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데니스 퀘이드는 가장 먼저 아버지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그간 보아온 영화들 , , , 그리고 오늘 본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버지 역을 맡았기 때문인가보다. 소싯적에 찍은 영화에서는 카리스마 풀풀 풍기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중년의 그는 '고지식하고', '말 안통하는', '답답한' 꼰대의 이미지로 강하게 어필되는 지못미의 전형이 되었다.
그리고 HBO의 힛 드라마 로 순식간에 패셔니 솝 스타로 발돋움한 새라 제시카 파커. 조금만 더 어렸어도 의 주인공은 앤 해더웨이가 아니라 새라였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의 성공은 그녀가 누구나 첫눈에 반할만한 고전적 의미의 미녀가 전혀! 아님에도 ,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을 가능케 했다.
이 둘이 만나 어떤 사랑을 이야기 하게 될까? 일말의 시놉시스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상상에 의존해 보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둘은 매치도 잘 안됐고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한 사랑이야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리뷰를 쓴다는 건 의외의 재미가 있다는 게 아닐까?
나는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싶어도 없으므로 보통의 사람들이 이해 가능하고 공감할만한 표현들로 말하자면..
일단 처럼 운명적이지 않고, 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하면 좀 느낌이 올까. 사실 도 상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느낌이라 집중이 잘 됐는데 이 영화는 더 심하다!
로렌스(데니스 퀘이드 분) 가족은 전형적인 편부가정의 모습이다. 사근사근하게 아빠에게 애교를 피우는 딸의 모습도 없고, 어떤 기대도 져버리지 않을 것 같은 든든한 큰 아들도 없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거나 아이들을 안아주고 대화로 교감하는 아버지도 없다. 불행하지도 않지만 행복 하지도 않은 개인주의적 가정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어쩐지 이런게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이미 중년을 훌쩍 넘긴 배나오고 턱수염이 덥수룩한 로렌스는 그야말로 외곬수의 전형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난 이런 로렌스가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연민인지 취향인지 알 길이 없으나 영화를 보는 내내 젊고 유망한 매력적인 의사 재닛이 왜 저런 늙은 얼간이를 만나는지 족히 이해가 갔더라는.
운명적이고 불꽃이 팡팡 튀는 사랑이란 게 과연 얼마나 될까. 우리 모두는 제각기 부족한 면을 가지고 살면서 그나마 내 단점들을 견뎌주는 사람을 사랑이라 믿으며 내 짝이거니 하고 사는 게 아닐까.
첫 데이트에서 45분간 따분하기 그지 없는 문학사 이야기를 늘어놓고 이보다 더 서툴 수 없는 방법으로 여자의 마음을 사보려 애쓰는 모습,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라기보다 존경에 가까운 잔잔한 사랑의 느낌. 내가 현실적이라고 하는 데에는 사랑이 우리가 꿈꾸는 것만큼 엄청난 이벤트라거나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지 않고 매일 먹는 식사만큼 사소하고 자주 입는 청바지처럼 편한 감정이라는 나의 정의에 근거한다. 이런 영화는 참 보면서도 소화가 잘 되는 느낌이다.
추석이라 갈 데도 없고 할 것도 없어서 내리 영화만 죽때리고 있는데 내게 남아있는 사랑의 감정이 훈훈해지는 영화를 봐서 기분이 좋다. 오늘 엄마가 끓여논 심심한 된장찌개처럼 스릴도 긴장도 없는 심심한 은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