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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자]를 보내면서-2

박종구 |2008.09.22 13:26
조회 3,202 |추천 25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던 최정희 교수. 이로 말미암아 신도영은 평생 받아보지 못했던 '엄마'라는 존재가 비춰주는 따뜻한 빛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액자를 걸다 자신의 허리에 화상 흉터가 없다며 의아해하는 최 교수.

 

 

"허리에 흉터가 없네?"

북받치는 도영의 설움... 나도 침기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랬다. 잠시나마 품어주던 엄마의 온기는 도영을 지영으로 착각했기에 가능했던 거였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보는 필자마저 서러움에 어쩔 줄 몰랐던 장면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최정희 교수 또한,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지영이가 그리웠으면 온전치 못한 기억 속에서도 친딸의 화상 흉터는 잊지 못했으니 말이다. 최 교수는 어찌 보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학벌, 집안 형편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여자로서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얼마나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을까. 입양 역시 처음부터 그녀가 원했던 것도 아니었다. 남편의 설득에 못 이겨 따라갔던 보육원. 끝끝내 내키지 않아 돌리는 발걸음 위로 한숙이의 슬픈 그림자가 비쳤던 거다. 자신의 품으로 덥석! 안기는 한숙이에게 그토록 꿈꾸던 '엄마'라는 이름이 되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여 결국 입양을 선택해야만 했던 그녀에게 뜻밖에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이라 믿었던 신지영. 그러나 지영이의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의 끈이 되어 서로를 휘감고 만다. 물론, 지영이가 태어났어도 도영에게 '똑같은 엄마의 사랑으로 품어주었다면 모두에게 그러한 불행은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니냐!'는 생각도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입양의 목적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10년 만에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신지영과 입양한 김한숙이 차별 없는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최정희 교수.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한숙이의 일기장!

 

 

한숙이의 어릴 적 일기를 읽으며 요동치는 최 교수의 마음

"너 왜 이렇게 독하니!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일기장에 담긴 어린 한숙이의 순수하고 애절함이 그녀의 뼛속 깊숙이 파고들게 됨으로써, 작가의 최대 바람이었던 용서와 화해를 통해, 인간애라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이 아니다.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용서'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에 밝혔듯이 "용서란 신만이 할 수 있다."라는 확고한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진심으로 도영일 '내 딸'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서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선인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최정희 교수님, 당신의 힘들었던 삶에 마음을 열었던 시청자도 있었음을 잊지 마세요!

 

 

 

--비와 윤사월. 비와 신도영. 두 자매의 슬픈 운명 앞에 하늘도 울고 만다. 도영과 사월의 울부짖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얼까? 인생이 어디 자기 뜻대로만 흘러가던가! 도영과 사월의 모든 아픔과 상처가 저 퍼붓는 비에 말끔히 씻겨나갔으면 좋으련만. 너무도 무거웠던 마음의 짐이 빗줄기를 타고 어디론가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뜨겁게 타오르던 두 자매의 영혼을 촉촉이 적셔두어 거센 운명 속에 묻혀 있던 순수한 어린 시절의 마음이 조용히 싹을 틔운다.

 

 

 

--이승과 저승의 문턱에서 자신을 향한 끝없고 한없는 사랑을 보내주는 이들의 목소리에 다시 찾은 곳. 그곳에서 도영은 자신의 모든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 고개 숙인다. 얽혀 있던 모든 것이 풀어지는 순간! 신도영을 아니... 한숙이를 다시 보내야 하는 또 다른 숙명 앞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언니를 보내며 부르던 사월의 노래는 가끔, 귓가를 찾아와 그날의 감정을 되살린다.

 

 

 

--지영이가 태어나기 전과 후의 어린 신도영.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기엔 너무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 이승을 다시 찾은 신도영. 최정희 교수가 손수 끊여준 잣죽을 먹으며 환하게 웃는 세 명의 신도영. 타인과의 화해에 앞서 자신과의 화해가 먼저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또한, 한숙이의 한(恨)이 잣죽에 스며들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 찾은 친모의 묘. 이미 도영의 얼굴에는 빛이 나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 자리에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탱탱한 빛! 그녀는 말한다. 이제 나에게도 사랑받고 자란 사람에게서 나오는 빛이 얼굴에 가득하냐고. 자신을 포대기에 업고 다녔다는 친아버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듣고서, 엄마와 아빠가 만들었다는 한숙이 적금 통장 이야기를 듣고서 발하는 밝고 순수한 빛이었다. 텅, 비어 있던 마음속에 부모의 사랑을 가득 담은 도영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눈이 부셨다. 사랑이 충만한 그녀의 눈에는 이제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런 도영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장의 가족사진. 상처와 고통으로 얼룩졌던 한 가정이 비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끌어안으며 만들어낸 그림. 짧은 순간이었지만, 가슴 뭉클함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가족! 그 소중함을 너무 당연하다는 이유로 망각의 그늘에 버려두고 무심히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치열했던 두 자매의 격정적인 삶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던 필자는 마지막 회에서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에 매료되어 며칠 밤을 머릿밑에 있어야 할 베개를 가슴에 끌어안고 자야 했다. 연기자의 대사와 표정으로 극의 전개를 뜨겁게 이끌어가던 [태양의 여자] 마지막 방송은 그 모든 것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장식한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도 아름답지만. 사랑스런 그대 눈은. 더욱 아름다워라. 그대만을 기다리리...' 어릴 적 언니와 함께 부르던 노랫소리가 잔잔한 파도와 어우려져 도영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이승에서의 고달픈 삶을 마감하는 언니의 가녀린 숨결을 느끼며 흘리던 사월의 눈물. 사월 역시 자신의 눈물 위에 힘들고 외로웠던 지난날의 아픔을 차곡차곡 쌓아 차분히 보낸다. 윤사월! 이제는 아프지 마라. 더는 외로움이라는 숲 속에서 헤매지 마라. 신도영! 이제는 편안히 가거라. 더는 두려움이라는 숲 속에서 헤매지 마라.

 

 

 

--혼자 가기엔 그래도 너무 외로운 곳. 영혼이 사월의 어깨를 떠나는 순간, 동행자가 있었다. 차동우. 도영이의 닫혀 있던 문을 사랑이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열쇠로 열어버린 사나이! 누군가 함께 해 준다는 것! 자신의 발걸음에 잰걸음, 느린 걸음으로 아무런 불평 없이 맞춰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행복할까. 김인영 작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인간애를 통한 영혼의 소통. '너를 원망하지 않아. 나 역시 원망하지 말아줘.'  '나 너를 사랑해. 너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 

 

 

 

--얼마만의 눈물이었던가. [여름향기]에 푹 빠졌던 날들이 떠오른다. 송승헌이 자동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흘리던 눈물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때 내 볼을 타고 거침없이 흘러내리던 눈물도 느껴진다. 남자라는 이유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되다는 어리석은 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때가 너무 후회스럽고 바보스럽다. 눈물은 흘리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하물며 감정의 형상물인 눈물의 가치는 어떠하겠는가. 눈물은 신이 허락한 선물이다. 눈물이 필요할 때는 망설이지도 말고 눈치 보지도 말자. 그 눈물 방울방울에 담긴 감정의 조각들. 흘려야만 풀어지는 감정의 얽매임. 끝으로, 잊히지 않을 [태양의 여자]를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과 수고하셨다는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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