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상념의 젖어 있을때가 있다. 그럴땐 키스자렛의 Koln consert를 꺼내 듣고 싶은 욕구에 휩쌓인다. 뭐랄까, 그의 연주는 어떤 틀안에서의 자유자체를 거부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영역까지 득달같이 달려간후 소멸해 버리는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우리네들의 상념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상념을 그의 선율에 맞겨버릴때면 묘한 벅차오름이 솟아 오르고 마는 것이다.
1945년 생인 키스자렛은 어릴적부터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다. 시작은 클래식 피아노였으나 10대 중반이 되면서 재즈에 매력에 눈을 떴다고 한다. 20대가 된 키스자렛은 아트블래키재즈메신져에 들어가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지만 하드밥스타일의 아트블래키재즈메신져와 궁합이 좋을리 없었다. 키스자렛에게는 재즈라는 큰 틀안에서의 자유조차 답답했었나 보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것은 ECM 소속사에 들어가면서 부터 였다. 이후 그는 솔로앨범을 내고 솔로 콘서트를 열어 좋은 반응을 일으켜 냈다. Koln Consert는 솔로 연주에서 가장 물이 오른 75년경 5회에 걸쳐 행해진 콘서트 중에서 서독 라인 지방 퀼른에서의 공연을 앨범화 한것이다.
나는 재즈를 즐긴다고 수줍게 말할 수준은 가능하나 어디가서 누구앞에서 쉽사리 아는척을 내보일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타인에게 앨범을 추천해주는 것또한 부끄러운 일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스자렛의 이 콘서트는 재즈에 관심있어하는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러움 없이 추천해 줄수가 있다. 내가 느끼기의 그의 연주는 음악으로 형상화 되어진 완성품이라기 보다는 완성품으로 향하는 과정 자체이다. 우리의 삶도 어떤 완성의 이어짐이라기 보다는 불완전함의 중첩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만큼 솔직한 연주를 하는 뮤지션을 아직 찾지 못했다.
피아노 연주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음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딱딱 끊어지는 특성이 있다. 그것은 불리함이라기 보다는 고유의 특성일 것이다. 또한 양손에서 독자적인 연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채로운 연주가 가능하다. 키스자렛은 이러한 피아노의 특성을 독자적인 장점으로 구축했다. 양손의 자유로움은 아름다운 불합리함을 표현하고, 맺고 끊음의 자연스러움은 삶의 불완전한 편린을 이어 묶는다.
격렬함과 잦아듬, 즐거움과 불편함, 환함과 어두움, 뚜렷함과 혼돈, 급박함과 나긋함, 긴장과 이완,
갖갖이 상반된 감정들이 뒤엉켜 창조한 선율속에서 나는 우리의 삶과 나 자신을 발견한다. 부조화속에서 피어오르는 조화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어떤 완성품보다 견고함과 정밀함을 자랑하는 것이다. 또한 건반의 누름 자체는 탄생과 죽음, 그리고 우리네들의 관계를 떠오르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 서로 다른 이들과 뒤엉켜 세상을 일구어내는 모습이 우리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마지막 건반을 누르기 직전까지 표현되어지는 모든 음들, 스스로에 감정에 이기지 못하여 내뱉는 신음, 우연의 노고끝에 피어나는 꿈결같은 멜로디들의 향연이 그의 몸으로부터 표현되어 진다. 우리는 단지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있다가 그가 마지막 건반을 누르는 순간에 꿈에서 깨어나면 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