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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라

윤광식 |2008.09.09 10:15
조회 38 |추천 0

사원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라
마쓰시타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1929 년 10월 24일 미국 뉴욕 증시의 대폭락과 함께 세계경제 대공황이 불어닥쳤다. 그 바람에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인 마쓰시타(소나무 송, 아닐 불)전기회사는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기업경영에도 천재지변 같은 사태가 자주 일어나게 마련이었다. 아무리 기업을 잘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세계경제가 흔들리면 어쩔 수 없이 수난을 겪게 되는 것이었다.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소나무 송, 아닐 불, 다행 행, 갈 지, 도울 조)는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가로 손꼽힌다. 그는 1918 년 자본금 50달러로 사업을 시작하여 순조로운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었다.
 

뉴욕 증시 대폭락 사건이 일어날 당시 마쓰시타는 니시노미야의 휴양지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세계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뉴욕 증시의 대폭락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이렇게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제품 출하가 반으로 줄었고, 회사는 부도 위기 직전입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급히 달려온 마쓰시타의 처남 이노우에 도시오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큰일은 큰일이로군."
 

마쓰시타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뭔가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회사 문을 닫게 된다구요."
 

너무나 태연한 마쓰시타의 표정을 본 도시오는 다급하게 말했다.
 

"급하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야. 하루 이틀에 극복될 상황이 아니란 말일세."
 

마쓰시타는 침착하게 말했다.
 

"제품 출하가 반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게 됐습니다. 공장 가동도 일부 라인은 중단을 해야 하고, 종업원도 반으로 줄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선 회사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시오의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러나 마쓰시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회사가 살고 봐야 한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회사가 살아야 종업원도 사니까. 그러나 내 생각은 그 반대야."
 

"네에?"
 

"우선 종업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단 얘길세. 종업원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사가 살아나야 하는 것이고."
 

"그게 그 얘기 아닙니까?"
 

"결국 같은 얘기겠지. 그러나 나는 회사를 위해서 종업원이 희생되는 걸 원치 않네. 그러므로 종업원 감원만은 절대 안 되네."
 

마쓰시타는 단안을 내리듯이 말하였다.
 

"종업원을 감원하지 않으면 회사도 망하고, 남아 있는 종업원까지 다 죽습니다."
 

"그렇다고 반만 살고 반은 죽이자는 말인가? 나는 기업보다 사람을 더 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네. 기업은 원칙적으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러므로 사람부터 살리는 것이 기업의 생존법칙이지."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이지만, 마쓰시타는 인재경영의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인이었다. 즉 스스로 종업원들을 감동시켜, 그들로 하여금 열의와 책임감을 갖게 함으로써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었다.
 

회사로 돌아온 마쓰시타는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하였다. 어떤 대책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래도 그는, 종업원의 감원만은 결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침내 마쓰시타는 중역회의를 소집하였다.
 

"공장에서는 반나절만 근무를 하고, 생산도 반으로 줄이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종업원들에게는 종전대로 월급 전액을 지급하시오."
 

마쓰시타는 회사 중역들에게 이와 같은 폭탄 선언을 하였다.
 

"네에? 반나절 근무하는 종업원들에게 월급 전액을 지급하라고요?"
 

중역들은 이렇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소. 이것만이 우리가 사는 길이오. 다만 월급 전액을 지급하는 대신 일하고 남는 나머지 반나절은 재고 판매에 전력을 다 하도록 하시오. 위기를 극복할 때까지는 휴일에도 전 종업원이 세일즈를 나가야 합니다."
 

마쓰시타의 이러한 결단은 당장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종업원들을 감동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가족들까지 나서서 제품을 판매하는 열성을 보였다.
 

놀랍게도 두 달만에 창고에 가득 쌓였던 재고는 바닥이 났으며, 공장은 곧 정상 가동으로 돌아갔다.
 

위대한 기업가는 위기가 닥쳤을 때 그 기질이 잘 드러나는 법이다. 마쓰시타의 인재경영 원칙은 사람도 살리고 기업도 살리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고도의 경영전략이었던 것이다.
 

"서로 감동의 교류가 이루어지면 가슴에 눈물이 흐릅니다."
 

마쓰시타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그의 이러한 경영철학은 1981 년 미국에서 "일본 경영의 예술"이란 제목의 책으로 나와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마쓰시타는 1894 년 쌀 도매업을 하던 평범한 가정의 3남 5녀 중 막내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6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의 집은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르러서는 마침내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마쓰시타는 11세 때, 아버지를 잃고, 18세 때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는 불행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성실히 일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자전거포에서 심부름도 하고, 청소도 하고, 어떤 때는 자전거 수리까지 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17세가 되었을 때 마쓰시타는 앞으로 전기 업체가 유망하리라는 예측을 하고 자전거포를 그만 둔 후 곧바로 오사카전등회사에 들어갔다. 그는 당시 옥내배선공사 주임의 주사가 되어 열심히 일했다. 그 회사에서 7 년간 근무한 그는 조그만 사업체를 차려 새로운 소켓을 생산하기로 마음먹었다.
 

1918 년 마쓰시타는 뒷날 산요(석 삼, 바다 양)전기회사 창업자가 된 처남과 동업을 하기로 하였다. 그는 오사카전등회사에서 7 년간 근무하여 받은 퇴직금과 적립금 등을 합해 총 95엔 20전과, 처남 이노우에 도시오가 빌려준 돈 백엔을 합하여 2백엔 조금 못 미치는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의 사업장은 자신이 살던 집 2층의 조그만 다다미방이었다.
 

마쓰시타가 회사를 차리고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은 '아다찡 플러그'라고 하는 다용도 플러그였다. 이것이 크게 히트하여 야간작업을 해도 주문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잘 팔려나갔다. 그러나 '포탄형 자전거 램프'를 만들어 시판하려 할 때는 판매부진으로 2천여개의 재고가 쌓였다.
 

이때 마쓰시타의 머리에는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일본 약초재배상들의 판매술을 응용한 이른바 '도야마(가멸 부, 뫼 산) 판매법'을 개발해낸 것이었다. 즉 약장수로 유명한 도야마 약초상들이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며 단골들에게 미리 물건을 나눠주고 그 대금을 나중에 받아가듯이, 일종의 신용거래로 지방의 자전거포에 '포탄형 자전거 램프'를 외상 판매한 것이었다.
 

일단 자신이 만든 제품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마쓰시타는 이 같은 도야마 판매술을 이용하여 먼저 제품을 넘겨주고 나중에 수금을 하는 방법으로 시장을 확장해 나갔다. 그러자 일단 제품을 써본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광고가 되기 시작하였고, 그것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그는 '판매의 귀재'라는 명성을 얻었다.
 

마쓰시타의 이와 같은 아이디어는 회사를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인재경영과 현장 위주의 공격적인 시장 개척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는 기업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지 말 것', '탈세하지 말 것', '부동산투기를 하지 말 것' 등을 강조하였다.
 

마쓰시타는 1989 년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가 창업한 마쓰시타전기회사는 오늘날 세계 약 40개국에 3백 50여 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순위 20위권을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옛말에 '군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뜻을 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요즘 말로 해석하면 '사원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 회사의 사원을 내 몸처럼 아끼는 기업가만이 '감동경영'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이름 한)나라 때 섭정이란 백정이 있었다. 그는 의협심이 강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재상을 지낸 엄중자(엄할 엄, 버금 중, 아들 자)가 그를 찾아왔다. 엄중자는 상대가 백정인데도 예의를 다하고 그의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연회까지 베풀어주었다. 이에 감동한 섭정은 훗날 엄중자를 찾아가 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청하여 자객이 되었다. 당시 엄중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승상의 자리에서 쫓겨나 도망다니고 있던 처지였다. 섭정은 마침내 엄중자의 정적인 협루(호협할 협, 묶을 루)를 찔러 죽인 다음 자신도 그 자리에서 자결하였다.

 

유능한 기업가는 사원들의 능력을 존중한다. 그리고 아낌없이 그 능력에 값하는 대우를 해준다. 위기일수록 자신보다 사원들의 아픔을 먼저 느끼고 껴안을 줄 안다.
 

그렇게 하면 사원들은 섭정이 자기 목숨까지 바치며 엄중자의 원수를 갚아주듯이 회사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게 되어 있다.

 


마쓰시타가 '포탄형 자전거 램프'를 만들어 처음에 제대로 판매를 하지 못한 것은 홍보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단 먼저 제품을 쓰는 사람들에게 외상으로 주고, 그들이 그 제품의 진가를 알고 입선전을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이 작전은 맞아떨어졌다. 물론 이것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디어맨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실패를 분석하는 과정 속에서 기발한 해결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쓰레기통의 폐지 속에 중요한 문건이 들어 있다.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다시 생각의 쓰레기통을 뒤져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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