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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협정 위반건수

최성구 |2008.09.06 16:31
조회 56 |추천 0

 휴전협정 위반건수

"남측은 1998.6월까지 북측의 휴전협정 위반건수가 42만4,356건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북측은 남측이 더 많이 위반했다고 한다. 1991년까지 45만4,605건이었다고 한다". 전교조는 이러한 통계를 들어 남북이 피장파장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한동안 휴전선에서는 병사들의 기 싸움이 속됐다.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 해코지를 하면 상대방도 이에 질세라 보복을 했다. 이러한 건수는 아무리 많아야 서로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 휴전선에서 투덕거리는 이러한 작은 사건들은 피장파장일 수 있다. 하지만 전교조가 이런 통계를 내세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큰 사건을 숨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1996.9.18일 강릉에 북한 해군 대좌를 포함해 26명을 태운 중급 잠수함이 강릉에 침투했다. 58일간 매일 7만명 규모의 대군이 투입된 엄청난 사건이다. 이런 위반을 남한이 북에 대한 한 적이 있는가? 1998년 7.22일 속초 앞 바다에서 북한 잠수함이 어망에 걸렸다. 1998년 11월 북한 고속간첩선, 서해안 강화도 부근 출현 후 도주했 다. 1998년 12월 남해안 에 침투 북한 고속 반잠수정 1척이 격침됐다. 1999년 06월 사상 최대의 함정간 교전이 서해에 있었다. 2001년 6월, 북한 상선들이 잇따라 영해를 유린했고, 2002년 6월 29일 북한 함정은 피식 피식 웃으면서 우리 함정에 기습 테러를 감행했다. 좀 더 거슬러 가보자. 1968년 01월 21일, 김신조가 이끄는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기습하려 내려했다. 1968년 01월 23일,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납치하여 승무원 83명중 1명을 사살했다. 1968년 10월, 울진·삼척에 130명의 대규모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주민을 살해했다. 이어서 강원·경상도 일대의 산간부락을 점거하여 혁명 기지화 할 목적으로 10.30∼11.2.동안 무장간첩 120명을 3회에 걸쳐 침투시켜 당시 9세인 이승복 등 민간인 23명을 살해했다. 전교조는 이승복 살해 사건을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이승복도 사살된 23명 중 한 사람이다. 이 승복은 단지 "나는 공산주의가 싫어요"라는 한 마디 때문에 반공교육의 표상이 됐다. 이승복 사건이 조작이라면 나머지 23명의 죽음도 조작이란 말인가? 1969년 04월, EC 121 미 정찰기를 격추하여 미군 31명이 사망했다. 1969년 06월 서해안 흑산도에 침투한 무장간첩이 국민 15명을 살해했고 1969년 07월,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에서 미군 병사 4명을 살해했다. 1969년 12월, KAL YS-11 여객기를 납북시켜 승객 및 승무원 51명 납치했다. 1970.6.22. 동작동 국립묘지에 6.25에 국립현충원을 참배하는 대통령과 정부요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침투한 북한 간첩 3명이, 현충원 내 현충문 지붕에 폭발물 을 설치하다가 조작 실수로 폭발하여 간첩 1명이 사망했고, 잔당 2명은 도주했다. 1974년 11월, 제1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고 연이어 총 4개가 발견됐고, 현재는 29여 개의 땅굴을 피 놓고 있다. 1974.8.15,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으로 육영수 여사가 시해됐다.  1976. 8·18 판문점에서 북한 병사들이 미루나무를 베는 미군에게 도끼를 휘둘러 장교 2명을 살해했고, 8명의 경비병에 중상을 입혔다. 1978년 02월, 영화배우 최은희·영화감독 신상옥 부부가 납치됐다. 1983년 10월, 미얀마 랭군 아웅산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17명의 고위 관리가 북한 테러에 의해 사망 및 부상을 당했다, 수없는 무장 살해와 테러, 어선납치 등 그 수는 무려 9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을 향해 단 한 번도 이런 종류의 테러, 납치, 살해를 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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