로 MS-NBC라는 방송사업을 시작하는 등 그는 연평균 42.4%의 매출 신장을 보이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1996 년 게이츠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무려 1백 80억 달러에 육박하였다.
아무리 좋은 제품도 대중이 선호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대중성을 확보한 제품만이 시장 쟁탈전에서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값이 싸고 사용이 편리해야 한다. 그래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은 누가 더 값싸고 편리한 제품을 만드는가에 경주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중국 초(초나라 초)나라 장왕은 백성들에게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낮은 수레를 높이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왕명에 따르지 않았다. 그때 재상 손숙오(자손 손, 어릴 숙, 거만할 오)가 말하기를 '수레를 높이기 전에 먼저 문지방부터 높여야 합니다'라고 했다. 왜냐하면 수레를 타는 사람들은 걷기를 싫어하여 문지방에 수레를 대고 나서야 집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왕이 백성들에게 문지방을 높이라고 명령했다. 사람들이 왕명에 따라 문지방을 높이고 나니 자연스럽게 높은 수레가 이용되었다.
여기서 '문지방'은 기본, 즉 '표준'을 의미한다. 표준을 정해놓으면 그에 준하여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된다. 빌 게이츠가 MS-DOS를 모든 컴퓨터의 표준이 되도록 만든 것은 일단 그 표준만 정해지면 따로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선전하지 않더라도 컴퓨터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그것을 표준형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초나라의 재상 손숙오와 같은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에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기본으로 깔게 하였으며, 그로 인한 로열티로 세계적인 거부가 될 수 있었다.
길이 없으면 자동차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길을 훤하게 닦아놓으면 자동차는 필수품이 된다. '무용지물'과 '필수품'의 사이에 '길'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아이디어는 길을 먼저 닦고 나서 자동차를 만든다는 데 있다.
빌 게이츠는 개인용 컴퓨터에 자신이 개발한 MS-DOS로 표준형의 길을 닦아놓은 후에 소프트웨어의 버전업을 통하여 계속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였다. 이미 표준형을 깔아놓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버전업이 될 때마다 사람들은 그것을 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처음에 길을 닦는다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자금과 인력 또한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길을 닦아놓고 나면 그때부터는 좀더 발전된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의 자동차를 개발하기만 하면, 판매는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빌 게이츠는 '길'과 '자동차'의 원리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아이디어를 개발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